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팰리스’로 드러낸 존재감…유러피안 가구점 ‘헤펠레’의 한수 [이코노 인터뷰]
‘글로벌 시장 전문가’ 스테판 후버 헤펠레코리아 대표 인터뷰
올해로 100주년 맞이한 헤펠레, B2B 강자 타이틀 넘어 B2C로
‘스마트스페이스’ 표방한 브랜드 목표…“‘똑똑한’ 공간 활용 돕는다”
[이코노미스트 김서현 기자] “가족이 한데 모여 밥만 먹던 시절은 옛말에 불과합니다. 이제 집은 주방에서 함께 요리하고, 공부하고, 협업하는 ‘오픈 스페이스’가 됐죠. 헤펠레는 이런 흐름에 발맞춰 가구를 ‘똑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솔루션을 제공합니다.”
‘헤펠레’는 하드웨어 판매에 주력하는 독일 가구·기자재 업체로, 올해로 100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1923년 공구 판매 전문점으로 출발해 가구 업체로 성장했으며, 기업 간 거래(B2B) 업계에서 널리 이름을 알려왔다. 한국에선 2000년대 초반 ‘타워팰리스’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고급 아파트 시장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헤펠레의 국내 매출 규모는 324억원으로 유러피안 동종업계 2~3배 수준이다.
스테판 후버 헤펠레코리아 대표는 장장 27년에 걸친 기간 동안 헤펠레에서 근무했다. 2019년부터 한국 지사 대표로 활동해왔고, 헤펠레 일본 지사 대표직도 10년 역임했다. 그는 헤펠레그룹 본사 임원으로 국제 비즈니스를 담당한 글로벌 시장 전문가로 꼽힌다. 지난 6일 후버 대표를 직접 만나 헤펠레의 제품력과 국내 시장 확대 전략에 대해 들어봤다.
작아지는 집…시장 수요 맞춘 ‘스마트스페이스’
헤펠레 제품의 가장 큰 장점은 높은 품질과 ‘다양성’이다. 헤펠레가 취급하는 제품군은 모듈, 러너, 클라이머, 슬라이딩 도어 등의 전문화된 가구·건축 하드웨어를 비롯해 전자 출입 통제 시스템, 조명 시스템까지 아우른다. 특히 헤펠레코리아는 20만개에 달하는 본사 제품 중 5만여개에 달하는 아이템을 판매하며, 이는 동종 가구 하드웨어 업계의 2~3배 수준이다.
헤펠레가 이토록 다양한 제품을 취급하게 된 것은 제품을 통해 공간의 활용도를 크게 높이기 위해서다. 후버 대표는 헤펠레를 정의하는 단어로 ‘스마트스페이스’를 꼽았다. 그는 “스마트란 디지털뿐 아니라 공간을 영리하게, ‘잘’ 활용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며 “우리는 소비자가 가용 공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만큼 다영한 제품과 솔루션을 마련해놨다”고 자부했다.
이어 글로벌 시장을 관통하는 메가 트렌드를 ‘기능성’이라고 봤다. 그는 “도시의 아파트가 점점 작아지고, 그만큼 가구에는 더 많은 기능이 추가돼야 공간을 똑똑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통념이 전세계적으로 퍼져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노트북을 올려 사용하던 탁자가 간단한 손놀림 하나로 침대가 되고, 잡동사니가 들어찰 수밖에 없는 주방 공간을 통째로 하나의 수납 공간처럼 활용할 수 있는 여닫이문까지. 헤펠레가 이처럼 다양한 기능을 탑재한 가구 부품들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시장에 내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후버 대표는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 역시 집값이 날이 갈수록 비싸지고, 그만큼 1인 가구의 비중도 늘어나는 추세”라며 “삶의 공간이 협소해지면서 공간의 유연성을 요구하는 소비자층이 더욱 두터워졌다”고 전했다.
