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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DNA’ 심나…롯데바이오로직스의 CDMO 사업 전략은

[롯데바이오로직스 출범 1년]②
‘퓨어 CDMO’ 전략 내건 롯데바이오로직스
“신약 개발 없이 제품 생산에만 집중할 것”

롯데바이오로직스가 지난해 말 인수를 마친 미국 시러큐스 공장 내부 전경 [사진 롯데바이오로직스]
[이코노미스트 선모은 기자]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출범한 지 1년을 겨우 넘긴 신생 기업이다. 그러나 목표는 작지 않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5월 롯데바이오로직스 출범을 예고하며 10년 뒤 이 회사를 세계 10위권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를 뒷받침할 자금 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4조원에 육박하는 자금을 투입해 국내 부지에 36만ℓ 규모의 의약품 생산공장을 신설할 계획이다. 이미 글로벌 제약사인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큅(BMS)으로부터 바이오의약품 생산 공장을 2200억원을 들여 인수했다. 이 공장에선 현재 항체의약품만 생산하고 있으나,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수천억원을 투입해 이 공장을 항체-약물 중합체(ADC) 전문 생산 시설로 탈바꿈할 계획이다.

CDMO 후발주자…삼바 성장 전략 흡수

롯데바이오로직스가 CDMO 설비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는 건 이 시장에 뒤늦게 진출한 만큼 선도 기업과 격차를 좁히기 위해서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스위스의 론자, 독일의 베링거인겔하임, 미국의 캐털런트 등 글로벌 CDMO 기업은 물론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비교해도 업력이 십수년 이상 뒤처져 있다. 생산 규모와 기술력에서도 이들 기업을 당장 따라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국내에만 62만ℓ 규모의 의약품 생산 설비를 구축했고 7조원을 더 투자해 이와 비슷한 규모의 생산 시설을 추가로 마련할 계획이다. 중국의 우시바이오로직스와 일본의 후지필름다이오신스도 CDMO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최근 잇따라 설비 증설 계획을 발표했다.

롯데바이오로직스가 선도 기업들과 함께 주요 CDMO 기업으로 꼽히려면 이들 기업을 앞지르거나 최소한 비등한 수준의 CDMO 역량을 갖춰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당장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성장 모델을 따라가는 모습이다. 10여 년 동안 4개 공장을 준공한 삼성바이오로직스처럼 자금 투입을 통한 외형 확대에 집중하고 있어서다.

실제 롯데바이오로직스는 글로벌 제약사의 해외 공장을 인수하고 국내 생산 공장을 신설해 2030년까지 국내외 4개 공장을 확보할 계획이다. 이원직 롯데바이오로직스 대표도 올해 1월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정답을 알고 가는 만큼 세계 순위권 기업이 될 수 있다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설비를 빠르게 확장해 매출을 키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성장 전략을 따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의약품 생산에만 집중하는 이른바 ‘퓨어 CDMO’ 전략도 사업 방향으로 제시했다. 퓨어 CDMO 전략은 치료제를 직접 개발하지 않고 다른 기업이 의뢰한 의약품만 개발·생산하는 사업을 말한다. 기업들은 CDMO 서비스를 이용할 때 연구개발(R&D)과 관련한 정보를 CDMO 기업에 상당 부분 넘긴다. 중요한 정보를 노출하게 되는 만큼, 신약 등을 개발하는 CDMO 기업엔 수주를 맞기지 않을 공산이 크다.

롯데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CDMO 사업 특성상 기밀 유지가 중요하다”며 “퓨어 CDMO는 CDO와 CMO 사업에만 집중해 기술 유출 우려를 최대한 줄이자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롯데바이오로직스가 인천 송도에 구축할 롯데 바이오 캠퍼스 조감도 [사진 롯데바이오로직스]
부족한 기술력은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을 통해 쌓아갈 계획이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기술 이전과 공동 연구 등을 포괄하는 R&D 체계다. 공동 개발과 임상 등을 통해 R&D 비용 부담을 줄이면서도 신약 개발을 경험하고 임상 역량을 쌓을 수 있다. 이를 위해 롯데바이오로직스는 국내 공장 부지에 스타트업이 입주할 수 있는 건물을 세워 ‘바이오벤처 이니셔티브’를 구축할 계획이다.

신약 개발 기업에 실험실을 제공하고 임상·상업화·생산을 지원해 오픈 이노베이션을 추진하기 위해서다. 마이클 하우슬레이든 롯데바이오로직스 미국 법인장은 지난 5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바이오코리아에서 “바이오벤처 이니셔티브를 통해 중소형 기업들이 아이디어 단계의 신약 개발 기술을 상업화 단계로 구현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며 “새로운 치료제 개발을 지원해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데 롯데바이오로직스가 기여하겠다”고 했다.

관건은 롯데바이오로직스가 이런 전략으로 수주 성과를 낼 수 있느냐다. 업계에선 롯데바이오로직스의 행보를 “과감한 도전”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이 기업이 실제 성과를 낼 수 있을지를 두고선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CDMO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기틀을 이제야 닦고 있는 데다, 법인 출범 이후 수주와 관련한 별다른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어서다. 기존 CDMO 기업들과 사업 전략이 크게 다르지 않은 점도 향후 성과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있다.

상황을 뒤집을 열쇠는 이 회사가 BMS로부터 인수한 시러큐스 공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롯데바이오로직스의 사업 방향은 대체적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유사하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달리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미국 현지에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회사는 시러큐스 공장에 소속된 직원 90% 이상을 흡수해 전문성을 확보하고, 향후 이 공장을 중심으로 미국 내 기업들과 직접 소통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미국 현지에 생산 시설을 구축한 만큼, 향후 미국 정부의 보호주의 정책에도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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