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사막 걷는 ‘영끌족’…기준금리 인하 기대감 ‘신기루’였다[부채도사]

한은 기준금리 인상 카드 만지작
시장에선 “기준금리 인하 빨라야 내년 2분기”
금리 인하, 집값 바닥 기대한 대출 확대 피해야

서울의 한 은행 대출 창구 앞. [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이용우 기자] “대출은 동지도 적도 아니다.” 한 은행원의 말입니다. 가계부채는 1862조원을 넘었고, 가계들의 상환 능력은 떨어지고 있습니다. 적과의 동침이 불가피할 때입니다. 기사로 풀어내지 못한 부채에 관한 생생한 이야기를 ‘부채도사’에서 전합니다. [편집자주]

#경기도 성남에 사는 직장인 A(35)씨는 한 달에 이자로만 약 300만원을 지출하고 있다. 아파트 담보대출 외 8000만원 수준의 신용대출도 받았기 때문이다. 신용대출 금리는 최근 연 7%까지 뛴 상황이다. A씨는 “월급만으로 이자를 감당하기도 어렵다”며 “기준금리 인하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금리 인하를 기다리는 영끌족(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받은 사람)의 이자 부담이 생각보다 장기화될 전망이다. 기준금리가 조만간 인하될 것이란 기대를 사라지게 하는 시장 변화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어서다. 

가계부채 증가, 기준금리 인상 명분 만들어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준금리의 향방은 갈수록 불확실해지고 있다. 내릴 것 같던 기준금리가 오히려 최근 오를 조짐을 보이면서다. 한은은 지난 24일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3.50%로 동결한다고 밝혔다. 

이번 동결 결정은 시장 예상과 일치했지만 이후에 나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은 이전보다 더 매파적(통화긴축적)이었다. 가계부채 증가에 대한 본인의 소신을 강조하면서다. 

이 총재는 같은 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가계부채가 지난 두 달간 저희가 예상한 것보다 더 증가했다”며 “미시적 (대출 규제 완화) 정책의 기대하지 않은 효과로 가계부채가 두 달 정도 확대돼 상황이 변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가계부채 연착륙은 제가 한은 총재가 된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해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4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한국은행]
한은에 따르면 최근 가계부채는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 22일 한은이 내놓은 ‘2023년 2/4분기 가계신용(잠정)’ 자료에 따르면 올해 2분기에 주택담보대출은 14조1000억원 급증한 1031조2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분기별 주담대 증가액은 ▲지난해 4분기 4조7000억원 ▲올해 1분기 4조5000억원 ▲2분기 14조1000억원을 기록했다. 

문제는 연 7~8%에 달하는 신용대출 금리까지 들썩이고 있다는 점이다. 신용대출 등 기타대출은 올해 1분기 15조5000억원 감소에서 2분기 4조원 감소로 감소세가 크게 줄었다. 신용대출을 상환하려는 분위기가 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가계대출이 줄지 않고 오히려 증가하면서 한은 입장에서는 기준금리를 내릴 명분이 줄어드는 상황이다. 한은의 목표는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이다. 그만큼 기준금리를 내려 가계부채 확대의 도화선을 스스로 만들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은 기준금리 인상 카드를 고려하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이 총재도 “금통위원 여섯 분 모두 당분간 최종금리를 3.75%까지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이었다”며 “가계대출 증가세가 계속 확대될지 유의해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금리를 상방으로 올리는 옵션의 가능성을 열어두기로 했다”고 밝혔다. 

가계부채와 함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또 인상할 가능성도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명분에 힘을 싣는 요인이다. 

특히 한은이 전망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5%다. 물가 목표치를 2%대로 잡고 있는 한은 입장에선 물가와 금융안정 차원에서 연내 기준금리 인하는 시기상조를 넘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평가다. 

“기준금리 인하 빨라야 내년 2분기”

한국은행 통합별관 로비에 걸린 물가안정 현판 모습. [사진 연합뉴스]
시장에서는 이 총재의 최근 발언으로 내년 초에도 기준금리 인하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한은의 금리인하 시점은 빨라야 2024년 2분기가 될 것”이라며 “올해 마지막 금통위가 11월에 열리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금리인하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분석했다. 

이 경우 가계대출 금리는 현 수준에서 등락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28일 기준으로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주담대 변동금리는 4.05~6.956%를 기록했다. 한 달 전과 비교하면 금리 상단은 1.14%p나 높아졌다. 

한은 기준금리에 변동은 없었지만 중국 부동산발(發) 위기와 국내 2금융권 부실 우려 확대 등 금융시장 불안 요인이 나타나면서 은행채 금리가 뛰었고 이에 대출 금리 인상을 부추겼다.  

시장에선 고금리 장기화 전망이 확실시되는 상황이라 ‘집값 바닥’을 기대하고 주담대와 신용대출을 늘리는 선택은 이자 부담만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부채 확대 분위기가 지속될수록 국내 경제만 악화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 총재도 “가계부채 수준은 이미 우리나라의 성장 잠재력을 크게 저하하는 수준을 넘었다”고 말했다.

결국 금리의 향방은 내년 상반기가 돼야 확실시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때 가서 대출을 받아도 늦지 않다는 조언도 가능하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설립 두 달 만에 네이버 ‘픽’…스탠퍼드 출신 창업자의 AI 비전은?

2차바이오텍, 신주 발행 등 748억원 수혈…“재생의료·CDMO 투자”

3알바생이 ‘급구’로 직접 뽑는 ‘착한가게’

4“삼성이 하면 역시 다르네”…진출 1년 만에 OLED 모니터 시장 제패

5 ‘여자친구 살해’ 20대 의대생 구속영장 발부

6‘네이버 색채’ 지우는 라인야후…이사진서 한국인 빼고 ‘기술 독립’ 선언

7NCT드림이 이끈 SM 1Q 실적…멀티 프로덕션 구축에 수익성은 악화

8삼성메디슨, 프랑스 AI 스타트업 ‘소니오’ 품는다…“우수 인력 확보”

9데일리펀딩, SaaS 내재화해 지속 성장 거버넌스 구축…흑자 전환 시동

실시간 뉴스

1설립 두 달 만에 네이버 ‘픽’…스탠퍼드 출신 창업자의 AI 비전은?

2차바이오텍, 신주 발행 등 748억원 수혈…“재생의료·CDMO 투자”

3알바생이 ‘급구’로 직접 뽑는 ‘착한가게’

4“삼성이 하면 역시 다르네”…진출 1년 만에 OLED 모니터 시장 제패

5 ‘여자친구 살해’ 20대 의대생 구속영장 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