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신용등급 스플릿…‘등급쇼핑’ 악습 부활하나
[신평사들의 무뎌진 칼날] ②
그룹 계열지원 유무에 희비 엇갈린 롯데 신용등급
평가 모델·수집정보 등 차이 보여…정보 왜곡 가능성
[이코노미스트 마켓in 이건엄 기자] 경기 불확실성이 확대됨에 따라 국내 기업들의 신용등급 스플릿(신용평가사 간 등급 불일치)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신용평가사마다 평가 기준이 다른데다 업황과 실적 등 대내외 요인 변동폭이 확대되면서 신용등급 스플릿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에 따라 기업이 좋은 신용등급을 부여하는 신용평가사를 우대하는 일명 ‘등급쇼핑’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신용평가 업계에 따르면 올해 한국기업평가(이하 한기평)와 한국신용평가(이하 한신평), 나이스신용평가(이하 나신평) 등 국내 신용평가 3사가 동일 기업에 부여한 등급이 엇갈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신용등급 스플릿이 발생할 경우 조달 금리와 베팅 금리를 산정하기 어려워진다. 스플릿 상태에 놓여진 기업은 공모 회사채 발행 시 낮은 등급의 민간채권평가사(민평) 금리를 기준으로 채권 가격을 책정하기 때문에 조달 비용 상승 등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현재 신용등급 스플릿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롯데렌탈과 롯데캐피탈, 롯데물산, 롯데오토리스 등 롯데그룹 계열사들이 있다. 롯데케미칼 등 그룹 내 핵심 계열사들이 흔들리면서 관계사들의 신용등급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한기평과 나신평은 롯데렌탈의 신용등급 및 전망을 AA-(부정적)에서 A+(안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반면 한신평의 경우 AA-(안정적)을 유지하며 신용등급에 변화를 주지 않았다. 롯데케피탈 역시 한기평과 나신평이 AA-(부정적)에서 A+(안정적)으로 하향 조정한 반면 한신평은 AA-(안정적)을 유지했다.
롯데물산의 경우 한기평만 유일하게 등급을 하향 조정해 눈길을 끌었다. 한기평은 롯데물산의 신용등급을 AA-(부정적)에서 A+(안정적)으로 강등시켰다. 한신평과 나신평은 AA-(안정적)을 유지했다. 롯데오토리스도 한신평과 나신평이 A(안정적)을 유지한 반면 한기평은 A(부정적)에서 A-(안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한기평이 롯데물산과 롯데오토리스에 대한 신용등급 조정을 나홀로 단행한 것은 롯데그룹의 유사시 계열 지원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한기평은 롯데물산과 롯데오토리스의 신용등급 강등 이유로 롯데케미칼의 신용등급 하향에 따른 유사시 계열지원 능력 약화를 꼽았다.
롯데그룹 외에 등급 스플릿 현상이 발생한 기업으로는 SK실트론과 한국자산신탁, SK쉴더스 등이 있다. SK실트론은 한신평만 유일하게 A(긍정적)에서 A+(안정적)으로 상향 조정했다. 한신평은 SK실트론의 신용등급 상향 이유로 업황 악화 속에서도 확대된 이익 창출 능력과 장기공급계약에 따른 우수한 수익 실현 가능성을 꼽았다. 한기평과 나신평은 SK실트론의 신용등급을 A(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SK쉴더스의 경우 SK실트론과 반대로 한신평으로부터 유일하게 신용등급 강등을 당했다. 한신평은 SK쉴더스의 신용등급을 A(안정적)에서 A-(안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최대 주주가 SK스퀘어에서 사모펀드(PEF)인 EQT파트너스로 변경됨에 따라 그룹의 '유사시 지원 가능성'이 배제 됐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한기평은 SK쉴더스의 신용등급을 A(안정적)로 유지하고 있다. 한국자산신탁도 한기평과 나신평이 신용등급을 A(안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과 달리 한신평이 A-(긍정적)로 평가하며 등급 스플릿 상태에 놓여 있다.
신용등급 차이로 신뢰도 하락
이처럼 신용등급 스플릿이 발생하는 이유는 신평사마다 등급 평가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기평과 한신평, 나신평은 각각 독자적인 평가 방법과 모델을 사용하는데, 이 때문에 동일한 기업일지라도 서로 다른 신용등급이 부여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차이를 보이는 평가 지표로는 계열지원 유무와 업황 전망 등이 있다. 롯데그룹 계열사에 대한 신평사들의 등급 평가가 엇갈린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신평사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방식이 다른 점도 스플릿 현상의 주된 요인 중 하나다. 기업으로부터 받는 데이터의 범위와 질이 신평사별로 다르다 보니 등급 불일치 현상이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신평사마다 산업별 이해도 역시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신용등급 판단이 갈릴 수밖에 없다.
한 신평사 관계자는 “신평사별로 평가 방법과 모델의 차이로 인해 동일한 기업에 대해 다른 신용등급을 부여할 수 있다”며 “전문성과 경험 수준에 따라서도 평가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신용등급 스플릿 현상이 두드러질수록 기업들의 등급쇼핑 가능성 역시 커진다는 점이다. 등급쇼핑은 기업들이 회사채를 발행할 때 신평사들과 사전에 접촉해 좋은 신용등급을 제시하는 신평사를 선택하는 행위를 말한다.
즉 자금조달비용을 줄이기 위해 높은 등급을 받으려는 기업과 수수료를 챙기려는 신평사의 이해관계가 만든 악습인 셈이다. 등급쇼핑으로 발생한 정보 왜곡은 자칫 다수의 투자자들이 부실채권을 떠안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한 신용평가 업계 관계자는 “기업의 신용평가에는 경제적, 정치적, 금융시장의 변동 등 다양한 요인들이 영향을 준다”면서도 “신용등급이 차이를 보이게 된다면 기업과 투자자들의 평가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등급 불일치는 신용평가 시스템의 한계를 보여주는 요인 중 하나”라며 “신용평가사들이 이를 보완하고 신뢰성 있는 평가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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