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메타버스 윤리원칙’ 발표…관련 업계 우려 높아져 [메타버스 규제 시작되나①]
법적 구속력 없지만, 기업에 윤리원칙 반영 지원
취지도 ‘법제도 정립 공백 대응’…규제 확산 우려
정부 “생태계 자정에 초점”…8대 실천 원칙 마련
정부가 국내 메타버스 생태계에 윤리원칙을 세웠다. 이를 두고 산·학계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안전망 마련’ 성과란 해석부터 ‘규제 확대 조짐’ 우려까지 다양한 견해가 나온다.
28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주재로 제2차 사회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메타버스 윤리원칙’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된 윤리원칙은 앞서 과기정통부가 메타버스 개발·운영·이용자(창작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상의 절차를 통해 마련했다. 메타버스는 가공·추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현실 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가상과 현실이 융합된 공간에서 사람·사물이 상호작용해 사회·경제·문화 가치를 창출하는 세계를 말한다.
윤리원칙은 메타버스 내 아동·청소년 등에 대한 유해 콘텐츠 노출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서 그 필요성이 제기됐다. 특히 가상 자아에 대한 비윤리적 행위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면서 부처 차원의 논의가 시작됐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메타버스가 현실과 가상을 잇는 개념인 만큼 가상 자아에 본인을 투영하는 정도가 높다”며 “비윤리적 행위 발생 시 다른 비대면 서비스보다 피해가 높을 수 있다. 비윤리적 행위를 포함한 다양한 부작용을 미연에 방지하고 생태계 자정 차원에서 윤리원칙을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번 메타버스 윤리원칙을 ‘시민사회의 역량과 자율성에 기반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사회 저변의 올바른 가치관과 의식 형성을 목적으로 마련한 도덕적 규범으로, 법적 강제성은 없다. 정부는 윤리 규범을 정보통신기술(ICT) 발전 과정에서 신기술로 인한 역기능을 완화할 수 있는 공동체의 대응 방안으로 제시해 왔다.
메타버스 윤리원칙 역시 구속력이 없는 ‘가이드라인’에 해당하지만, 이를 산업 규제의 시작이라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내 메타버스 서비스 기업 직원은 “이번 윤리원칙이 ‘권고 사항’이라 할지라도 국내 기업이 이를 무시하고 사업을 꾸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인터넷망이 도입됐던 시기에도 윤리원칙을 기반으로 규제가 만들어졌고 이는 다양한 사업자의 시장 진입 저해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 메타버스 관련 산업이 아직 자리를 잡기도 전에 규제 성격의 가이드라인이 나와 향후 이를 기반으로 정부가 어떻게 사업의 고삐를 쥘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정부 역시 이번 메타버스 윤리원칙이 규제 마련 전 단계임을 시사했다. 윤리원칙 마련의 추진 배경으로 ‘법제도 정립까지의 공백 대응’을 꼽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구체적으로 ▶메타버스 확산에 따른 역기능에 대응하기 위한 법제도 정립 간 시차와 공백에 대한 정책적 준비가 필요한 시점 ▶메타버스가 제공하는 창의와 혁신의 공간에 대한 기대 이면에 소통·교류·협력 방식의 확장에 따른 사회·윤리적 이슈 우려 등을 이번 윤리원칙 마련의 배경으로 삼았다.
특히 정부가 메타버스 기업을 대상으로 ‘윤리원칙 내재화 지원’에 나설 계획이라 규제 확대에 대한 논란이 향후 더 불거질 수 있단 전망도 나온다. 산업계 일각에선 지원을 명분으로 정부가 기업에 개발 방향성 등을 강요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는 분위기다.
이번 메타버스 윤리원칙의 적용 대상을 산업 발전에 맞춰 봐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김상균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사생활 존중·정보보호 등 법률적인 면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내용이라 사실 윤리를 넘어선 내용들이 담겼다”면서도 “법적인 구속력을 갖는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윤리원칙의 내용만으로는 그간 메타버스 운영에 부재했던 점을 채워줘 합리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평가했다.
향후 규제 마련에 대해선 “윤리원칙을 기반으로 일괄적인 법 제도가 만들어진다면 사업 규모가 작은 업체는 운영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다”며 “정부가 규정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업체들과 공론화 과정을 충분히 거쳐 차등적 적용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메타버스 윤리원칙, 어떤 내용 담겼나
구체적으로 ▶온전한 자아(Sincere Identity), 개인이 가상 자아가 추구할 가치와 역할을 스스로 선택해 가상 세계 내 자아 정체성을 성실하게 구현하며 행동 ▶안전한 경험(Safe Experience), 창의적·혁신적인 경험 등 메타버스의 혜택을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참여자가 신체적·정신적·경제적 침해를 받지 않아야 함 ▶지속가능한 번영(Sustainable Prosperity), 메타버스의 사회경제적 혜택이 편중되지 않고 다수에게 돌아갈 수 있어야 하며 아울러 미래세대에도 이어져야 함을 지향 가치로 정했다.
8대 실천 원칙은 ‘3대 지향 가치를 추구하고 실천하는 기준’으로 마련됐다. 정부는 ▶진정성 ▶자율성 ▶호혜성 ▶사생활 존중 ▶공정성 ▶개인정보 보호 ▶포용성 ▶책임성 등을 메타버스 플랫폼이 지키며 운영돼야 3대 지향 가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봤다.
정부는 이 같은 메타버스 윤리원칙을 ‘자정 노력에 참조할 수 있는 보편적·포괄적 윤리 규범 제시’를 목적으로 만들었다. 모든 사회 구성원이 메타버스의 혜택과 역기능을 사전에 인지할 수 있도록 돕는 지표인 셈이다.
정부는 윤리원칙의 적용 범위에 ‘메타버스 플랫폼 개발·운영 주체’는 물론 ▶경험적 가치를 직접 창작하거나 발견하는 창작자 ▶개발·운영·이용에 직접 참여하지 않더라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보호자 등 이해관계자까지 포함했다. 생태계 자정에 기업뿐 아니라 이를 이용하는 주체도 함께해야 한다는 취지다.
정부는 이 같은 제정 목적에 맞춰 윤리원칙이 작동하도록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메타버스 운영에 윤리원칙이 반영되도록 지원하면서, 주 사용층인 MZ세대를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보급할 방침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이번 윤리원칙이 메타버스 산업에 새로운 규제가 될 수 있단 우려에 대해 “도덕적 기준을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개인의 욕망이 투영될 수 있는 메타버스란 공간에 그간 없던 윤리적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라며 “산업 발전 초기 이 같은 가이드라인이 제시돼야 향후 무분별한 도덕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윤리원칙을 기반으로 한 자정 기능이 활성화돼야 향후 법적 규제가 산업 적용되더라도 그 정도가 플랫폼 발전에 저해되지 않을 수준으로 적용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두용 기자 jdy2230@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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