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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쇼크 앞에 선 이재용 회장…美·中 사이 줄타기 어떻게 해결할까

[회장 취임 6개월…삼성 이재용號 어디로]①
4.6조 반도체 손실에 감산 결정, 치킨게임 STOP
이병철·이건희 회장의 공격 DNA 안보인다 평가도

지난해 8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당시 부회장)이 19일 경기도 용인시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R&D단지 기공식에 참석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이재용 회장의 시대가 6개월을 넘어섰다.

10월 28일 이 회장은 10년 만에 ‘부회장’ 타이틀을 떼어내며 삼성전자 회장에 올랐다. 개인적인 글로벌 인맥과 삼성전자의 영향력을 통해 활발한 대외 활동을 전개하고 있지만, 삼성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가 최근 실적 부진에 휘청거리고 있다는 점이 우려의 요소로 지목되고 있다.

회장 취임 후 가장 큰 첫 결정 ‘반도체 감산’

최근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감산 결정은 이재용 회장 취임 이후 내려진 가장 큰 결정이란 평가가 나온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경계현 사장 등 삼성전자의 대표이사가 있지만, 이 회장의 재가 없이 이런 결정이 나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반도체 감산’ 선언이 있기 불과 수개월 전, 올해 초까지 한종희 부회장과 경계현 사장은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 위축과 수요 감소, 대규모 손실 우려에도 “인위적인 감산은 없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지난 4월 7일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잠정 영업실적을 공개하면서 “의미 있는 수준까지 메모리 생산량을 하향 조정 중”이라고 밝혔다. 회사 측은 “특정 메모리 제품은 향후 수요 변동에 대응 가능한 물량을 확보했다는 판단 아래 이미 진행 중인 미래를 위한 라인 운영 최적화 및 엔지니어링 런 비중 확대, 공급성이 확보된 제품 중심으로 메모리 생산량을 하향 조정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배경에는 최근 삼성전자 실적 부진이 자리한다. 지난 1분기 삼성전자는 6402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1조원을 밑돈 것은 2009년 1분기 이후 13년 만이다. 부진의 원인은 반도체 사업 악화다. 삼성전자는 4월 27일 실적 발표를 통해 반도체 부문 영업손실액이 4조5800억원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의 사업은 크게 DX, DS, SDC로 나뉜다. DX는 가전‧컴퓨터 등을 DS는 DRAM, NAND Flash 등 반도체를 SDC는 중소형 OLED 등을 담당한다. 지난해 1분기 삼성전자가 77조7814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을 때, 이중 DX부문에서 48조686억원을 담당했지만, 영업이익은 DS부분이 8조4501억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당시 DS부문 매출액은 26조8674억원이었다.

그런데 최대 영업이익률을 내면서 삼성전자의 실적을 견인했던 DS사업부가 이제는 삼성전자의 최대 손실을 내는 부서가 된 것이다. 이런 충격에 삼성전자는 ‘무감산’ 기조를 철회하고 위기에 경쟁사를 고사시켜 메모리 반도체 시장점유율을 높이려던 ‘치킨게임’ 전략을 포기했다는 해석이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메모리 삼두체제의 정상 자리가 너무 편해진 삼성전자가 타사 점유율을 더 빼앗으려는 의욕이 사라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감산을 두고 ‘경쟁사가 사라졌을 때 독점기업이 감내해야 할 글로벌 제약을 고려했을 것’이라는 풀이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해석에 고개를 내젓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작은 지역에서도 독점 가게가 누릴 수 있는 장점이 많은데, 글로벌 기업이 전 세계 시장에서 독점하는 상황이 되면 그 이점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했다. 제품 생산 규모나 단가를 혼자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사업의 경우 초기 투입이 비용이 많아 진입장벽이 높다”며 “지금도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세 업체가 과점하는 상황인 것을 고려하면 삼성전자가 독점 시 제약을 걱정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은 지난 2월 임직원들에게 “왜 감산하지 않냐는 질문이 많지만 지금 우리가 손 놓고 다른 회사와 같이 가면 좁혀진 경쟁력 격차를 벌릴 수 없다”며 “지금이 경쟁력 확보의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또 “메모리 점유율 40%에 만족하면 안 된다. 예전 인텔 CPU처럼 90% 점유율이 왜 안 되겠느냐”라고도 했다.

이병철-이건희 회장, 위기일수록 GO

이런 상황은 위기일수록 공격적으로 나섰던 이병철 삼성전자 창업회장과 이건희 선대회장의 경영 방침과 차이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 1982년 이병철 회장은 “지금 단계의 국가적 과제는 ‘산업의 쌀’이며 21세기를 개척할 산업혁신의 핵인 반도체를 개발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의 나이 73살이었다. 한국이 미국과 일본의 기술 수준을 따라갈 수 있을지, 막대한 투자 재원은 마련할 수 있을지, 혁신의 속도를 감당할 수 있을지 등의 난제에도 과감히 뛰어든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20여 년 전 “지금 투자를 안 하면 후배들은 언제 1등을 해보고 글로벌 1등을 지킬 수 있겠나”라며 조 단위 투자가 필요한 12인치 웨이퍼(반도체 원료) 개발과 양산을 결단했다고 한다.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 사장으로 삼성의 ‘메모리 반도체 글로벌 1등’ 신화를 이끌었던 황창규 전 KT 회장은 자서전을 통해 이같이 회고했다. 2000년대 초반 플래시 메모리 최강자였던 일본 도시바가 삼성전자에 기술 제휴를 제의했을 때 이건희 회장이 독자 개발을 주장하는 황 전 회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줬다는 것이다. 이 결단으로 삼성전자는 1년 뒤 도시바를 제치고 플래시 메모리 세계 1위 기업에 올랐다.

불황을 버티기 위해 삼성전자는 지난 2월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원의 자금을 차입하기도 했다. 회사 측은 “운영자금 활용을 위해 차입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넘치는 재고자산을 원가 이하로 팔아 손실을 내기보다 자금력을 바탕으로 불황을 견디고, 추후 반도체 호황기가 돌아오면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다만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감산’ 계획을 밝히면서도 “장기적으로는 견조한 수요가 전망된다”며 “필수 클린룸 확보를 위한 인프라 투자는 지속하고 기술 리더십 강화를 위한 연구·개발(R&D) 투자 비중도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오른쪽 두 번째)이 베트남에 위치한 SEV 스마트폰공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美‧中 사이에 낀 삼성전자, 선택 기로에 놓인 JY

이재용 회장에게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과제도 있다. 최근 미국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하면서 중국 견제를 강화했는데, 삼성이 어느 한쪽을 택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이재용 회장은 중국 출장을 다녀오면서도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찾지 않았다. 회사 측은 이 회장의 주된 목적이 “톈진 삼성전기 사업장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생산 현장을 점검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지만, 미국과 중국의 대립 상황에서 반도체 사업장을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최근에는 미국 행정부가 우리 정부에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한국기업이 중국에서 발생한 메모리 반도체 공백을 메워선 안 된다는 요청을 했다는 내용의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영국 일간지인 파이낸셜타임스는 백악관 등 소식통을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사실이라면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 동맹국에 직접 대중 견제 요청을 한 것은 처음이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 경영이 갈수록 국제적인 상황과 맞물려 복잡해지고 있다”며 “이런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따라 이재용 회장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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