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종교의 위대한 족적…"영광이로세, 법성이구나" [E-트래블]
불교·원불교·기독교 등 다양한 종교 흔적 찾을 수 있어
국토부 ‘대한민국 자연경관대상’ 최우수상 수상한 드라이브 코스 유명
[강석봉 스포츠경향 여행전문 기자] 영광하면 '빼박' 굴비다. 그 맛에 취한 이가 한둘이 아니다. ‘굴비’ 원류는 추론이 난무해도, 맛은 두말이 필요 없다.
굴비는 왜 그리 불릴까. 돌아보니, 屈(굽을 굴)자가 여러 스토리를 엮어낸다. 조기란 놈이 품성이 강직한지 강직성 척수염인지 소금을 쳐도 굽어지지 않아 그렇게 불렸다고도 하고, 고려말 임금에게 선물하면서도 비굴해 선물 보내는 게 아니란 뜻으로 쓴 '정주굴비'가 보통명사가 됐다는 얘기도 있다. 조기 두름을 말릴 때 매달아 놓으면 등이 굽게 되는 데, 그 모양이 산 '굽이'처럼 굽었다 하여 한자로 구비(仇非)라 썼는데, 이게 어의전성돼 굴비가 됐다는 말도 설도 있다. 근데 말이다. 굴비도 자기가 왜 굴비가 됐는지 모르는 마당에 머리 아프게 따지기보다, 굴비와 스킨십을 나눈 것으로 행복감에 빠져들면 어떨까. '금강산도 식후경'이듯, 조기로 배 채웠으면 영광 여행 제대로 떠나볼까!
백제불교 최초도래지…인도승이 오셨네
마라난타는 인도승이다. 그가 바다를 건너 백제에 처음 발을 디딘 곳은 법성포다. 이를 기념해 백제불교 최초도래지에는 23.7m 높이의 사면대불상이 서 있다. 그 뒤편 엘리베이터를 타면 바로 법성포다.
중국에서 불교를 전래 받은 고구려·신라와 달리 백제는 이렇게 바다로 불교가 전래됐다. 이곳에는 간다라 불교 문화예술의 특징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간다라 유물관, 간다라 사원 양식의 대표적인 탑원이 자리하고 있다. 건물 자체가 이채롭다.
간다라 유물전시관의 유물들은 모두 파키스탄 대사관의 협력으로 전시됐다. 스와트, 페샤와르, 탁실라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간다라 불교문화에 대한 실명과 실제 2~6세기쯤 소조불상불두들과 전각 등이 있다.
간다라 유물전시관을 나오면 108개의 계단이 보이고, 그 시작점에 부처님의 발자국 모양이 찍힌 ‘불족적’이 있다. 108번뇌를 하나하나 녹이며 108개의 계단을 올라 부처님과의 만남에 이른다는 말이 전해진다.
족장부터 사면대불로 향하는 계단 가운데엔 부용루라는 이름이 붙은 법랑이 있다. 부용루 벽면에는 석장 이재순 장인이 23면에 걸쳐 부처님의 전생 인연담과 일대기를 부조 조각을 통해 한눈에 볼 수 있다.
불갑사…백제불교 중 갑이다
마라난타 존자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에도 전해진다. 침류왕 원년(364)에 인도 서북 지역의 간다라 마라난타 성인이 중국을 거쳐 백제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법성포에 당도하며 불법이 시작됐다는 것이 그것. ‘부처 불(佛), 첫째 갑(甲)’이라는 말이 불갑사의 위세를 대변한다. 이렇듯 불갑사는 마라난타 존자가 백제에 와 처음 세운 절이다. 모악산이라 불리던 산 역시 불갑사가 들어서며 ‘불갑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불갑사는 세 가지 간다라 양식을 확인할 수 있다. 대웅전 지붕 한가운데에 툭 튀어나와 있는 스투파, 소슬꽃무늬와 보리수문양, 보상화문의 문양이 조각된 화려한 색감의 대웅전 정문, 석가모니불을 북쪽에 놓고 남쪽을 바라보게 배치해 대웅전의 정면과 우측면을 모두 출입문으로 사용하는 것이 그것이다.
불갑사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는 고려 충정왕 3년(1350) 때다. 당시에는 31개의 암자에 1000여 명의 스님이 머물렀던 으뜸 사찰이었다고 한다. 각진 국사가 입적한 후 제자들이 사리함을 불갑사로 옮겨 왔으며, 왕명으로 비문을 썼다. 지금도 불갑사 경내에는 각진국사비가 모셔져 있다. 하지만, 정유재란과 6·25 한국 전쟁 등으로 사찰이 완전히 전소되면서 현재는 비문의 내용을 알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훼손됐다.
불갑사 일주문을 지나면 탑원과 108좌대가 있다. 마라난타의 출신지인 간다라 양식에 따라 조성된 탑원을 본뜬 것이다.
불갑사 천왕문을 들어서면 3.5m 크기의 목조 사천왕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59호)이 있다. 전북 무장 소요산 연기사에 있던 사천왕상은 연기사가 전소하면서 설두대사에 의해 1876년 불갑사로 옮겨졌다. 그 이후부터는 ‘사천왕의 보호 덕분’에 불갑사의 전각이 타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원불교 영산성지…원불교 뿌리는 영광
원불교의 창시자인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는 영광에서 나고 자랐다. 영산성지는 소태산이 깨달음을 얻고 제자들을 양성한 원불교 발상지다.
소태산은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다고 전해진다. 호기심 많던 소태산은 자신의 의문을 풀고자 11살부터 5년간 매일 삼밭재 마당바위에 올라 산신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그렇게 해도 산신은커녕 하물며 도사도 만날 수 없었다.
소태산의 세상에 대한 의문은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그러다 1916년 4월 28일 새벽, 26살의 소태산은 한순간 몸이 가벼워지며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렇게 원불교가 탄생했다. 소태산이 깨달음을 얻은 ‘대각절’은 원불교의 가장 큰 명절이다.
기독교ㆍ천주교인 순교지
영광에서는 6·25 한국전쟁 당시 194명의 기독교인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북한군에게 기독교인들은 처단의 대상이었다. 염산교회와 야월교회에서는 학살 당시의 아픔을 엿볼 수 있다.
염산교회에서는 교인 77명이, 야월교회에서는 전 교인 65명이 2~3개월에 걸쳐 목숨을 잃었다.
1937년 설립된 영광성당의 역사는 올해로 81년째다. 하지만 1801년 신유박해 시기에 총 여섯 명의 박해 받은 순교자가 나왔다. 이 중 이화백과 양반 오씨의 참수터는 성당 앞 도동리 석장승(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1호)이 있는 자리로 추정한다.
이에 영광성당은 이를 기억하기 위해 순교자기념관을 개관했다.
백수해안도로…기러기 포토존 인기
영광군 백수읍 길용리에서 백암리 석구미 마을까지 16.8㎞에 달하는 해안도로로, 서해안의 대표적인 드라이브 코스다.
특히 해안도로 아래 목재 데크 산책로로 조성된 3.5㎞의 해안 노을길은 바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걷기와 함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2006년 건설교통부의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2011년 국토해양부의 제1회 대한민국 자연경관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이곳의 괭이갈매기 서식지는 천연기념물 제389로 지정됐다. 노을전망대 갈매기상은 포토존으로 유명하다. 국내 유일의 노을전시관을 비롯하여 다양한 펜션과 음식점 등이 갖추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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