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포토샵으로 '진단서 위조'한 보험사기, 어떻게 잡았을까 [이코노 인터뷰]
['보험사기' 올해는 잡힐까 ]③ 진은성 KB손해보험 보험사기특수조사부 실장
연간 화상보험금 청구만 80회...포토샵 진단서 위조까지
"보험사기 인식 전환 절실...정부 관심 더 높아지길"
[이코노미스트 김정훈 기자]보험료를 내는 가입자 입장에서 보험금을 받는다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닐 수 있다. 가입자가 병에 걸리거나 차 사고가 나는 등 보험금이 지급될만한 사건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험사를 속여 이런 사건을 만들어내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이를 보험사기범이라 부른다. 이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보험금을 받기 위해 정교하고 교묘한 사기수법 개발에 한창이다.
이들 때문에 보험사는 괴롭다.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으니 속수무책이다. 보험사가 보험사기 조사를 위해 전직 경찰 출신들을 데려오고 있는 이유다. <이코노미스트>가 진은성 KB손해보험 보험사기특수조사부(SIU) 조사실장을 만나 보험사기의 심각성을 들어봤다.
보험사기범 잡기 나선 베테랑 전직 형사
지난 5년간(2017~2021년) 적발된 연 보험사기 액수는 8000억~9000억원에 달한다. 이중 90% 이상은 손해보험 상품에서 발생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형 손해보험사들은 자체 조사팀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보험사기조사팀이 탄생했다.
진은성 실장은 경찰서에서 마약과 폭력, 지능수사 관련 부서 근무 경력만 14년인 베테랑 형사 출신이다. 파출소 근무 경력까지 총 20년간 경찰 세계에 몸 담다 2019년부터 KB손해보험 SIU에 합류했다.
진 실장은 “보험사기가 의심되는 건이 있으면 관련 자료를 분석하고 청구자를 직접 만나 면담도 하며 조사를 진행한다”며 “다른 보험사 SIU와 함께 공동조사를 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다른 보험사들 역시 조사와 수사에 능한 전직 경찰관들을 조사관으로 두고 있다. 조사가 전문인 경찰 출신이라도 모든 보험사기를 잡아내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다. 보험금 청구자의 혐의가 명확한데도 극구 부인하거나 법적으로 확인이 필요한 경우, 혹은 혐의 액수가 워낙 고액일 경우는 따로 선별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고 있다. 진 실장은 “보험금을 지급할 때 보험사기로 의심돼도 어쩔수 없이 지급하는 경우가 60~70% 이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험사기 조사 시 정말 다양한 사례들을 마주한다고 설명했다. 또 대부분의 보험사기범들은 보험의 허점을 이용한다고 강조했다.
진 실장은 “한 가입자가 일주일에 3~5차례, 1년간 총 80여회나 화상보험금을 청구한 사례가 있었다”며 “고데기나 다리미, 프라이팬 등을 이용하다 화상을 입었다고 주장하며 청구액만 2800만원이 넘어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화상보험은 심재성 2도 화상(화상 부위에서 하얀 고름이 나오는 수준) 진단서를 받으면 횟수 제한 없이 보험금이 지급된다”며 “면담 조사에 나섰는데 청구자가 몸을 보여주지도 않고 의료검진도 받지 않겠다고 버텼다”고 전했다. 이 사례는 허위로 진단서를 받아 보험금을 부당 편취한 사례로 결국 경찰 수사를 통해 사기가 적발됐다.
그는 또 최근 조사했던 황당한 사기 행위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보험 청구자가 무려 10년 동안 포토샵으로 본인과 가족들 명의 진단서를 위조한 사례다. 청구자는 약 1000여차례 보험금을 청구했고 2억원 이상을 부당 편취했다.
진 실장은 “비슷한 청구가 너무 많아 조사에 나섰지만 사기라고 단정지을 물증이 없었다”며 “진단서에 있는 바코드를 찍어봤더니 청구자의 의료 내역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내역이 나왔다”고 말했다. 알고보니 모든 진단서의 바코드가 가짜였던 것이다.
그는 의료계 반대로 입법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 서비스가 보험사기 방지를 위해서라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청구자가 진단서를 따로 발급받지 않아도 보험사에 의료기록이 자동 전송되는 서비스를 말한다. 그는 “청구 간소화가 되면 진단서를 조작하는 유형의 보험사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보험사기 ‘범죄’로 인식 안하는 것이 문제”
SIU는 수사권이 없어 보험사기 조사는 가능하지만 수사는 할 수 없다. 보험사기가 의심되는 사례가 있어도 청구자가 면담을 거절하거나 조사에 비협조적으로 나와도 별다른 수가 없는 셈이다. 진 실장은 “수사권이 없다 보니 조사에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더 많은 자료를 확보하고 분석하려 노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보험사기 근절을 위해 가입자들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보험금 못 타면 바보’라는 인식이 많아 보험사기를 죄라고 인식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진 실장은 “차 사고가 났는데 본인이 운전자보험 특약 미가입자라는 이유로 옆자리 친구를 운전자로 위장해도 보험사기”라며 “부정한 방식으로 보험금을 편취해도 이를 죄라고 인식하지 않다보니 나중에는 보험사기가 일상이 돼버리는 사기범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보험사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전환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보험사기 피해자가 보험사 뿐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진 실장은 “허위 진료를 받으면 보험금이 나오는 비급여치료 외에 건강보험공단에서 진료비를 지원해주는 급여치료비용도 소모된다”며 “건보료 누수가 계속되면 건강보험 재정 악화로 결국 보험료가 오르니 모두가 피해를 입는 셈”이라고 밝혔다. 이런 방식으로 보험사 재정 악화도 결국 보험료 인상을 가져와 다른 가입자 피해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진 실장은 보험사기 근절을 위해 정부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찰에 수사의뢰를 해도 직접 수사에 들어가는 사례는 매우 적은 편”이라며 “정부도 보험사기를 보험사 책임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제는 사회적 문제로 보고 심각하게 현재의 상황을 바라봐줬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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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때문에 보험사는 괴롭다.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으니 속수무책이다. 보험사가 보험사기 조사를 위해 전직 경찰 출신들을 데려오고 있는 이유다. <이코노미스트>가 진은성 KB손해보험 보험사기특수조사부(SIU) 조사실장을 만나 보험사기의 심각성을 들어봤다.
