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림 후보에 이어 사외이사마저 사퇴…‘경영 공백’에 시름겨운 KT
[KT CEO 잔혹사]①
박종욱 KT 경영기획부문장 직무대행 체제로
“정상화까지는 약 5개월 소요될 것”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 윤경림 KT 차기 대표이사 후보가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지난 3월 27일 결국 사퇴했다. 정부와 정치권 등의 연이은 압박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KT의 CEO 잔혹사가 또다시 재현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윤경림 후보는 “주요 이해관계자들의 기대 수준을 넘어서는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새로운 CEO가 선출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윤 후보는 지난 3월 22일 이사회와 만나 사퇴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당시 윤 후보는 “내가 버티면 KT가 더 망가질 것 같다”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이사회는 “주총까지 버텨달라”며 윤 후보를 필사적으로 만류했으나 끝내 사퇴 의사를 꺾진 못했다.
주총 앞두고 돌연 사퇴한 윤경림 후보
윤 후보는 지난 3월 7일 KT 이사회로부터 차기 CEO 최종 후보로 결정됐다. 3월 31일 열리는 주주총회 때 선임 안건을 상정해 찬반 표결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들을 비롯한 여권은 윤 후보를 향해 그동안 강도 높은 비난을 해왔다.
아울러 국민연금은 KT의 차기 대표이사 선임 과정 초기부터 절차가 공정하고 투명하지 않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주총에서 윤 후보에 대해 반대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검찰은 최근 윤 후보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상태였다. 이는 한 시민 단체가 서울중앙지검에 두 사람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한 데 따른 것이다.
이와 관련해 KT 새노조는 “윤 후보가 주주총회를 앞두고 돌연 사퇴했다”며 “이로써 회사의 혼란은 걷잡을 수 없게 됐다. 이번 대혼란은 구현모 사장이 무리한 연임을 추진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라고 꼬집었다.
윤 후보 사퇴 이후인 3월 28일에는 구현모 대표가 자신 사퇴했다. 아울러 일부 사외이사들도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와 관련해 KT는 “구현모 대표가 일신상의 사유로 대표이사 사퇴 의사를 밝혔고, 일부 사외이사는 최근 일련의 과정에 대한 무거운 책임을 느끼며 사의를 표명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KT는 대표이사 유고 상황이 발생함에 따라 정관 및 직제규정에서 정한 편제 순서에 따라 박종욱 경영기획부문장이 대표이사 직무를 대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KT는 경영 안정화를 위해 대표이사 직무대행과 주요 경영진들로 구성된 비상경영위원회를 신설, 집단 의사결정 방식으로 전사 경영·사업 현안을 우선 해결하기로 했다. 아울러 비상경영위원회 산하에서 ‘성장지속 TF’와 ‘뉴 거버넌스(New Governance) 구축 TF’도 운영하기로 했다.
‘성장지속 TF’는 고객서비스·마케팅·네트워크 등 사업 현안을 논의하게 된다.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뉴 거버넌스 구축 TF’는 대표이사·사외이사 선임 절차, 이사회 역할 등 지배구조 전반에 대한 개선을 추진한다.
특히 뉴 거버넌스 구축 TF는 주주 추천 등을 통해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하고, 전문기관을 활용해 지배구조 현황 및 국내외 우수 사례 등도 점검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국내외 ESG 트렌드 및 다양한 이해관계자 의견을 반영하고, 대외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조속히 마련할 예정이다.
KT 이사회는 뉴 거버넌스 구축 TF의 개선안을 바탕으로 사외이사 선임을 추진한다. 신규 선임된 사외이사들이 중심이 돼 변경된 정관과 관련 규정에 따라 대표이사 선임 절차를 추진하기로 했다. KT 관계자는 “KT가 국내 및 미국에 상장한 기업인 점을 고려하면 지배구조 개선 작업과 2차례 임시 주주총회를 개최해 사외이사 및 대표이사 선임 절차를 완료하려면 5개월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기간을 최대한 단축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대표이사 직무를 수행하게 된 박종욱 사장은 “현 위기 상황을 빠르게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모든 임직원이 서로 협력하고 맡은 바 업무에 집중해 KT에 관심과 애정을 보여준 고객과 주주들의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고객서비스 및 통신망 안정적 운용은 물론, 비상경영위원회를 중심으로 주요 경영 및 사업 현안들을 신속히 결정해 회사 경영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글로벌 스탠다드를 넘어선 지배구조로 개선하고 국내 소유분산기업 지배구조의 모범사례로 남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디지코 전략’ 좌초하나
이번 윤 후보 사퇴로 인해 KT의 ‘경영 공백’은 당분간 계속된다. 지난해 11월 예정됐던 정기인사는 지금까지 미뤄졌고, 이번 사태로 또 기다려야 할 형편이다. 아울러 구현모 전 대표가 계속해서 강조해 왔던 ‘디지코’ 전략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난 2020년 취임한 구현모 전 대표는 ‘디지코’(DIGICO)를 앞세우며 KT를 디지털 플랫폼 기업으로 변화시키고자 노력했다. 기존 국내 통신과 B2C 중심이었던 KT를 디지코 신사업과 B2B, 글로벌로 넓혀나가겠다는 선언이었다. KT의 디지코 전환 전략은 지난해부터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KT는 지난해 어려운 대외환경 속에서도 디지털 플랫폼 기업으로의 성공적인 도약으로 1998년 상장 이후 첫 매출 25조원 시대를 여는 데 성공했다.
KT는 디지털 플랫폼 기업으로 전환을 가속화하며 디지코 및 B2B 사업 성장을 기반으로 수익성을 강화했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2022년 연간 연결·별도 영업이익은 각각 1조6901억원, 1조1681억원을 기록하며 연결 영업이익은 2년 연속 1조6000억원 이상, 별도 영업이익은 2년 연속 1조원 이상을 돌파했다.
특히 윤 후보는 구현모 전 대표 체제하에서 KT의 인수·합병(M&A) 및 신사업 투자를 담당하는 그룹 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을 맡아 왔다. 아울러 현대차와 CJ가 KT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통신업계에서는 윤 후보가 그동안 구현모 전 대표를 도와 ‘디지코’ 전환에 힘써왔던 만큼, 큰 이변이 없는 한 KT의 디지코 전략은 당분간 계속 유지될 것으로 전망해 왔다.
하지만 이번 윤 후보 사퇴를 통해 KT의 디지코 전략은 큰 변화를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여권 측 인사가 향후 KT 대표로 내려올 경우, 구 전 대표 성과 지우기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KT는 새로운 대표가 나올 때마다 경영 전략에 큰 변화가 있었던 곳”이라며 “특히 지금처럼 전임 대표와 후보가 정부와 여당의 압력으로 바뀐 경우에는 더더욱 기존 디지코 전략을 이어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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