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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진단’ 대못 규제 수술대…재건축 5년전으로 활성화 될까

구조안전 문제없어도 주거환경 나쁘면 허용 가능성
추가 적정성 검토 ‘무력화’, 안전진단 통과 2018년 전으로

 
 
권혁진 국토교통부 주택토지실장이 8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개선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재건축 공급의 마지막 걸림돌로 꼽히던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를 약 5년만에 완화키로 했다. 그간 안전진단 단계에서 발목 잡혔던 30년 이상 노후 아파트 단지들의 재건축 사업이 활성화될 전망이다.  
 
구조안전성 점수의 비중이 전체의 50%에서 30%로 줄어들고, 주차공간 부족·층간소음 등으로 주거환경이 나쁘거나 배관 설비가 낡은 아파트의 재건축 가능성이 커진다. 또 ‘조건부 재건축’ 판정 대상을 축소하고 공공기관의 적정성 검토(2차 안전진단)를 지자체가 필요한 경우만 하도록 제한한다.  
 
국토교통부(국토부)는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재건축 안전진단 합리화 방안을 발표하고, 내년 1월 시행할 예정이라고 8일 밝혔다. 지난 8월 16일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의 후속 조치다.  
 
재건축 안전진단은 재건축의 첫 관문에 해당하는 절차로, 분양가상한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와 더불어 재건축 사업을 막는 3대 대못으로 불려왔다. 앞서 정부가 분양가상한제와 재초환 개선안을 차례로 내놓으면서 마지막 규제 완화에 대한 목소리도 커져왔다.
 
정부는 최근까지만 해도 집값 불안 등을 이유로 안전진단 발표와 시행 시기를 미뤄왔으나 최근 집값이 하락하고 시장 경착륙 우려까지 커지면서 발표 시기를 이달 초로 앞당기고, 시행도 내년 1월로 못 박은 것으로 보인다.  
 

구조안전성 가중치와 조건부 재건축 범위 축소  

재건축 희망 단지들은 안전진단에서 ▶구조 안전성 ▶주거 환경 ▶설비 노후도 ▶비용 편익을 따져 A~E등급 중 D(조건부재건축) E(재건축)등급을 받아야 재건축 절차를 밟을 수 있다. 그러나 2018년 3월 구조 안전성 비중을 20%에서 50%로 크게 상향하고, D등급의 경우 공공기관 적정성 검토를 의무화하면서 안전진단 통과 건수가 급감, 도심 내 양질의 주택공급 기반이 크게 위축돼 왔다.
 
실제 국토부에 따르면 안전진단 통과 건수는 지난 2015년 5월부터 2018년 2월까지 34개월 동안 전국 139건(서울 59건)에 달했다. 하지만 기준이 강화된 2018년 3월부터 올해 11월까지 56개월간 단 21건(서울 7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우선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했던 구조안전성 가중치를 50%에서 30%로 낮췄다. 대신 주거환경 비중은 종전 15%에서 30%로 2배 높이고 설비 노후도 비중은 종전 25%에서 30%로 상향했다.
 
개선안이 시행되면 구조안전에 큰 문제는 없더라도 주차공간이 부족하거나 층간소음이 심해 주민 불편과 갈등이 큰 아파트 또는 배관 누수·고장, 배수·전기·소방시설이 취약한 경우처럼 생활이 불편한 경우에도 재건축 추진이 가능해진다.
 
안전진단 평가 총점에서 조건부 재건축의 범위도 축소했다. 현재 안전진단을 신청하면 평가항목별 점수 비중을 적용해 합산한 총점이 30점 이하인 경우 재건축 판정이 내려지는데, 앞으로는 45점 이하면 곧바로 재건축 판정을 받아 사업을 할 수 있게 된다.
 