보험사기범 잡기 나선 베테랑 전직 형사
지난 5년간(2017~2021년) 적발된 연 보험사기 액수는 8000억~9000억원에 달한다. 이중 90% 이상은 손해보험 상품에서 발생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형 손해보험사들은 자체 조사팀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보험사기조사팀이 탄생했다.
진은성 실장은 경찰서에서 마약과 폭력, 지능수사 관련 부서 근무 경력만 14년인 베테랑 형사 출신이다. 파출소 근무 경력까지 총 20년간 경찰 세계에 몸 담다 2019년부터 KB손해보험 SIU에 합류했다.
진 실장은 “보험사기가 의심되는 건이 있으면 관련 자료를 분석하고 청구자를 직접 만나 면담도 하며 조사를 진행한다”며 “다른 보험사 SIU와 함께 공동조사를 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다른 보험사들 역시 조사와 수사에 능한 전직 경찰관들을 조사관으로 두고 있다. 조사가 전문인 경찰 출신이라도 모든 보험사기를 잡아내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다. 보험금 청구자의 혐의가 명확한데도 극구 부인하거나 법적으로 확인이 필요한 경우, 혹은 혐의 액수가 워낙 고액일 경우는 따로 선별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고 있다. 진 실장은 “보험금을 지급할 때 보험사기로 의심돼도 어쩔수 없이 지급하는 경우가 60~70% 이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험사기 조사 시 정말 다양한 사례들을 마주한다고 설명했다. 또 대부분의 보험사기범들은 보험의 허점을 이용한다고 강조했다.
진 실장은 “한 가입자가 일주일에 3~5차례, 1년간 총 80여회나 화상보험금을 청구한 사례가 있었다”며 “고데기나 다리미, 프라이팬 등을 이용하다 화상을 입었다고 주장하며 청구액만 2800만원이 넘어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화상보험은 심재성 2도 화상(화상 부위에서 하얀 고름이 나오는 수준) 진단서를 받으면 횟수 제한 없이 보험금이 지급된다”며 “면담 조사에 나섰는데 청구자가 몸을 보여주지도 않고 의료검진도 받지 않겠다고 버텼다”고 전했다. 이 사례는 허위로 진단서를 받아 보험금을 부당 편취한 사례로 결국 경찰 수사를 통해 사기가 적발됐다.
그는 또 최근 조사했던 황당한 사기 행위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보험 청구자가 무려 10년 동안 포토샵으로 본인과 가족들 명의 진단서를 위조한 사례다. 청구자는 약 1000여차례 보험금을 청구했고 2억원 이상을 부당 편취했다.
진 실장은 “비슷한 청구가 너무 많아 조사에 나섰지만 사기라고 단정지을 물증이 없었다”며 “진단서에 있는 바코드를 찍어봤더니 청구자의 의료 내역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내역이 나왔다”고 말했다. 알고보니 모든 진단서의 바코드가 가짜였던 것이다.
그는 의료계 반대로 입법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 서비스가 보험사기 방지를 위해서라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청구자가 진단서를 따로 발급받지 않아도 보험사에 의료기록이 자동 전송되는 서비스를 말한다. 그는 “청구 간소화가 되면 진단서를 조작하는 유형의 보험사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보험사기 ‘범죄’로 인식 안하는 것이 문제”
SIU는 수사권이 없어 보험사기 조사는 가능하지만 수사는 할 수 없다. 보험사기가 의심되는 사례가 있어도 청구자가 면담을 거절하거나 조사에 비협조적으로 나와도 별다른 수가 없는 셈이다. 진 실장은 “수사권이 없다 보니 조사에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더 많은 자료를 확보하고 분석하려 노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보험사기 근절을 위해 가입자들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보험금 못 타면 바보’라는 인식이 많아 보험사기를 죄라고 인식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진 실장은 “차 사고가 났는데 본인이 운전자보험 특약 미가입자라는 이유로 옆자리 친구를 운전자로 위장해도 보험사기”라며 “부정한 방식으로 보험금을 편취해도 이를 죄라고 인식하지 않다보니 나중에는 보험사기가 일상이 돼버리는 사기범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보험사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전환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보험사기 피해자가 보험사 뿐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진 실장은 “허위 진료를 받으면 보험금이 나오는 비급여치료 외에 건강보험공단에서 진료비를 지원해주는 급여치료비용도 소모된다”며 “건보료 누수가 계속되면 건강보험 재정 악화로 결국 보험료가 오르니 모두가 피해를 입는 셈”이라고 밝혔다. 이런 방식으로 보험사 재정 악화도 결국 보험료 인상을 가져와 다른 가입자 피해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진 실장은 보험사기 근절을 위해 정부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찰에 수사의뢰를 해도 직접 수사에 들어가는 사례는 매우 적은 편”이라며 “정부도 보험사기를 보험사 책임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제는 사회적 문제로 보고 심각하게 현재의 상황을 바라봐줬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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