유럽 시장에서는 그날의 정서에 따라 조명의 무드를 달리할 수 있는 ‘컬러 체인지’가 보편화돼있다. 공간의 극히 일부분인 조명 하나를 바꿨음에도, 공간 전체의 분위기를 다르게 연출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작용한 것이다. 헤펠레가 조명계 선두주자로 내세우는 ‘룩스’에서 주력하고 있는 상품이기도 하다. 후버 대표는 “사실 조명에 따른 정서적 효과는 아직 한국 시장에 정착한 제품군은 아니”라며 “한국 소비자들에게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일환으로써 판매 영역을 넓혀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헤펠레가 잡아낸 한국 시장만의 접근법은 무엇일까. 후버 대표는 한국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을 ‘빨리빨리 문화’로 꼽았다. 그는 “‘소비자가 왕’이라는 인식이 한국 시장에 기본적으로 짙게 깔려있어, 기대하는 서비스의 질이 상당히 높다”며 “유럽 지역보다 훨씬 빠르게 이뤄진 디지털화 역시 판매 과정에서 소비자의 존재감을 극대화했다”고 말했다. 온라인샵이나 유튜브 비디오, 전자 카탈로그 등 디지털 전략 육성이 헤펠레의 또 다른 과제로 남아 있는 이유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라”…‘100년’ 기업의 비결은 약점
이리저리 아무리 손을 대봐도 좀처럼 넘어지지 않는 오뚜기처럼 헤펠레 역시 짧게는 한국시장에 진출한 28년, 길게는 브랜드로서 존재한 100년 동안 숱한 위기를 마주했다. 하지만 이 모든 순간은 하나같이 헤펠레의 성장 기반이 돼줬다.
기능성 다음으로 손꼽히는 헤펠레의 강점은 바로 체계적인 물류 시스템이다. 헤펠레코리아는 지난 2001년부터 곤지암에 있는 물류 창고를 통해 제품을 제공해왔다. 재고가 떨어질 시 매주 운영되는 한공운송수단을 통해 빈 공간을 놓치지 않고 메꿨다.
헤펠레의 물류시스템이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룩스, 러너 등 다양하고 복잡한 부품 특성상 일반적인 규모의 물류 창고로는 재고를 모두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기능의 제품이 브랜드에 신뢰도를 가져다주는 대신 유통 과정에서 일종의 장애물로 작용한 셈이다. 하지만 헤펠레는 물류 시스템에 많은 공을 들여, 이를 브랜드의 강점으로 재탄생시켰다. 단순히 박스째 제품을 들여오는 것이 아니라 패키징을 수반하고, 조립을 더하는 식이다.
B2B 중심의 사업구조를 소비자 대상 사업(B2C) 영역으로 확장해나가는 것 역시 헤펠레가 설정한 다음 목적지다. 후버 대표는 “현재 헤펠레 소비자의 95%는 사실상 함께 가구업계에 종사하는 파트너사”라며 “특히 최종 소비자 중심으로 흘러가는 한국 시장에서는 헤펠레가 더 많은 변화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버 대표는 소비자의 니즈를 이중으로 관통하는 멀티 채널을 통해 B2C 시장에서 승부를 볼 계획이다. 높은 품질로 DIY족들 사이에선 이미 입소문을 탄 바, 이제는 쇼룸 등 소비자가 직접 헤펠레의 제품들을 경험해볼 수 있는 창구를 늘려나갈 예정이다. 후버 대표는 “소비자들이 헤펠레코리아의 쇼룸 등에 방문해 제품을 살피고, 헤펠레의 파트너사인 가구업체들을 통해 이를 집 안에 설치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마련해 놨다”며 “주방, 욕실, 침실 등 일상 깊숙이 자리한 공간들을 중심으로 더 많은 소비자에게 다가갈 것”이라고 전했다.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고 주택 매매량이 감소하는 등 가구업계에 한파가 몰아치는 요즈음, 헤펠레코리아는 더 많은 고객들과의 접점을 확대해나간다. 후버 대표는 “100년을 살아남은 기업에게는 그 어느 곳보다 막강한 힘이 있다”며 “그동안 위기를 기회로 가져온 기업답게 앞으로도 꾸준히 방향성을 유지하며, 시장의 잠재성에 주력할 것”이라고 포부를 전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김천 묘광 연화지, 침수 해결하고 야경 명소로 새단장
2"겨울왕국이 현실로?" 영양 자작나무숲이 보내는 순백의 초대
3현대차 월드랠리팀, ‘2024 WRC’ 드라이버 부문 첫 우승
4'1억 4천만원' 비트코인이 무려 33만개...하루 7000억 수익 '잭팟'
5이스타항공 누적 탑승객 600만명↑...LCC 중 최단 기록
6북한군 500명 사망...우크라 매체 '러시아 쿠르스크, 스톰섀도 미사일 공격'
7“쿠팡의 폭주 멈춰야”...서울 도심서 택배노동자 집회
8다시 만난 ‘정의선·도요타 아키오’...日 WRC 현장서 대면
9 신원식 “트럼프, 尹대통령에 취임 전 만나자고 3~4차례 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