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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경제학 수상 벤 버냉키는 연준에 어떤 말을 할까 [조원경 글로벌 인사이드]

미국 위주 경제 정책의 부작용 우려
금융 건전성·안정성 알리는 경종 필요

 
 
10월 10일 미국 워싱턴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연설하고 있는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AP=연합뉴스]
10월 10일(현지시각) 벤 버냉키 연준 의장(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더글러스 다이아몬드 미국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 필립 디비그 미 워싱턴대 세인트루이스 교수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을 보고 누군가는 묘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다. 벤 버냉키 같은 저명한 정책 입안자에게 상이 수여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들이 노벨상을 수상한 연구의 초점은 어디에 있을까? 자칫 금융 시스템의 붕괴로 인한 값비싼 대가를 치를 지도 모를 상황에서 이들 노벨상 수상자들은 뱅크런을 피해 시스템 리스크를 방지하는데 큰 역할 했다는 것이 수상의 변이다.  
 
뱅크런은 은행의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를 말한다. 은행이 부실해질 것을 두려워한 예금자들이 돈을 찾기 위해 은행으로 달려간다(run)는 데서 유래됐다. 은행에 돈을 맡긴 사람들은 은행의 재정 건전성에 문제가 있다고 비관적으로 인식하면 그동안 저축한 돈을 인출하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대공황의 사나이에서 노벨경제학 수상자로

벤 버냉키는 1930년대에 뱅크런이 대공황을 어떻게 연장시켰는지를 매사추세츠공과대(MIT)의 대공황 연구 박사학위 논문에서 보여 주었다. 당시 지도교수는 2009년 타계한 폴 새뮤얼슨이었다. 이 논문은 그를 30대에 일약 경제학계의 스타로 만들었고 그는 ‘대공황의 사나이’(Depression Man)란 닉네임을 얻었다.  
 
그로부터 한참의 세월이 흐른 후 자기실현적 예언은 그에게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이란 시대 사명을 주었다. 위기를 맞은 미국 중앙은행의 수장은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연준의장으로서 그가 이전에 깨달은 교훈을 적용했다.  
 
그가 이끈 연준은 위기를 맞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금리를 대폭 낮추었다. 정치적으로 논란이 많았던 미국 최대 은행들의 구제금융을 과감히 지원하였다. 아시아 금융위기를 겪은 나라들은 고강도 구조조정과 높은 금리와 실업이라는 대가를 치렀는데 이와 비교한다면 그는 모국에 관대했다.  
 
우리에게 혹독했다고 자평한 국제통화기금(IMF)은 왜 미국의 경제상황에 대하여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을까? 그가 사용한 텍스트북은 코로나 팬데믹이 강타할 무렵 여러 나라들이 봉쇄에 들어갔을 때 중앙은행들이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한 도구로 다시 사용되었으나 모든 나라가 미국처럼 할 수는 없었다.  
 
진정 그들은 심각한 위기와 값비싼 구제금융을 모두 피할 수 있도록 세상의 능력을 향상시켰을까? 누군가는 미국이 기축 통화를 이유로 천문학적으로 푼 유동성의 행방을 물으며 고통 받고 있는 현실을 이야기하며 고개를 흔들 수도 있겠다.  
 
버냉키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연준 의장으로서 과감한 양적완화 정책을 폈다. 그가 어떻게 돈을 풀면서도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묘수를 가졌는지는 이제는 수수께끼 같다. 여하튼 우리는 그를 인플레이션 억제 전문가로 기억하고 있다. 그는 이런 묘한 말을 했다.  
 
“수십 번의 약한 지진보다 단 한 번의 강진이 지진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에 훨씬 더 유용하다.”
 
그러나 그 강진은 우리에게 팬데믹 이후의 인플레이션이란 악령으로 다르게 나타나 지구를 강타하고 있다.  
 
폴 새뮤얼슨 외에 그에게 영향을 미친 인물은 없을까? 우리는 버냉키의 스승으로서 밀턴 프리드먼을 생각하게 된다. 프리드먼은 중앙은행의 신뢰성을 유지하기 위해 K% 준칙을 주장했다. 경제의 흐름과 상관없이 매년 통화량 증가율을 K%로 일정하게 유지해야 사람들의 믿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프리드먼이 K% 통화 준칙을 제기한 당시와 세상이 많이 달라져 중앙은행은 이제 통화량보다는 기준금리로 통화정책의 목표를 설정한다. 프리드먼은 이런 신뢰의 원칙을 항상 고수했을까? 프리드먼에게도 예외는 있었다. 바로 헬리콥터 머니다. 이는 경기부양을 위해 중앙은행이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 새로 돈을 찍어내 시중에 공급하는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을 말한다. 헬리콥터를 타고 돈을 뿌리자는 벤 버냉키의 아이디어도 프리드먼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건물 전경. [로이터=연합뉴스]

화폐의 신뢰성이 사라진 세상에서

기준금리가 제로이거나 마이너스가 된 후에도 경제가 잘 작동하지 않을 경우 어떤 조치가 가능할까에 대해서 많은 말이 오갈 수 있고 그런 점에서 양적완화는 설득력을 갖는다고 할 수도 있겠다. 최근 감세정책으로 금융시장의 불안에 일조했던 영국에서도 프리드먼의 헬리콥터 머니는 통하는 면이 있었다. 노동당 대표 제러미 코빈(Jeremy B. Corbyn)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인민을 위한 양적완화(People’s Quantitative Easing) 정책’을 주장했다. 금융 위기 이후 2017년 미국이 금리를 올리기까지 세계경제가 침체되어 있어 수요를 견인할 주체가 많지 않았다. 따라서 자산 가치를 올리면 간접적으로 수요가 창출될 걸로 믿는 버냉키의 견해보다, 직접적인 효과를 노리는 더 파격적인 프리드먼의 헬리콥터 머니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대규모 소비가 필요하고, 이자율 인하가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였나? 팬데믹은 인민을 위한 양적 완화를 가공할만한 수준으로 실시했다. 지금 실업률이 역사상 가장 낮은 시기에 임금을 상승해도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아 물가상승률과 실업률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필립스 커브가 누워버렸다는 표현은 사라졌다.  
 
과거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가 “자본주의가 인플레이션을 죽였나?”라는 표현은 무덤에 갇혔다. 시장의 기능이 고장 난 상황을 보며 우리는 금융의 신뢰성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할까? 그들의 인플레이션 대응에 관한 조언을 들어 보자.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조언은 무릇 정책이란 은행 부문이 건전하다는 인식과 금융의 건정성과 안정성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노력과 함께 통화정책의 변화를 예상할 수 있고 투명한 방식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믿음을 주는 것입니다.”
 
인플레이션으로 미국이 가공할만한 수준으로 금리를 계속 인상하면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는 은행 부문의 금융안정성을 걱정해야 한다. 이번 노벨 경제학상 수상을 계기로 지금 하는 세계 정책들이 누구를 위해 금융 건전성과 안정성이란 종을 울리는지 심각하게 생각해 본다.
 
※ 필자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이자 글로벌산학협력센터장이다. 국제경제 전문가로 대한민국 OECD정책센터 조세본부장, 기획재정부 대외경제협력관·국제금융심의관, 울산 경제부시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 [앞으로 10년 빅테크 수업] [넥스트 그린 레볼루션] [한 권으로 읽는 디지털 혁명 4.0] [식탁 위의 경제학자들] [명작의 경제]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 등이 있다.
 

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글로벌산학협력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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