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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공간에도 쉼과 놀이가 필요하다[김현아의 시티라이브]

도시의 복지, 큰 돈 없이 놀 수 있도록 기회‧공간 보장해야
도시공원‧호수‧놀이터 등 공공 공간 다양화‧복합화 필요

6월 12일 서울 시내 한 목욕탕에 요금표가 붙어있다. [사진 연합뉴스]

[김현아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 초빙교수] 30년 전까지만 해도 명절을 앞두고 늘상 해야 하는 일 중 하나가 목욕탕을 가는 것이었다. 90년대 도시지역에는 주택 내 샤워시설이 어느 정도 갖추어진 상태였지만 명절을 앞두고 일 년에 두어 번은 꼭 대중목욕탕을 갔던 기억이 난다. 그리나 점점 명절의 의미만큼이나 명절과 목욕탕의 관계는 느슨해졌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코로나 상황이 되면서 공중목욕탕 이용문화가 잠시 멈추기도 했다. 

이번 새해 첫날 나는 목욕탕을 갔다. 새벽에 산행을 해서 몸을 좀 녹이려 했던 이유가 가장 컸는데 과연 1월 1일에 목욕탕에 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라는 궁금증을 안고 들어갔다. 그런데 목욕탕에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랐다. 목욕탕은 물론, 사우나(찜질방)까지 사람이 가득했다. 가족끼리 온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이들은 내가 어린 시절 경험했던 명절을 목전에 둔 의례 행사가 아니었다. 그 사람들은 목욕탕에 쉬러, 자러, 즐기러 온 것이었다.

서민 휴식 공간이자 사교 공간이었던 공중목욕탕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국내 대중목욕탕은 1924년 평양에서 최초로 세워졌다고 한다. 그렇지만 세계사적으로 보면 목욕탕의 역사는 무척 오래됐다. 목욕탕의 기원은 기원전 4000년 경에 종교의식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일명 사우나라고 볼 수 있는 ‘열기욕’은 기원전 344년경 스파르타인들의 목욕문화에서 비롯되었는데 로마의 공동목욕탕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공중 목욕문화의 전성기는 단연코 로마 시대라고 볼 수 있으며 공중목욕탕이야말로 도시스러운 문화다. 로마인들에게 목욕탕은 사교의 공간이자, 가족의 나들이 장소였다. 단순히 몸을 씻는 공간을 넘어 운동장, 정원, 도서관, 회의실 스낵바 등을 갖춘 다목적 공간으로 세워진 목욕탕(황제가 시민들을 위해 만든 ‘테르마이’라는 목욕탕)도 있었다고 한다.

동서를 막론하고 대중목욕탕은 욕조가 설치된 가정집이 드물던 시절 고된 삶을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휴식의 공간이자, 등을 서로 밀어주며 이웃과 정을 나누는 사교의 공간이었다. 아파트처럼 개별 목욕탕이 딸린 주거 형태가 확대되면서 동네 목욕탕의 인기를 시들해졌지만 1990년대 찜질방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다시 공중목욕탕 문화는 활기를 띄었다. 특히 2000년대부터 사우나와 온천탕, 영화관과 헬스장, 놀이기구를 갖춘 복합놀이 문화공간으로 변신을 하면서 코로나가 급습하기 전까지 크게 성장했다. 더욱이 24시간 운영하는 사우나나 찜질방이 생기면서 외지인들이나 잠시 머물 곳이 필요한 이들에게 완전하지는 않지만 집과 같은 ‘거처’의 역할도 하고 있다.

요즘 사우나(위에서 언급된 목욕탕이 이젠 여러 복합시설을 갖춘 사우나 혹은 스파라는 이름으로 변경됨)에는 젊은 사람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24시간 운영하는 곳은 젊은이들이 안전하게 밤에 머무르거나 쉴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도 많이 찾아온다. 씻고, 먹고, 놀고를 한 공간에서 할 수 있으면서 나름 안전한 실내 공간이라는 메리트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크리스마스 시즌, 송년회 때문에 서울의 유명호텔을 방문했다가 깜짝 놀랐다. 지역 상가는 텅텅 비어있는데 호텔은 연말 대목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누구 말대로 정말 돈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나? 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양극화와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신년 연휴에 목욕탕을 찾아 가족과 쉬는 이들을 보니 이 공간의 소중함이 더없이 크게 느껴졌다. 

반면 초고령화 시대에 돌입하고 있지만 어르신들의 사우나 이용은 점차 감소하고 있다. 욕탕에서의 미끄럼 사고나 또는 이동에 불편이 있는 고령자가 늘어나면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령자 중 건강하신 분들이 주로 사우나를 이용하고 있었다. 

혹한 속 도시 ‘비타민’ 담당하는 공공목욕탕

지난 크리스마스에 서울 노원구 중계동 백사마을의 ‘비타민 목욕탕’에 대한 기사를 우연히 접했다. 달동네 주민들의 가장 불편한 것 중에 하나 폭한과 폭염을 견디는 것이라고 들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 고통을 더하는 것은 바로 씻을 수 없는 환경이 한몫한다.

이들은 아직 연탄을 난방의 수단으로 활용하며, 온수가 공급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들은 주로 집에서 물을 데워 씻거나 근처 공중목욕탕을 이용하는데, 달동네에 위치한 목욕탕이 코로나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으면서 그마저도 못하게 된 것이다.

이들에게 목욕탕은 단순히 온수로 몸을 씻는 공간뿐만 아니라, 보일러가 터져 수리하는 동안 온기를 찾아 피신하는 공간, 가까운 이웃과 대면할 수 있는 마을 사랑방과 같은 공간이다. 이 목욕탕은 2016년 서울연탄은행 주관으로 시민 600여 명의 후원으로 탄생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기료 등 공공요금이 오르면서 운영 일수를 줄이고 있다.

연말 업무차 런던을 방문했을 때 인상적인 것이 있었다. 그건 런던의 대표공원인 하이드 파크에서 열리는 하이드 파크 윈터 원더랜드(Hyde Park Winter Wonderland)이다. 연말에 런던 도심에 위치한 대형 공원(하이드 파크)에서 열리는 이 거대한 파티는 크리스마스 마켓, 놀이공원, 먹거리 축제 등 모든 것이 있는 종합 패키지 축제다. 내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주로 이민자나 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보였는데 최근에는 관광객들도 많이 이 행사를 보러 런던을 방문하기도 한다. 고급 호텔이나 리조트가 아니어도, 도심에서 외롭지 않게 연말 축제를 즐길 수 있다면 그것처럼 좋은 게 있을까.

양극화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 곳곳에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더 심화하고 있다. 양극화를 해소하려는 다양한 시도와 노력이 있지만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양극화로 소외된 이들에 대한 ‘쉼의 공간’ ‘놀이의 공간’을 만드는 ‘포용과 배려의 정치’를 많이 목격한다. 돈이 없다고 사회적 지위가 낮다고 쉼이나 오락을 즐기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놀이의 문화마저 ‘자본의 세상’이 되어 버린 오늘날, 이젠 노는 데도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제 도시의 복지는 큰돈 없이도 놀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의 보장이 아닐까. 비싼 집값으로 집이 안식처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시대, 가족의 해체로 단란한 가족 모임이 불가능한 많은 외로운 이들을 위하여 목욕탕이 시대의 흐름을 따라 다양한 복합공간으로 자리매김하였듯이 양극화 시대 도시공원, 호수, 놀이터 등등 도시공공 공간의 다양한 변신과 복합화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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