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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인력 붙잡기 위해 리더가 귀 기울여야할 우선순위는 [유웅환 반도체 열전]

목동은 양떼에 고삐 채우지 않아
직원 편의 고민하는 그림자 역할

 
 
조세 무리뉴(왼쪽) AS로마(이탈리아 프로축구팀) 감독이 8월 22일 로마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크레모네세(롬바르디아 프로축구팀)와의 경기에서 파울루 디발랄 선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AFP=연합뉴스]
모든 조직에는 리더가 있기 마련이다. 리더가 조직의 구성원들과 맺는 관계는 양치기 목동이 양떼를 돌보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보통 양들은 유순하고 겁이 많아,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방어하기 위해 무리를 이루며 살아간다. 목동은 이런 양들이 무리에서 이탈하는 걸 막는 한편,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여타 들짐승들의 공격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는 일을 맡는다.  
 
나아가 모든 양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목초지를 찾아 무리 전체를 이끌고 가는 임무도 그에게 달려 있다. 이 때 주목되는 것은 고삐를 채우지도 않고, 강제적으로 끌지 않으면서 이 모든 일들을 해낸다는 것이다.
 
목동처럼, 리더의 역할 역시 조직 구성원들을 보호하는 가운데 자연스레 그들을 이끌어 돕는 데 있다. 리더는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구성원 개개인의 힘을 하나로 결집시켜 비즈니스 목표 지점으로 향하게 한다. 그렇지 않고 구성원들의 역량이 중구난방 산발적으로 튀어나오게 방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개개인의 성향이 다른 만큼 저마다 구상하는 목표도 다를 수 있으니, 가만 두기만 하면 그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허나 동상이몽으로는 같은 목표를 이룰 수 없다. 사공이 많아서 배가 산으로 가거나 제자리에서 맴도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따라서 리더는 팀원들이 한 방향만 보고 다 같이 움직일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이 분위기는 어떻게 해야 만들 수 있을까.
 
일단 팀의 방향 설정이 완료되었을 때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에게 권한을 넘기는 것이다. 목동이 양떼에게 목줄을 채운 채 낑낑대며 일일이 잡아 끌지 않음을 기억하라. 리더 역시 구성원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 구성원에게 부여된 과제는 그들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팀 전체의 목표는 구성원 하나하나의 동기와 책임감과 만나야 한다. 그럴 때에라야 그들은 소명의식을 갖고 일할 수 있다. 자신이 조직 내에서 중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긍지와 자부심은 구성원 하나하나를 만족시키고, 그랬을 때에라야 그로 인해 조직이 만족하고 소비자 역시 만족할 것이다.  
 

리더가 기억해야 할 ‘식스 스텝’

리더가 조직을 이끄는 6단계의 절차(six steps)는 ‘계획-촉진-실행-모니터링(피드백)-평가-보상’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계획’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리더와 구성원 상호 간에 합의된 최종 목표의 수준과 단계별 시한을 설정(level setting)하는 것이다. 이 일은 왜 해야 하는지가 구성원 모두에게 충분히 설명돼야 한다.  
 
특히 주니어급 구성원들에게는 리더가 손이 많이 간다. 함께 일을 해야 할 사람을 알려주는 것은 물론, 그와 관계를 쌓을 수 있도록 챙겨주기도 해야 한다. 일할 때 세부적으로 필요한 방법도 알려주고, 툴 같은 이행수단을 스킬업해줄 필요도 있다.(‘촉진’) 이후 전체적으로 임무를 분배하고 구성원들이 각자의 역량에 맡는 일을 맡아서 실행에 옮기도록 한다.(‘실행’) 일이 시작되면 수시로 구성원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 (‘모니터링(피드백)’)
 
계획 단계에서 ‘레벨 세팅’은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는 것과 같다.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은 채 실행하는 도중에 기대치를 계속 올리는 리더를, 필자는 실리콘밸리에서보다 한국에서 많이 보았다. 최종 평가가 잘 나오기 위해서는 중간에 모니터링 된 것에 따라 피드백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 부분도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러는 경우 서로 만족하기 어렵다. 개선해야 할 사항이 보인다면 즉각적으로 조언을 해줘서 일에 차질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 행여나 개선이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나 하나 때문에 전체가 피해를 보는 건 아닐까’하는 죄책감을 갖는다면 큰일이다. 한동안 그 사람은 수동적으로 일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이 경우 조직의 역량이 크게 저하되기 때문이다.
 
모니터링 단계를 좀 더 살펴보자. 리더는 구성원들과 잦은 미팅을 통해 그들의 고민거리를 들어주어야 하는데, 많을 때는 아침에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계속되기도 한다. 미팅은 대부분 그들이 대면하고 있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데 집중된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주 내용은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가 70%요, 그 외 나머지는 대체로 사적인 이야기들이다.  
 
와이드 리시버(미식축구 공격 위치 중 하나) 코치 폰텔 마인즈 실내 연습시설에서 열린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업무에 매진하는 환경 조성이 리더의 역할

여기서 업무 외의 이야기를 회사에서 나누는 것이 정상적인 것이냐고 반문할 지도 모르겠다. 허나 구성원이 가지는 스트레스의 주원인은 개인적인 고민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직장 동료와 마찰을 겪는 경우, 과감하게 팀의 구성을 장기적으로 바꿀 필요도 있다.  
 
인텔에서 일할 당시였다. 부서원들이 다양한 지역에 흩어져 있어 한 달에 한두 번은 면담을 위해 직접 비즈니스 트립을 가졌다. 한번은 샤오밍이라는 박사 출신 경력자이자 보드 설계 엔지니어가 근심이 가득 찬 얼굴로 면담에 임했다. 부인이 알레르기로 고생하고 있어 다른 지역으로 옮겨야 할 상황이지만, 자신은 현재 부서와 업무에 만족하고 있어 이직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면담 후 나는 그의 팀을 옮기고 가족들도 이주할 수 있도록 승인해 주었다. 다행히 부인의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안정을 되찾자 샤오밍도 적극적으로 일하는 자세를 되찾고 이전보다 많은 성과를 내었다.
 
이처럼 훌륭한 리더는 직원들이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일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주는 사람이다. 시스코와 같은 회사에서 리더는 직원들이 가정생활과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예를 들어 그들은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직원들을 위해 재택근무를 오래전부터 허용해 왔고, 전 직원이 가사와 육아에 고충을 덜 겪고 있다. 또한 이동 중에도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회사 차원에서 무료 와이파이를 제공하거나 원격회의를 일상화하여 직원들이 모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고 있다.
 
리더들은 조직의 구성원들이 어떤 편의를 제공받으면 좋은지 또 그들이 어떤 근무 환경에서 가장 최상의 업무 결과를 낼 수 있는지를 늘 살펴야 한다. 리더는 그림자 같은 존재다. 그림자가 없는 사람을 상상할 수 없듯이 리더가 없는 회사도 상상할 수 없겠다.  
 
※ 필자는 27년 경력의 반도체 열사(烈士)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박사를 취득한 후 인텔에서 수석매니저를 지냈고,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에 스카웃돼 최연소 상무로 재직했다. 현대자동차 연구소 이사, SKT 부사장(ESG그룹장) 등을 거쳐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으로 활동하며 반도체 정책 보고서 등을 작성했다. 반도체 분야 90여 편의 국제 논문과 Prentice Hall과 고속반도체 설계에 관한 저서를 출간했다.
 
 

유웅환 전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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