또 공공기관의 적정성 평가와 재건축 시기조정을 받도록 했던 조건부 재건축 판정 대상은 점수의 범위를 종전 30∼55점에서 45∼55점으로 대폭 축소한다. 조건축 재건축 범위가 넓어 사실상 재건축 판정을 받기 어려웠던 문제점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렇게 평가 항목 배점 비중을 줄이고, 조건부 재건축 범위를 축소하면 안전진단 통과 단지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국토부 분석 결과 2018년 3월 이후 현행 기준으로 안전진단 절차가 완료된 46개 단지의 경우 '재건축' 판정을 받은 곳은 한 곳도 없었다. 54.3%(25개)가 유지보수 판정을 받아 재건축이 불가했고, 45.7%(21개)는 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앞으로 개선된 기준이 적용되면 앞서 46개 단지중 26.1%(12개)는 재건축 판정을 받고, 50%(23개)가 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는 등 전체의 76% 이상(35개)이 재건축 추진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공공기관 적정성 검토, 지자체 필요한 경우만  

국토부는 이번 개선안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새로 안전진단을 추진하는 단지는 물론 2차 안전진단에서 탈락했거나 현재 안전진단을 수행중인 모든 단지에도 소급 적용하기로 했다. 현재 공공기관 적정성 의무 검토 대상이나 절차를 완료하지 못하고 진행 중인 단지에도 적용된다.
 
적정성 검토 대상 축소와 함께 앞으로 공공기관의 적정성 검토는 지자체가 필요한 경우만 하도록 제한된다. 현행은 민간 안전진단 기관이 안전진단을 수행한 1차 안전진단 점수가 조건부 재건축에 해당되면 의무적으로 국토안전관리원이나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등 공공기관에서 적정성 검토(2차 안전진단)를 받아야 했다.
 
또한 공공기관이 적정성 검토를 요청하는 경우에도 1차 안전진단 내용 전체가 아니라 미흡한 부분에 한해 적정성 검토를 하도록 제도를 개선하기로 했다. 다만 국토부 장관이나 시·도지사가 실태 조사로 미흡한 내용이 확인되거나 분쟁·제보 등이 있는 경우엔 지자체장에 적정성 검토를 권고하거나 시정을 요구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시행되면 침체한 재건축 사업 추진 단지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은지 30년 이상 지나 재건축 연한이 도래한 아파트(200가구 이상) 중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한 단지는 전국적으로 1120개 단지에 이른다. 수도권의 경우 서울 389개 단지, 경기 471개 단지, 인천 260개 단지다.
 
서울에서는 노원구가 79곳으로 가장 많고, 강남구 46곳, 송파구 23곳, 도봉구 34곳, 양천구·강서구 각 22곳, 영등포구 20곳 등이다. 당장 재건축 추진 단지가 많은 양천구와 노원구는 이번 조치의 최대 수혜지역으로 꼽힌다. 업계는 양천구 목동신시가지와 노원구 상계주공 등 안전진단 단계에서 발목이 잡힌 노후 단지의 안전진단 신청이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봤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부동산시장의 연착륙에 미치는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보고 있다. 지금 문제되는 미국의 기준금리가 어디까지 오를지 예상할 수 없다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이런 외부요인의 영향을 국내의 정책변화로 상쇄하기는 쉽지 않다는 시각이다.  
 
부동산 정보 업체인 부동산 114는 이에 대해 “안전진단 합리화 방안에 따라 재건축 추진의 속도가 빨라질 수 있고 안전진단을 신청하거나 통과하는 단지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도심의 주택 공급 기반이 마련되면서 수요자가 희망하는 곳에 양질의 주택 공급이 중장기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이어 “다만 재건축 안진단이 정비사업의 초기단계에 해당되고 고금리 여파로 매수세가 매수심리가 크게 위축돼 있어 거래시장에 온기가 돌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재건축을 추진하던 기존 단지들, 즉 안전진단을 시행하려던 아파트 단지들에게는 호재다”며 “가격급등은 쉽지 않으나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안전진단요건이 변경되더라도 재초환같은 재건축 저해요인은 여전하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며 “재초환은 ‘공공의 이익환수’가 여전히 정부쪽에서 제시되고 있으므로 추후의 정책변화를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승훈 기자 wavele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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