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 반도체 어렵지만 ‘투자’는 계속…하반기 실적 반등할까
[한국 반도체의 명암]③
삼성전자, 무감산 계획은 틀었지만 투자는 ‘go’
SK하이닉스, 선택과 집중 R&D에 주력
반도체 매출 감소세 지난 3월부터 진정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국내 대표 반도체 기업들이 글로벌 경기침체와 반도체 수요 감소로 대규모 손실을 기록하고 있지만,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호황과 불황을 오가는 메모리 반도체 업황 특성을 고려할 때 이번 고비를 넘기면 다시 반등의 기회가 올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가 9일 발간한 ‘2023년 SIA 팩트북’을 보면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시설‧연구개발(R&D) 등에 매년 매출의 30%에 이르는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미국 반도체 기업의 매출액 대비 시설투자 규모는 평균 15% 선을 넘었다. 시설투자 평균 비중이 매출액의 15% 넘은 것은 20년 만에 처음이다. SIA는 “반도체 제조업체는 빠른 속도의 산업 혁신으로 첨단 장치들을 계속 생산해야 하는데 막대한 투자가 불가피하다”고 전했다.
실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우리나라 주요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 규모를 보면 투자가 어느 정도의 공력을 쏟는지 짐작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에만 시설 투자에 20조2000억원을 사용했다. 사업별로는 반도체 18조8000억원, 삼성디스플레이 4000억원 수준인데 반도체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이 정도의 막대한 투자는 비단 한차례로 끝나는 게 아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년 동안 53조1000억원의 투자를 단행했다. 이 중 반도체 투자가 90%(47조9000억원)에 달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의 경우 평택 3, 4기 인프라와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등 첨단 기술 적용 확대, 차세대 연구 개발 인프라 확보를 위한 투자를 중심으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파운드리는 평택 첨단 공정 생산 능력 확대와 미래 수요 대응을 위한 3나노 초기 생산 능력과 미국 테일러 공장 인프라 구축에 투자를 집중했다”고 밝혔다.
주목할 점은 2022년 하반기에 삼성전자의 실적이 급격히 나빠지는 상황에서도 투자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지난해 1분기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부문 영업이익은 8조4501억원, 2분기에는 9조9810억원, 3분기에는 5조1152억원, 4분기에는 270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에는 4조5800억원의 손실을 낸 가운데 10조7000억원을 시설투자비로 집행했다. 이는 1분기 기준 역대 최대 투자액이다. 이 중 반도체 사업에 투자한 금액이 9조8000억원에 달한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과 실적 부진에 “인위적 감산은 없다”던 당초 입장을 ‘의미 있는 수준의 감산을 진행’하는 것으로 바꿨지만, 투자만큼은 줄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월 경영실적 컨퍼런스콜에서 김재준 메모리사업부 전략마케팅실장(부사장)은 “공정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엔지니어 런 비중을 확대하고 캐팩스(라인 증설과 제조 설비에 투입되는 총비용) 내에서 연구개발(R&D) 항목 비중도 이전 대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한 바 있다.
SK하이닉스도 투자를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 대신 ‘선택과 집중’에 방점을 찍었다. SK하이닉스는 앞서 반도체 수요 위축에 실적 부진이 예고되자 생산량 감축과 투자 축소를 선언했다. 지난해 10월 SK하이닉스는 2022년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유례가 없는 상황”이라며 위기를 강조했다. 연간 10조원 넘는 투자를 단행했던 SK하이닉스는 2023년 투자 규모를 절반 수준으로 줄일 계획을 밝혔다.
다만 DDR5 등 최신 메모리 제품에 대한 투자는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지난 3월 진행한 정기 주주총회에서 “투자를 축소한다는 것은 기술 개발을 멈추겠다는 의미가 아니다”라며 “메모리반도체의 양산과 기술 개발에 대한 캐팩스를 어떻게 조정할지 고민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박 부회장은 “우리는 반도체에 요구되는 기술적 진화를 위해 끝없이 노력할 것이고 경쟁사들보다 기술적 변곡점에서 앞서고 있다”며 “투자 축소로 그것이 저하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급업체 감산 효과, 반도체 시장 꿈틀
이런 투자가 반도체 호황기에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SIA,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내년에는 좋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반도체 매출 규모는 5564억6800만 달러 수준이 될 전망이지만, 내년에는 6020억 달러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D램‧낸드 재고는 2분기에 정점을 찍으면서 감산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며 “생산 라인 재배치를 통한 간접적 감산과 웨이퍼 투입량 축소 등의 효과는 3분기부터 동시에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광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생산 리드타임을 고려하면 감산을 통한 공급 축소 효과가 2분기 말부터 점진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해 하반기에 극대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근 글로벌 반도체 매출이 바닥을 다지고 있다는 신호도 감지되고 있다. 5월 4일(현지시각) SIA는 지난 3월에 글로벌 반도체 매출액이 전달(2월)보다 0.3% 늘었다고 전했다. 10개월 연속 이어지던 매출 감소세가 돌아선 것이다.
존 신인 SIA 회장은 “1분기 매출은 시장 사이클과 거시경제 역풍에 따라 감소세를 이어갔지만, 월별 기준으로는 약 1년 만에 증가했다”며 “수개월 안에 업황이 반등할 수 있다는 낙관론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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