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납 초콜릿’에서 ‘120년 전통기업’으로…1년에 9조원 버는 ‘초콜릿 제왕’ [브랜도피아]
120년 역사 이어온 북미 최대 초콜릿 회사 ‘허쉬’(HERSHEY’S)
대표 제품 허쉬바 외에 키세스·아이스브레이커스 등 생산
국내엔 1980년대에 들어와 현재 롯데제과서 유통
[이코노미스트 김채영 기자] 화이트데이, 밸런타인데이 하면 빠질 수 없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초콜릿’이 있다. 대표 제품들로 ‘연매출 9조원’을 내고 있어 ‘스낵계의 1인자’로도 불리는 이 회사. 120년 동안 역사를 이어온 북미 최대 초콜릿 회사 ‘허쉬’(The Hershey Company)의 이야기다. 허쉬는 대표 제품인 초콜릿바 ‘허쉬바’ 외에 ‘키세스’, ‘브룩사이드’, ‘리세스’, ‘아이스브레이커스’ 등 대표 스낵 브랜드를 운영하며 세계적인 초콜릿 업체로 사랑받고 있다.
두 번의 실패 딛고 ‘초콜릿의 제왕’으로 우뚝 선 ‘밀턴 허쉬’
‘사람은 타인을 행복하게 해주는 만큼 행복하다’
허쉬의 창립자 ‘밀턴 허쉬’가 남긴 말이다. 밀턴 허쉬는 밀크 초콜릿을 미국에 처음으로 선보이며 대중화에 기여한 사업가로 유명하다. 허쉬 초콜릿을 만들기 전 밀턴 허쉬는 미국의 가장 부유한 자산가 중 한 명이자 성공적인 기업가 및 자선가로 인정받고 있었지만, 제과 사업을 두 번이나 실패하며 어려움을 겪었다.
세 번째 시도였던 캐러멜 회사가 성공하면서 용기를 얻은 밀턴 허쉬는 1893년 시카고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를 방문했던 것을 계기로 초콜릿에 관심을 갖게 된다. 당시 박람회에 전시돼 있었던 독일의 초콜릿 제조 기계에 매료됐던 것. 밀턴 허쉬는 곧바로 전시된 기계를 구매해 캐러멜을 위한 초콜릿 코팅을 처음 생산했다.
이후 1년 뒤 밀턴 허쉬가 ‘허쉬 코코아’를 최초로 대중들에게 선보인 것이 지금의 ‘허쉬’ 브랜드 시초가 됐다. 이후 1900년대 후반에 출시된 ‘허쉬 밀크초콜릿’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다크 초콜릿만 존재했던 초콜릿 시장에 밀크 초콜릿을 1875년 처음 선보인 곳은 스위스의 네슬레사(Nestle)지만, 그로부터 25년 후 밀크 초콜릿을 미국에 처음으로 선보인 사람이 밀턴 허쉬였다.
밀크 초콜릿에는 우유 고형물과 설탕이 첨가되어 있어 그 풍미와 질감, 달콤함까지 기존의 초콜릿과는 전혀 달랐고 서민층부터 부유층까지 ‘허쉬바’를 즐길 수 있게 됐다. 수요가 늘어나자 허쉬는 제품 공정을 개편해 독자적인 밀크 초콜릿 제조법을 만들어 냈고, 당시 부유층을 위한 럭셔리 디저트였던 초콜릿을 대량 생산해 대중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했다. 이를 통해 누구나 달콤한 허쉬바를 즐길 수 있게 됐다.
1907년엔 허쉬는 또 하나의 혁명적인 제품을 선보이게 된다. 허쉬 초콜릿과 함께 오랜 시간 사랑 받고 있는 ‘키세스’(Kisses) 초콜릿이다. 허쉬는 포장을 벗기는 대로 손쉽게 입에 넣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고민했고 다크, 밀크, 카라멜, 마시멜로, 아몬드 등등의 다양한 키세스 제품을 만들어 냈다.
