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 수주 ‘대격돌’…“구도는 단순해 보이나 속내는 복잡하다”
[HD현대중공업 vs 한화오션]①
이번엔 ‘법적 다툼’…가처분 신청 제기한 HD현대重
HD현대 “보안 사고 감점 규정 문제” vs 한화 “합리적‧종합적 판단”
[이코노미스트 이창훈 기자] “구도는 단순해 보이나 속내는 복잡하다.”
한화오션의 승리로 끝난 울산급 배치Ⅲ 5·6번함 건조 수주전에 대한 조선업계 관계자의 진단이다. 방위사업청(방사청)이 지난 7월 한화오션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면서 수주전이 마무리되는 분위기였는데, HD현대중공업이 법적 다툼에 나서면서 새 국면을 맞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이번 수주전의 성패를 가른 보안 사고 감점 규정이 지속되면, 내년 입찰 예정인 7조8000억원 규모의 군함 수주전에서도 고배를 마실 확률이 높다. 향후 몇 년간 군함 수주전에 발을 내밀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반면 매각 실패 후 극적으로 한화그룹에 합류한 한화오션은 이번 수주를 발판 삼아 군함 시장에서의 위상을 되찾아야 하는 처지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다.
조선업계 등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은 지난 8월 14일 서울중앙지법에 방사청을 상대로 우선협상대상자 지위 확인 등을 위한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방사청이 울산급 배치Ⅲ 5·6번함 건조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한화오션을 선정한 것과 관련해 보안 사고 감점 규정에 문제가 있다는 취지다. 현대중공업 측은 “(울산급 배치Ⅲ) 1번함(충남함)을 성공적으로 건조했을 뿐 아니라 기술 점수에서도 경쟁사(한화오션)를 크게 앞섰음에도 보안 사고 감점으로 수주에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HD현대중공업은 방사청에 “기술 경쟁에 근간을 둔 보안 사고 감점 규정에 대한 재검토”를 요청했으나, 방사청은 “제안서 평가 결과 이상 없음”이라고 답했다. 이에 방사청을 상대로 법적 다툼에 나선 것이다.
HD현대중공업 측은 보안 사고 감정 규정 개정을 문제 삼고 있다. HD현대중공업에 따르면 2014년 9월 보안 사고 감점이 신설됐는데, 2018년 3월 국민권익위원회 등은 방사청에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감점 기준이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해 기술 중심의 제안서 평가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권고를 수용한 방사청은 2019년 9월 ‘무기 체계 제안서 평가 업무 지침’을 개정했다. 당시 개정으로 보안 사고 감점 규정이 다소 완화됐는데, 2021년을 기점으로 보안 사고 감정 규정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개정이 되풀이됐다는 게 HD현대중공업 측의 논리다.
HD현대중공업은 자사 직원이 보안 사고로 기소된 이후 방사청 보안 사고 감정 규정도 강화됐다고 판단한다. 방사청은 2021년 3월 보안 사고 발생 시 인(人)‧건(件)당 0.1점을 추가 감점한다는 조항을 신설했으며, 2021년 12월에는 ‘기소 후 1년간’ 적용되던 보안 사고 감점을 ‘기소 후 3년간’으로 연장했다. 2022년 12월에는 2021년 12월 31일 이전 기소된 경우 ‘기소 후 3년간’이란 규정을 ‘형 확정 후 3년간’으로 수정했고, 이에 따라 HD현대중공업에만 소급 적용됐다는 것이다. HD현대중공업 측은 “현재 보안 사고에 대한 항소심 중이라 ‘형 확정 후 3년간’이란 규정을 적용하면, 보안 사고 감점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고 주장한다.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은 당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의 한국형 차세대 구축함(KDDX) 개념 설계 도면 등을 불법 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지난해 1심에서 전원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 중 1명에 대한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흥미로운 점은 HD현대중공업 측의 주장과 반대로 “보안 사고 감점 규정 완화로 HD현대중공업이 특혜를 본 것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는 것이다. 경찰은 KDDX 사업에 대해 수사 중인데, 보안 사고 감점 규정 완화가 주요 쟁점인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방사청이 KDDX 기본 설계 입찰 공고가 나기 몇 달 전인 2019년 9월에 보안 사고 감점 규정이 완화돼 HD현대중공업이 특혜를 봤다고 의심하고 있다. 방사청은 보안 사고 감점 규정 개정과 관련해 “당시 정부와 국회 등의 개선 요구로 개정이 이뤄졌을 뿐, 특정 업체에 특혜를 주기 위한 개정은 아니다”고 항변하고 있다.
군함 수주에 ‘목매는’ 이유
조선업계 등에선 “HD현대중공업이 사업자를 선정하는 이른바 ‘갑 중의 갑’인 방사청을 상대로 법적 다툼을 불사하는 것은 향후 예정된 대규모 군함 수주전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HD현대중공업이 단순히 한화오션의 울산급 배치Ⅲ 5·6번함 수주에 대해 딴지를 걸기 위해 방사청을 상대로 법적 다툼에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이번 수주전 성패를 가른 1.8점의 보안 감점이 이어지면 내년 예정된 7조8000억원 규모 KDDX 사업은 물론, 앞으로 몇 년 동안 군함 수주전에 발을 들이지 못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1.8점의 보안 사고 감점이 해소되지 않으면 향후 수주전에서도 승산이 없을 것이란 판단이다.
한화오션 역시 절박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른바 ‘수상함 명가’라는 위상이 무색할 정도로 그간 군함 수주전에서 실적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화오션 입장에선 이번 울산급 배치Ⅲ 5·6번함 수주를 발판 삼아 향후 대규모 수주를 따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한화오션 측은 HD현대중공업의 가처분 신청 제기에 대해 “이번 방사청의 평가 결과는 평가 규정에 따라 합리적이고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이기에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다릴 것”이란 입장이다. 또한 “법적 소송으로 계약이 늦어질 경우 차세대 호위함 전력화 일정의 차질과 국방 전력의 약화가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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