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 중 ‘탄소’를 땅에 묻는다고?…CCUS 기술에 쏠린 눈 [한세희 테크&라이프]
온난화 주범 ‘이산화탄소’ 포집…다른 산업 원료로 사용
“관건은 비용…정부 제도적 지원 확대해야”
[한세희 IT 칼럼니스트] #공장에서 나온 이산화탄소를 모아 시멘트에 넣어 건축물의 강도를 높인다. 폴리머 소재에 이산화탄소를 넣어 자동차 내장재 소재인 폴리우레탄을 만든다.
현재 실제 쓰이는 이산화탄소 재활용 기술이다. 카본큐어라는 캐나다 기업은 콘크리트 제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주입해 광물 형태로 고정한다. 이산화탄소를 건축 자재 안에 가둬 온실가스를 줄이고, 콘크리트 강도를 높이며 시멘트와 물 사용량을 낮추는 효과도 있다. 독일 코베스트로는 이산화탄소를 반응원료로 사용해 폴리우레탄을 만들고 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이산화탄소를 수소와 반응시킨 청정연료 e메탄올을 만들어 활용하고 있으며, 아우디와 포르쉐 같은 자동차 제조사도 이 같은 합성연료를 활용하기 위한 기술을 실증하고 있다.
이른바 탄소 포집 및 활용·저장(CCUS) 기술이다. 대형 플랜트나 제조 현장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거둬 땅속에 묻고, 나아가 이산화탄소를 다른 가치 있는 일에 원료로 투입하는 것을 말한다. 이산화탄소를 재활용하고, 배출된 탄소를 다시 산업 현장의 원료로 활용한다. 버려지는 탄소를 최소로 줄이고, 한번 썼던 탄소를 다시 원료로 써서 자족적 탄소 순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다.
탄소 모으고, 묻고, 재활용하고
2050년 탄소중립 목표가 강력한 국제적 규범으로 자리 잡으면서 탄소를 포집해 활용하고 저장하는 CCUS 기술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전면적 상용화까지는 해결할 과제가 많아 아직 일부 분야에서만 제한적으로 쓰이는 정도지만,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에 마음이 급한 주요 국가와 기업으로서는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묻거나 다시 쓴다는 접근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CCUS에 대한 정책적 투자가 늘어나고 있으며, 민간 벤처 투자도 확대 추세다. 영국은 2020년 발전산업 부분 CCUS 인프라에 12억 달러(약 1조5000억원)를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미국도 같은 해 CCUS 기술 개발 및 보급을 위한 2억3000만 달러(약 3000억원) 규모의 지원 계획을 밝혔다.
CCU에 대한 벤처 투자 역시 급증했다. 시장조사기관 I3에 따르면, 2020년까지 2억7000만 달러 수준을 유지하던 이 분야 벤처 투자는 2021년 11억 달러, 2022년 1분기 8억1000만 달러로 급증했다. 각국에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관련 정책 수단이 잇달아 도입되면서 민간에서 이를 확실한 시장 기회로 받아들였고,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도 원인으로 꼽힌다. 시장 전망에 대해선 조사 주체에 따라 5500억 달러에서 1조1570억 달러로 편차가 크지만, 2030-2040년 사이 크게 성장할 것이란 점에는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한국 역시 탄소 포집 및 저장·활용 기술에 관심을 두고 있다.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줄인다는 NDC를 발표한 바 있다. 2050년에는 배출하는 탄소와 흡수 또는 제거하는 탄소의 양을 같게 해 실질적 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탄소중립을 실현한다는 목표다. 더구나 유럽과 미국 일부 주에서는 몇 년의 시한을 두고 가솔린차 판매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고, 유럽으로 수입되는 제품의 탄소 함유량에 따라 탄소 가격을 징수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가 도입되는 등 탄소 관련 규제도 잇달아 만들어지고 있다. 이는 경쟁국의 발목을 잡는 무역 장벽이 된다.
한국은 신재생 에너지를 활용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이고, 철강이나 석유화학 등 탄소 배출 규모가 큰 제조 중공업이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 등을 생각하면 탄소 포집 및 활용·저장 기술의 중요성은 더 클 수밖에 없다. 한국은 NDC에 따라 2030년까지 감축하기로 한 2억9100만톤의 이산화탄소 중 3.8%에 해당하는 1120만톤의 이산화탄소를 CCUS 방식으로 줄일 계획이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 8월 열린 실무당정협의회에서 이산화탄소 포집 및 활용 기술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연구개발을 지원하고, 지역 및 산업과 연계한 대규모 프로젝트도 추진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공장이 아닌 일반 대기에서 직접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기술 개발 과제에 2025년까지 197억원을 투자한다. 2050년에는 연간 1500만톤의 이산화탄소를 저장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 저장소도 운영한다는 목표다. 한국화학연구원은 이산화탄소를 메탄올과 반응시켜 석유화학 핵심 원료인 수소와 일산화탄소 합성가스로 전환하는 기술을 개발, 울산 산업단지 기업에 실제 플랜트를 구축했다.
자연의 탄소 저장소도 지켜야
이외에도 탄소 포집과 활용을 위한 아이디어들이 시도되고 있다. 미국 예일대 연구진은 현무암을 가루로 만들어 경작지에 뿌리면 글로벌 탄소 감축 목표 달성에 필요한 만큼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현무암 같은 규산염암은 비에 포함된 이산화탄소와 작용해 풍화되며,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탄소염 형태로 붙잡아 두는 자연 탄소 포집기이다. 현무암을 가루로 만들면 비와 접하는 표면적이 늘어나며 이산화탄소가 탄산염으로 변하는 속력을 높일 수 있다. 인공적으로 암석 풍화를 촉진(ERW, Enhanced Rock Weathering)하는 이 기술은 마이크로소프트도 관심을 갖고 투자하고 있다. 바다의 조류를 이산화탄소 저장 수단으로 활용하는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
관건은 비용이다. 이산화탄소는 매우 안정한 물질이라 다른 화합물로 전환하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적용 기술에 따라 투입하는 에너지와 배출하는 온실가스양도 제각각이다. 이미 잘 확립된 석유화학 시장에 새로 침투해야 하기 때문에 가격도 낮춰야 한다. 결국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일부에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려는 근본적 노력은 외면하고, 나온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데만 초점을 맞춘다는 이유로 CCUS를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탄소중립이라는 시한이 정해진 목표에 국제 사회가 뜻을 같이한 이상 이 기술의 활용은 불가피해 보인다. 국제에너지기구(IAEA)도 CCUS 기술 없이 탄소 중립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탄소 포집 기술에 대한 연구와 투자는 당분간 활발할 전망이다. 기술 개발과 함께 나무를 심고, 삼림을 지키고, 이산화탄소를 많이 품고 있는 고래나 조류 같은 생물을 보호하는 것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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