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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자가 상속받은 부동산을 가족에게 넘긴다면?[임상영 부동산 법률토크]

‘채권자취소권’ 행사해 상속행위 원상회복 가능
소 제기는 상속재산분할협의일로부터 5년 내 해야

서울 강남구 강남세무서 앞 세무사 사무실의 상속, 증여 관련 간판. [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민보름 기자] 채무가 있는 사람은, 자신이 부동산을 상속 받는다고 하더라도 이를 채권자에게 넘겨줘야 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부모 사망 후 상속재산분할협의를 통해 자기가 상속받아야 할 부동산 지분을 취득하지 않고 다른 공동상속인 소유로 넘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채권자 입장에서는 상속 부동산 지분을 통해 자신의 채권을 변제받을 수 있었음에도 채무자의 상속재산분할협의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 버립니다.

이 같은 경우 채권자는 자기 권리 보호를 위해 ‘채권자취소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요. ‘채권자취소권’이란 채무자가 채권자를 해함을 알고 재산권을 목적으로 한 법률행위(사해행위)를 한 경우 채권자가 그 법률행위의 취소 및 원상회복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합니다(민법 제406조 제1항).

그리고 채권자취소권은 채권자가 취소 원인을 안 날로부터 1년, 채무자의 법률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5년 내에 제기해야 합니다(동조 제2항). 채무자의 상속재산분할협의로 인해 자신의 권리가 침해된 채권자는 위 기간 내에 법원에 채권자취소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참고로 상속재산분할협의와 달리 상속포기의 경우에는 채권자취소권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법원의 입장입니다).

법에서 정한 기간이 지난 다음에 채권자취소소송을 제기하면 법원의 판단을 받지 못하고 ‘각하’되는데, ‘법률행위(사해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5년’의 해석과 관련된 대법원 판결을 소개합니다.

사안은 이렇습니다.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던 A가 2011년 8월 사망하자 배우자인 B가 위 부동산 지분의 11분의 3을, 자녀들인 C, D, E, F 4명이 각 11분의 2씩을 공동으로 상속하게 되었는데, 자녀들이 모두 위 부동산을 B가 단독소유하기로 상속재산분할협의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상속 부동산에 대한 B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는 A의 사망일로부터 약 2년이 지난 2013년 6월 접수됐는데, 그 등기 원인은 ‘2011년 8월 상속재산분할협의’로 기재됐습니다. 

그런데 2011년 상속재산분할협의를 할 당시, 자녀들 가운데 C에게는 G라는 사람에게서 빌린 부채만 있을 뿐 위 부동산 상속 지분 11분의 2 외에 다른 재산이 없었습니다. 즉 위 지분이 채무자인 C의 유일한 재산이었는데 상속재산분할협의를 통해 그 재산이 전부 B에게 가게 된 것이지요.

결국 채권자인 G가 이를 알게 되면서 2018년 3월 B를 상대로 위 상속재산분할협의가 사해행위에 해당한다며 법원에 채권자취소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 소송 시점은 가족 간 상속재산분할협의가 있은 날로부터 약 7년이 경과했지만 B명의 소유권이전등기가 마쳐진 날로부터는 아직 5년이 지나지 않은 상태였죠.

사건을 심리한 전주지방법원의 1심과 2심 재판부는 G가 사해행위인 상속재산분할협의가 이루어진 사실을 미리 알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 사해행위가 있던 날을 B명의 소유권이전등기가 마쳐진 날로 보아 적법한 소 제기라는 점을 전제로 판단해 G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다르게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은 “사해행위에 해당하는 법률 행위가 언제 있었는지는 실제로 사해행위가 이뤄진 날을 기준으로 판단하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처분문서에 기초한 것으로 보이는 등기부상 등기 원인 일자를 중심으로 사해행위가 실제로 이뤄졌는지 여부를 판정할 수밖에 없다”고 봤습니다. 그러면서 “취소 대상 법률행위인 상속재산분할협의가 있은 날은 등기부상 등기 원인 일자인 2011년 8월 9일로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소유권이전등기가 난 일자가 아니라 등기부에 나타난 소유권이전 원인(상속재산분할협의)이 발생한 일자를 사해행위가 행해진 날로 본 것인데요. 결국 G가 소송을 제기한 2018년 3월은 취소 대상인 법률행위가 있은 2011년 8월로부터 5년이 지난 시점이기 때문에 기한을 지키지 못한 부적법한 소 제기가 되면서 해당 소송은 각하됐습니다.

상속 등기와 그 경정 등기에 관한 업무 처리 지침(등기예규 제1675호)은 ‘상속 등기를 신청하는 경우의 등기 원인 및 그 연월일’에 관해 협의 분할에 의한 경우에는 등기 원인을 ‘협의 분할에 의한 상속’으로, 그 연월일을 ‘피상속인이 사망한 날’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실제 상속재산분할 협의일과 무관하게 등기부에는 피상속인의 사망일이 곧 분할 협의일로 기재될 수밖에 없는데요. 위 대법원 판결 내용대로라면 만약 피상속인의 사망일로부터 5년이 경과한 후 상속재산분할협의에 따른 소유권이전등기를 접수하게 되면 그 시점은 마찬가지로 상속재산분할 협의일로부터도 5년이 지난 것이 되기 때문에 사해행위 취소소송 제기 기간인 ‘법률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5년’이라는 요건을 충족할 방법이 없게 됩니다.

사해행위 취소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기간이 경과했는지에 대한 판단은 법원의 직권 조사 사항입니다. 그러나 등기부에 기재된 내용대로 실제 법률행위가 이루어진 것으로 법적으로 추정하는 이른바 ‘등기의 추정력’을 고려하면, 법원으로서도 등기부에 기재된 상속재산분할 협의일과는 다른 날을 ‘법률행위가 있은 날’로 인정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채권자가 직접 등기부를 살펴보지 않으면 해당 법률행위가 있었던 사실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고, 등기부의 내용이 변경된 것을 확인해야 비로소 사해행위를 의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감안하면 위 대법원 판결은 채권자의 권리 구제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필자는 법무법인 테오 대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현대건설 재경본부에서 건설·부동산 관련 지식과 경험을 쌓았으며 부산고등법원(창원) 재판연구원, 법무법인 바른 소속 변호사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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