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가 갖는 함의와 한계는? [조원경 글로벌 인사이드]
러시아의 석유 판매 공급 중단은
세계경제 인플레이션 악화시킬까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가 도입된 것은 언제일까? 1977년 박정희 정부 시절이었다. 많은 이들은 이 대목에서 박정희 정부가 좌파적인 면이 있었구나 생각할 수 있겠다. 분양가 상한제는 진보 정부에서 주로 제기되어 온 문제이니 말이다. 언제나 자산시장의 급등에는 유동성이 존재한다. 중동 건설 시장에서 벌어들인 자금이 부동산 시장에 유입됐다. 아파트값이 급등하자 박정희 정부는 행정지도를 실시했다. 그 결과 정부 고시 분양가로 아파트 분양가는 3.3㎡당 55만원으로 획일화 되었다. 이 정책은 어떻게 최근의 분양가 상한제 논란과 달리 성공했을까?
당시 아파트는 주력 주택이 아니었다. 예외적인 주택 형태였기에 정부의 직접적인 가격 규제 정책이 주택시장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문제는 아파트 공급량이 늘고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제도의 부작용이 늘었다. 분양가 상한제는 분양 당첨자에게 막대한 시세 차익을 안겼고, 대신 건설사의 주택 공급은 위축됐다. 로또 아파트의 유래는 우리가 생각한 것 보다 오래되었다. 분양 가격 통제가 시장 왜곡과 부작용만 낳는다는 비난은 이미 1989년에 있었고 그런 이유로 폐지되었다. 이후로도 분양가 상한제의 제정과 폐지가 오갔으니 정책하는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다른가 보다.
유가 상한제를 둘러싼 유럽 경제 불안정 우려
정부가 예상한 대로 가격은 안정됐을까? 아니 반대였다.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이션율은 나라를 망하게 할 정도로 높았다. 그래서였나? 러시아가 12월 5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과 주요 7개국(G7), 호주가 도입한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영향을 못 미칠 것이라 주장했다. 이들 국가들은 러시아의 전쟁 자금줄을 막고자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액을 배럴당 60달러(약 7만8000원)로 정했다. EU가 러시아 제재안으로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 도입 논의를 시작한 건 9월이었다. 상한선을 놓고 회원국들은 서로 입장차를 좁히지 못해 막판까지 애를 먹었다. 30달러 선까지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던 폴란드의 막판 동의를 끌어내서 겨우 합의에 이르렀다.
유가가 너무 낮게 책정되면 국제 유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았다. 배럴당 60달러는 러시아 우랄산 원유 가격인 배럴당 70달러 선보다 10달러 정도 낮은 수준이다. 참여국들은 상한액을 넘는 가격에 수출되는 러시아산 원유에 대해서는 보험과 운송 같은 해상 서비스를 금지했다. 많은 나라가 서방의 입장을 대변하고 따라 주면 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서방의 제재가 러시아에 문제를 가져왔지만 지금까지 결과만 보면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과연 유가 상한제는 러시아 당국이 말한 것처럼 독일 경제를 포함해 유럽인에게 해를 끼칠 것인가? 러시아 당국은 유가 상한제가 세계 에너지 시장에 불안정을 초래할 것이라 호언장담했다.
이에 반해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은 원유 가격 상한제가 러시아의 수입원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방안이면서 세계 에너지 수급의 안정도 도모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글로벌 석유 공급량을 놓고 중동과 어려운 한판을 벌여 왔다. 미국 정부는 세계 최대 원유 매장국 베네수엘라의 석유 수출 제재를 일부 완화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혼란을 겪고 있는 세계 에너지 시장을 감안한 조치이다. 석유와 가스 수출이 재정 수입의 42%에 달하는 러시아에게 원유 수출은 매우 중요하다.
회의적인 원유 가격 상한제 효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인도는 할인된 러시아산 석유 구매를 꾸준히 늘려왔다.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인도는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를 지지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제 무기의 주요 시장이기도 한 인도는 러시아의 전쟁을 비판하는 유엔 결의안에 기권했다. 최고가격제 실시에는 대체제가 있느냐의 문제도 중요하다. 러시아의 원유 공급이 줄면 중동이나 다른 지역으로 수요가 몰릴 수 있다. 대체 지역이 담합하면 국제유가가 오를 가능성은 없을까?
아니라고 말하긴 굉장히 어려워 보인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11월 팬데믹 기간인 2020년 이후 2년여 만에 원유 생산량을 가장 큰 폭으로 줄였다. 12월 4일 OPEC 회의에서 증산을 하지 않고 현 상황을 유지하겠다고 결정했다. OPEC 회원국은 11월 하루 총 105만 배럴씩 감산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하루 47만 배럴씩 원유 생산을 줄여 감산 폭이 가장 컸다. 쿠웨이트와 아랍에미리트(UAE)도 감산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거센 증산 압박에도 OPEC의 담합은 깨지지 않고 있다. 원유 가격 상한제가 효과적이지 않다는 반론이 여기저기 나온다. 60달러는 적합한 수준일까. 60달러는 70달러와 큰 차이가 없다. 러시아의 석유 생산 비용은 배럴당 20달러로 추산된다. 상한가가 60달러라면 러시아는 여전히 상당한 이익을 거둘 수 있는 가격이다.
러시아가 석유 판매를 아예 중단해 공급이 줄어든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세계가 전쟁하는 인플레이션을 지속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인도 이외에 러시아의 원유를 받아주는 국가도 다수 있다. 중국과 튀르키예가 대표적인 국가다. 중국은 인도와 함께 올해 들어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계속 늘려왔다. 세계는 에너지 전환과 에너지 안보에 열중하고 있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지만 그럴수록 당분간 유가가 급락하는 이유는 없어 보인다. 러시아는 서방이 도입한 상한제에 맞불을 놓을 준비까지 하고 있다. 유가하한제를 검토중이란 보도가 12월 6일 보도되고 있다. 러시아산 원유가격에 고정 가격을 부과하거나, 국제 벤치마크 기준 가격에 최대 할인율을 규정하는 것을 고려 중이다. 원유 가격 상한제 당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규모 공습을 단행했다. 세상은 여전히 불확실성에서 어려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 필자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이자 글로벌산학협력센터장이다. 국제경제 전문가로 대한민국 OECD정책센터 조세본부장, 기획재정부 대외경제협력관·국제금융심의관, 울산 경제부시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 [앞으로 10년 빅테크 수업] [넥스트 그린 레볼루션] [한 권으로 읽는 디지털 혁명 4.0] [식탁 위의 경제학자들] [명작의 경제]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 등이 있다.
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글로벌산학협력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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