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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할리우드 ‘꿈의 공장’ 노동자를 거리로 내몰다 [한세희 테크&라이프]

AI로 ‘더 실사’ 같은 영상 제작, 사례 다양
할리우드 ‘꿈의 공장’ 직군, 기술에 영향
위기의식 확산…작가·배우, 60년 만에 동시 파업

미국 배우 방송인 노동조합이 지난 7월 총파업에 돌입했다. 지난 5월부터 파업을 벌이고 있는 작가조합과 동참하게 됐다. 사진은 작가조합이 미국 뉴욕시 맨해튼의 워너브라더스와 디스커버리 빌딩 앞에서 AI 윤리 규정 강화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모습. [사진 AFP/연합뉴스]

[한세희 IT 칼럼니스트] 2019년 개봉한 ‘라이온 킹’은 1994년 개봉한 같은 이름의 애니메이션을 리메이크한 영화다. 흔히 이 영화를 라이온 킹 ‘실사판’이라고 하지만, 이를 실사라 부르는 것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주인공 사자인 삼바나 무파사 등 모든 캐릭터는 물론이고 배경까지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같은 애니메이션 원작 영화라도, 사람 연기자가 참여한 ‘알라딘’이나 ‘인어공주’ 실사판과는 다르다. 실사처럼 보이게 만든 극사실적 컴퓨터 그래픽 창작물에 더 가깝다.

사자에게 연기를 시킬 수 없으니, 실사 느낌의 리메이크를 원한 제작사로서는 당연한 선택이다. 그런데 특수효과를 가미하는 수준을 넘어 이렇게 캐릭터를 포함한 영화의 모든 요소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동물이 아닌 사람이 나오는 영화도 이런 방식으로 만들지 못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물론 비용이 문제다. 영화 라이온 킹 제작비는 2억6000만 달러(약 3480억원)로, 비슷한 시기 실사화된 다른 디즈니 애니메이션들에 비해 1억 달러 가까이 더 많은 돈이 들었다. 현재는 이런 방식의 영화 제작에 큰 비용이 들지만, 슈퍼스타 배우의 비싼 출연료와 바쁜 스케줄, 치솟는 제작비나 생성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 속도를 생각하면 AI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 될 날이 조만간 올 수도 있다.

브루스 윌리스 없는 브루스 윌리스 영화?

이미 AI 기술은 인기 배우가 실제 출연하지 않아도 마치 연기한 것처럼 처리해 영화에 넣을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AI에 목소리·표정·입 모양·몸짓 등을 학습시켜 가짜 영상을 만드는 딥페이크 기술이 등장한 지 수년이 지났다. 이를 영화나 드라마에 접목하는 것은 당연한 다음 수순이다.

인기 영화 시리즈 ‘분노의 질주’ 7편 촬영 도중 출연 배우 폴 워커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일이 있었다. 제작진은 체격이 비슷한 워커의 동생에게 일부 장면을 촬영하게 하고, 다른 영화에서 얻은 워커의 움직임이나 걸음걸이 등에 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해 영상을 조정했다. 이렇게 촬영한 영상은 실제 폴 워커가 촬영한 것과 거의 구분되지 않는 품질을 보였다. 이 영화가 개봉한 것이 2014년이다.

최근 배우 브루스 윌리스가 실어증에 걸렸다며 은퇴를 발표한 가운데, 한 러시아 통신사가 AI 기술로 그가 출연한 것처럼 보이는 광고 영상을 공개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윌리스 측은 이 영상 제작에 동의한 적 없다고 밝혔다.

AI는 나이 든 배우에게 젊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최근 개봉한 영화 ‘인디아나 존스 5’ 제작진은 AI 기술을 활용, 81세인 배우 해리슨 포드가 일부 장면에서 마치 40대처럼 보이게끔 했다. 42년 전인 1981년 개봉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첫 영화 ‘레이더스’에 출연할 당시의 나이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톰 행크스는 지금 한 방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벌어지는 일을 다룬 ‘히어’(Here)라는 영화를 촬영 중인데, 여기서 67세의 톰 행크스는 AI 기술의 도움을 받아 젊은이에서 노인까지 여러 연령대를 오가며 연기한다.

이런 일은 할리우드의 특수 효과 전문가들이 하는 고난도 작업인데, 앞으로 AI 기술이 일반화되면 기계에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특수 효과 분야에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다. 배우와 작가 등 할리우드 꿈의 공장이 돌아가게 하는 모든 일자리가 다 영향을 받는다.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구조를 뒤흔든 가운데, AI 열풍까지 불어 닥치면서 이 분야 종사자들이 느끼는 위기의식은 커지고 있다.

꿈의 공장 일꾼들, 위기에 몰리다

최근 할리우드 작가 조합과 배우 조합이 동시 파업에 들어간 이유다. 작가와 배우들이 동시에 파업하는 것은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배우 조합장을 하던 시절 이후 60여 년만의 일이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등장은 작가들의 처우를 악화시켰다. 미국 영화나 드라마는 방영 전 제작 기간부터 방영이 끝날 때까지 작가들이 한곳에 모여 집단 창작하는 형태로 만들어진다. 그런데 스트리밍 기업이 만드는 오리지널 드라마는 기존 TV 드라마 시리즈보다 회차가 적은 편이고 사전 제작 방식이라 작가들의 일하는 시간 자체가 줄어든다. 이는 작가들의 직업 안정성에 악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신입 작가를 거쳐 메인 작가, 나아가 TV쇼 총책임자까지 성장하는 엔터테인먼트 업계 커리어를 걷기 위한 기회 자체를 박탈하리라는 우려가 나온다. 스트리밍 기업들이 TV쇼를 누가 얼마나 보았는지에 대한 자료도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다는 불만도 컸다.

AI 기술은 이런 불만에 불을 붙였다. 제작사가 대본 작성이나 스토리 구성에 챗GPT 같은 생성 AI를 활용한다면 업계 초년병 작가들의 일자리는 빠르게 사라질 것이다.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이미지 생성 AI는 엑스트라나 단역 배우 일자리를 통째로 날려버릴 수도 있다. 최근 미국 주요 영화 제작사들은 배우 조합에 “한번 촬영한 영상을 지속해 AI 학습 등에 이용할 수 있게 한다”라는 조건을 내건 것이 알려졌다. 단역으로 출연해 단 하루 촬영한 영상도 영화사가 계속 활용하겠다는 이야기였다.

작가들은 AI를 대본의 저자로 인정하지 말고, 사람 작가만 저자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배우들은 ‘디지털 초상권’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작가의 글이나 배우의 연기를 AI 학습에 사용하지 말 것도 요구하고 있다.

대형 제작사들은 AI로 작가와 배우를 대체할 생각은 없다며 달래기에 나섰다. 스트리밍 콘텐츠의 시청자 데이터를 제공하고, 콘텐츠가 당초 계약된 다른 TV 네트워크 등에서 방영될 때 지급하는 로열티도 높이겠다는 안을 제시하는 등 직업 안정성과 보수 향상을 약속했다.

하지만 스트리밍 경쟁으로 콘텐츠 투자는 늘어났지만, 수익성은 악화하고 있는 제작사로서는 비용 절감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 AI는 가장 좋은 대안이다. 과거 TV가 등장하여 영화를 방영하기 시작할 때나 인터넷에서 MP3 음악이 무료로 풀리던 때와 같이 새로운 기술의 등장에 맞춰 창작자의 노력에 보상할 방법을 찾아야 할 시기다. 톰 크루즈 없는 톰 크루즈 영화가 그의 사후에도 계속 나오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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