각각의 키세스 초콜릿 안에는 작은 종이 띠가 들어있다. 은박지에 삐죽이 솟은 이 종이 띠는 1921년 모조품이 아닌 진짜 허쉬 제품이라는걸 알리기 위해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1920년대 초콜릿 시장이 커지면서 수백여 개의 초콜릿 회사가 문을 열었고 그와 함께 쏟아져 나온 비슷한 제품들과의 차별화를 위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던 키세스 초콜릿만의 아이디어였다.
전쟁과 함께 들어온 허쉬 초콜릿…김혜수 광고도 인기몰이
이외에도 다양한 제품들로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둔 허쉬는 1960년 캐나다를 시작으로 멕시코 브라질 중국 등 여러 나라에 진출해 글로벌 브랜드로 확장했으며, 현재 한국을 포함한 약 60개국에서 초콜릿 제품을 판매 중이다.
허쉬가 국내에 처음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6.25 전쟁 때 미군들이 구호물자로 나누어 준 물량에서 비롯됐다. 전쟁통에도 아이들은 미군만 보면 “기브 미 초코렛, 기브 미 껌”을 외쳤고, 미군 보급품이었던 허쉬 초콜릿은 휴전 이후에도 수십년 동안 인기 밀수품목으로 미국의 부와 풍요를 상징했다고 전해진다.
허쉬 초콜릿은 1984년 해태제과가 라이센스로 국내에서 최초로 생산했다. 당시 해태제과는 경쟁사였던 롯데제과에서 당시 신인 배우였던 채시라를 가나초콜릿 모델로 기용해 인기를 얻자 최고의 하이틴 스타였던 김혜수를 앞세운 CF를 공개하며 마케팅 활동을 펼쳤다. 김혜수가 출연한 광고는 큰 인기를 얻었고, 특히 CF의 배경음악으로 나왔던 미국의 유명 록밴드 시카고의 ‘Hard To Say I’m Sorry’ 노래가 유명해지는 계기가 됐다.
이후 1989년 해태제과가 국내 최초로 미국산 완제품 키세스를 수입 판매했고, 1991년 매일유업과의 계약을 통해 소개된 ‘허쉬 초콜릿 드링크’를 시작으로 ‘허쉬 너겟’, ‘허쉬 아몬드 초코볼’, ‘허쉬 바’ 등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대해 나가기 시작했다. 현재는 롯데제과를 통해 허쉬 제품을 유통·판매하고 있으며, 국내 시장 상황에 맞는 다양한 이벤트와 시도를 통해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롯데제과 관계자는 “허쉬 초콜릿을 유통하고 있긴 하지만 전체 제품에서 차지하는 매출 비중이 크지는 않다”면서도 “자사에서는 가나초콜릿과 함께 주력 제품으로 여겨지며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가 아니여도 꾸준히 잘 나가는 제품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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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실패 딛고 ‘초콜릿의 제왕’으로 우뚝 선 ‘밀턴 허쉬’
‘사람은 타인을 행복하게 해주는 만큼 행복하다’
허쉬의 창립자 ‘밀턴 허쉬’가 남긴 말이다. 밀턴 허쉬는 밀크 초콜릿을 미국에 처음으로 선보이며 대중화에 기여한 사업가로 유명하다. 허쉬 초콜릿을 만들기 전 밀턴 허쉬는 미국의 가장 부유한 자산가 중 한 명이자 성공적인 기업가 및 자선가로 인정받고 있었지만, 제과 사업을 두 번이나 실패하며 어려움을 겪었다.
세 번째 시도였던 캐러멜 회사가 성공하면서 용기를 얻은 밀턴 허쉬는 1893년 시카고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를 방문했던 것을 계기로 초콜릿에 관심을 갖게 된다. 당시 박람회에 전시돼 있었던 독일의 초콜릿 제조 기계에 매료됐던 것. 밀턴 허쉬는 곧바로 전시된 기계를 구매해 캐러멜을 위한 초콜릿 코팅을 처음 생산했다.
이후 1년 뒤 밀턴 허쉬가 ‘허쉬 코코아’를 최초로 대중들에게 선보인 것이 지금의 ‘허쉬’ 브랜드 시초가 됐다. 이후 1900년대 후반에 출시된 ‘허쉬 밀크초콜릿’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다크 초콜릿만 존재했던 초콜릿 시장에 밀크 초콜릿을 1875년 처음 선보인 곳은 스위스의 네슬레사(Nestle)지만, 그로부터 25년 후 밀크 초콜릿을 미국에 처음으로 선보인 사람이 밀턴 허쉬였다.
