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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반도체 텃세 탓? 대규모 국내 투자 택한 삼성전자…‘이재용 시대’ 개막

2042년까지 300조원 투자
파운드리 1위 대만 TSMC 추격
민관 협력 통해 반도체 산업 성장 기대

지난해 5월 한국을 첫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방문했다. 두 정상이 이재용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공장을 시찰하는 모습.[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삼성전자가 경기도 용인시에 300조원의 투자 계획을 밝히며 사실상 ‘용인 시대’의 개막을 선언했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메모리 반도체 분야 초격차를 유지하고 파운드리는 TSMC를 따라잡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삼성전자는 경기 용인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20년간 300조 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15일 밝혔다. 클러스터에는 첨단 반도체 제조공장 5개를 구축하고 소재·부품·장비 기업을 비롯해 반도체 설계를 담당하는 팹리스 기업 등 150곳을 유치한다는 방침이다.

용인 클러스터는 약 710만㎡ 규모로 평택 생산단지(289만㎡)의 2.5배에 달한다. 용인 클러스터가 완공되면 삼성전자는 경기도에 화성‧기흥‧평택‧용인을 잇는 반도체 생산벨트를 구축하게 된다. 이번 투자가 완료되면 단일 반도체 단지로는 세계 최대 규모가 조성될 전망이다. 간접 생산유발 효과는 약 400조원, 고용유발 효과는 약 160만명에 이를 것으로 기대된다.

기업의 투자에 화답하기 위해 정부도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양자, 인공지능(AI) 등 12대 국가전략기술 연구개발에 향후 5년간 총 25조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또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 외에도 미래차, 원전, 로봇 등 첨단산업별로 전국에 15개 국가첨단산단을 총 4076만 ㎡(약 1230만 평) 규모로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첨단산업단지로 지정되면 개발제한구역 등 각종 입지 규제를 최소화하고, 용수·전력 등 인프라 구축도 지원할 계획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각국이 첨단산업 제조시설을 자국에 유치하기 위해 대규모 보조금과 세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며 “글로벌 경쟁 상황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기술 패권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한국 정부의 가장 공격적인 노력”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8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당시 부회장)이 19일 경기도 용인시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R&D단지 기공식에 참석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미국의 배신, 믿을 곳은 모국(母國)뿐?
재계에서는 삼성전자의 이번 투자 계획과 정부의 지원 약속을 두고 글로벌 경제 위기가 민관의 협력을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업 투자를 통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 국내 경기 활성화를 바라는 정부와, 실질적인 혜택을 바라는 기업의 바람이 맞물려 시너지를 냈다는 뜻이다. 실제 삼성전자 등 우리 기업들이 미국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실질 혜택이 크지 않는 평가가 많다. 미국과 중국이 패권 경쟁을 가속화 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중국 견제,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기업 지원 정책이 쏟아졌지만, 알맹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 삼성전자는 2021년 11월 170억달러(약 21조원)를 투자해 미국 테일러시에 파운드리 공장을 새로 짓고 있다. 이 공장엔 5㎚(나노미터, 1㎚=10억분의 1m)급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최첨단 라인이 들어선다. 올해 초 경계현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장(사장)은 올해 초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있는 파운드리 공장 건설 현장을 방문해 “올해 연말이면 공장(Fab)이 완공된다”며 “내년이면 미국 땅에서 최고 제품이 출하될 것”이라고 했다.

삼성전자가 이런 대규모 해외 투자를 진행하는 배경에는 미국이 세계 최대 반도체 시장이라는 점과 미 정부가 시행하겠다고 약속한 반도체 지원법이 있었다는 해석이다. 미 정부는 반도체 지원법에 따라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총 390억 달러에 달하는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미국 현지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삼성전자도 수혜를 볼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보조금을 받기 위한 세부 조건들을 까다롭게 정하면서 오히려 손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미국은 보조금 지원을 받기 위해서 재무 건전성을 입증하는 수익성 지표와 현금흐름 전망치를 제시하도록 했다. 또 연간 수익이 전망치를 넘어서면 그 일부를 미국 정부와 나누도록 했다. 여기에 반도체 시설을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반도체 업계는 이런 정보가 ‘사업 기밀’이라며 난색을 보인다. 결국 외국 정부의 텃세로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이 가로막힌 것이다.
사진은 삼성전자 반도체 시설 평택캠퍼스 모습. [사진 삼성전자]

반도체 위기, 국가 경제 타격-삼성은 아껴둔 '실탄' 풀어
이번 정부 지원 약속에는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위기를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계산도 깔려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월 ICT 수출은 128억2000만 달러(약 16조7120억원)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32% 줄어든 수준이다. 특히 반도체의 경우 업황 부진으로 지난달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41.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스템과 메모리 반도체 수출은 각각 25.2%, 53.9% 줄었다.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경제 상황과 높은 반도체 의존도를 고려하면 그냥 넘길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TSMC가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던 것도 대만 정부와의 공조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대만 정부는 TSMC를 성장시켜 미국과의 관계를 친밀하게 하는 동시에 유사시 중국의 공격을 막아낼 방패로 삼았다. 이런 정책에 힘입어 TSMC는 글로벌 파운드리 1위 기업으로 올라섰다. 지난해 4분기 파운드리 시장에서 1위인 TSMC와 2위인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각각 58.5%, 15.8%이었다. TSMC 창업자인 장중머우(張忠謀) 전 회장은 과거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TSMC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공격으로부터 대만을 보호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국정농단 사태 등으로 복역하면서 삼성그룹이 사실상 투자를 중단했던 것도 이번 대규모 투자를 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라고 말한다. 이재용 회장의 사면 복권 이후 회장에 취임하고 통 큰 투자를 결정할 수 있던 것도 그동안 투자를 아끼고 자산을 축적해 놨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여러 가지 상황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삼성전자의 대규모 투자 약속이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본격적인 삼성의 ‘이재용 시대’를 맞아 파운드리 세계 1위 목표처럼 새로운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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