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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피시설 ‘공동묘지’...공원으로 재탄생한 비결[김현아의 시티라이브]

국내선 혐오시설 된 묘지와 화장장
스웨덴 묘지공원, 자연과 어우러진 설계로 유네스코 등재

스웨덴 스톡홀름 소재 스코그쉬르코고르덴(Skogskyrkogården) 묘지공원 전경. [사진 김현아 가천대 초빙교수]

[김현아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 초빙교수] 한국에서 공동묘지는 기피시설 또는 혐오시설에 속한다. 그래서 공동묘지는 대부분 인적이 드문 도시 외곽지역에 자리한다. 다만 이 시설들은 도시가 개발을 거듭하며 외연을 확대할수록 이전 대상 1순위로 취급받는 골칫덩어리다.

화장장은 공동묘지보다 더 지독한 기피시설이다. 2020년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화장률은 88.4%에 이른다. 2015년 80%를 넘긴 후 빠르게 증가해 90%에 육박했다. 그러나 화장시설은 2014년 55곳에서 2022년 60곳으로 겨우 5군데 증가하는 데 그쳤다. 코로나 팬데믹이 이어지던 지난 3년 동안 코로나 사망자가 급증하자 한때는 화장이 지연돼 불가피하게 4~5일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 같은 ‘화장 대란’은 일시적 현상에 그칠 것 같지 않다. 초고령 사회를 앞둔 지금도 화장장이 턱없이 부족해 오래 전부터 확충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님비현상(NYMBY·자기 주거지역에 기피시설물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발표된 국회입법조사처 ‘초고령사회 대비 화장시설 설치현황과 과제’ 보고서에선 지금 같은 추세가 지속된다면 ‘화장 대란’은 일상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죽은 자들의 안식처, 시민을 위한 공원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공동묘지공원이 있다. 바로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스코그쉬르코고르덴(Skogskyrkogården) 묘지공원(1994년 등재)이다. 이 공원에는 심지어 화장장도 함께 있다. 도대체 어떻게 화장장까지 있는 묘지공원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됐을까.

단순히 동서양의 장례문화 차이 때문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코그쉬르코고르덴 묘지공원에는 디자인의 힘이 존재한다. 이 디자인 건축가와 그가 몸담고 있는 사회의 철학이 '님비 극복'의 원천이 됐다.

스코그쉬르코고르덴 공동묘지에 있는 ‘숲속의 화장장’은 에릭 군나르 아스플룬드(1885~1940년)와 시구르드 레베렌츠가 설계한 건물들로 이뤄진 장례식장의 일부다. 이곳은 나무로 뒤덮인 스톡홀름의 언덕배기에 자리 잡아 작은 동산을 오르는 느낌이다.

특히 공원입구 쪽 안뜰에 있는 커다란 화강암 십자가는 조형물이 아닌 풍경 같기도 하면서 ‘천국의 문’을 연상시킨다.

이곳은 원래 채석장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두 건축가의 현상설계를 통해 언덕과 예배당, 소나무 군락지, 대형십자가, 화장장이 묘지와 어우러진 멋진 공원으로 재탄생했다. 

장례식장에는 주요 시설 공간으로 연결돼 있는 ▲믿음 ▲소망 ▲성 십자가 등 총 세 개의 예배당이 자리한다. 블록별로 조성된 묘지는 큰 나무숲으로 연결돼 있다. 건물들 역시 언덕의 경사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것처럼 다양한 높이로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있는데 대부분 나무의 키 높이를 넘지 않는다. 그래서 ‘숲속의 화장장’이라는 별명이 탄생한 듯하다. 

삶·죽음, 건물·자연이 한 공간에
1994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스웨덴 스코그쉬르코고르덴 묘지공원 내 묘지들 사이로 나무가 심어져 있다. [사진 김현아 가천대 초빙교수] 

스웨덴 스코그쉬르코고르덴 묘지공원 내 모습.[사진 스코그쉬르코고르덴 공식 홈페이지 캡처]
스웨덴 스코그쉬르코고르덴 묘지공원 내에서 관광객들이 가이드 투어를 하고 있는 모습.[사진 스코그쉬르코고르덴 공식 홈페이지 캡처]
특이한 점은 화장장이 한 곳에 집중돼 있지 않고 작은 예배당 옆으로 분산돼 있다는 점이다. 가족들이 장례예배를 드릴 수 있는 작은 예배당 바로 옆에 화장장이 있는 이런 형태를 일명 '가족 화장'이라고 한다.

대형 빌딩의 보일러실 같은 국내 화장장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장례식장에서 발인예배(의식)를 드리고 화장장으로 이동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차를 타고 한 시간 이상 이동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화장장에 들어서면 유가족들은 휴게소 같은 공간에서 화장 시간표만을 바라보며 기다린다. 

스코그쉬르코고르덴 공동묘지에선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가족들이 예배를 드리고 밖으로 나와 묘지공원을 산책하기도 한다. 매장한 것 같은 묘비석은 키가 작은 나무나 큰 나무를 베고 남은 밑동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공동묘지 내 모든 시설과 건축물들이 자연과 어울려 하나가 된 분위기를 낸다. 이에 걷다 보면 그냥 일반 공원에서 산책하는 기분이 든다.

이미 떠나보낸 이들이 그리워 찾아온 이도 있지만 어린 자녀를 유모차에 태워 나온 이들도 있다. 이곳 공동묘지는 죽은 자들을 위한 공간이면서 살아있는 자들의 공간이 된다. 

스코그쉬르코고르덴 묘지공원이 유네스코에 등재된 이유에는 건축적 가치 이외에도 자연과 건축을 조화시킨 점이 높게 평가됐다고 한다. 나아가 어느 나라에서는 기피시설이 된 화장장과 묘지공원을 이렇게 아름다운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공로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이 화장장에서 처음으로 화장된 시신은 아스플룬드 자신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할리우드 배우 그레타 가르보와 스웨덴의 명사들도 여러 명 안장돼 있다. 죽음 후에도 멋진 공간, 좋은 공간에 머물고 싶은 인간의 본능은 사라지지 않나 보다.

김현아 가천대학교 사회정책대학원 초빙교수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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