밀크 초콜릿에는 우유 고형물과 설탕이 첨가되어 있어 그 풍미와 질감, 달콤함까지 기존의 초콜릿과는 전혀 달랐고 서민층부터 부유층까지 ‘허쉬바’를 즐길 수 있게 됐다. 수요가 늘어나자 허쉬는 제품 공정을 개편해 독자적인 밀크 초콜릿 제조법을 만들어 냈고, 당시 부유층을 위한 럭셔리 디저트였던 초콜릿을 대량 생산해 대중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했다. 이를 통해 누구나 달콤한 허쉬바를 즐길 수 있게 됐다.
1907년엔 허쉬는 또 하나의 혁명적인 제품을 선보이게 된다. 허쉬 초콜릿과 함께 오랜 시간 사랑 받고 있는 ‘키세스’(Kisses) 초콜릿이다. 허쉬는 포장을 벗기는 대로 손쉽게 입에 넣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고민했고 다크, 밀크, 카라멜, 마시멜로, 아몬드 등등의 다양한 키세스 제품을 만들어 냈다.
각각의 키세스 초콜릿 안에는 작은 종이 띠가 들어있다. 은박지에 삐죽이 솟은 이 종이 띠는 1921년 모조품이 아닌 진짜 허쉬 제품이라는걸 알리기 위해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1920년대 초콜릿 시장이 커지면서 수백여 개의 초콜릿 회사가 문을 열었고 그와 함께 쏟아져 나온 비슷한 제품들과의 차별화를 위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던 키세스 초콜릿만의 아이디어였다.
전쟁과 함께 들어온 허쉬 초콜릿…김혜수 광고도 인기몰이
이외에도 다양한 제품들로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둔 허쉬는 1960년 캐나다를 시작으로 멕시코 브라질 중국 등 여러 나라에 진출해 글로벌 브랜드로 확장했으며, 현재 한국을 포함한 약 60개국에서 초콜릿 제품을 판매 중이다.
허쉬가 국내에 처음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6.25 전쟁 때 미군들이 구호물자로 나누어 준 물량에서 비롯됐다. 전쟁통에도 아이들은 미군만 보면 “기브 미 초코렛, 기브 미 껌”을 외쳤고, 미군 보급품이었던 허쉬 초콜릿은 휴전 이후에도 수십년 동안 인기 밀수품목으로 미국의 부와 풍요를 상징했다고 전해진다.
허쉬 초콜릿은 1984년 해태제과가 라이센스로 국내에서 최초로 생산했다. 당시 해태제과는 경쟁사였던 롯데제과에서 당시 신인 배우였던 채시라를 가나초콜릿 모델로 기용해 인기를 얻자 최고의 하이틴 스타였던 김혜수를 앞세운 CF를 공개하며 마케팅 활동을 펼쳤다. 김혜수가 출연한 광고는 큰 인기를 얻었고, 특히 CF의 배경음악으로 나왔던 미국의 유명 록밴드 시카고의 ‘Hard To Say I’m Sorry’ 노래가 유명해지는 계기가 됐다.
이후 1989년 해태제과가 국내 최초로 미국산 완제품 키세스를 수입 판매했고, 1991년 매일유업과의 계약을 통해 소개된 ‘허쉬 초콜릿 드링크’를 시작으로 ‘허쉬 너겟’, ‘허쉬 아몬드 초코볼’, ‘허쉬 바’ 등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대해 나가기 시작했다. 현재는 롯데제과를 통해 허쉬 제품을 유통·판매하고 있으며, 국내 시장 상황에 맞는 다양한 이벤트와 시도를 통해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롯데제과 관계자는 “허쉬 초콜릿을 유통하고 있긴 하지만 전체 제품에서 차지하는 매출 비중이 크지는 않다”면서도 “자사에서는 가나초콜릿과 함께 주력 제품으로 여겨지며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가 아니여도 꾸준히 잘 나가는 제품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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