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전문가’ 양향자 의원이 CES에서 느낀 한국의 미래 50년은…[스페셜리스트 뷰]
[2024 CES에서 찾은 기회들]① 양향자 한국의희망 대표 기고
AI의 현재와 미래 보여줘…반도체 전쟁 서막 알린 CES
한국 첨단산업 미래 위해 과학기술 인재 육성 필요
[라스베이거스(미국)=양향자 한국의희망 대표] 우리 인류의 삶을 미래로 이끌어 줄 최첨단 기술을 총망라한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박람회인 소비자 가전 전시회(CES)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현지시간 지난 9일부터 12일까지 열렸다. ‘모두 함께, 모두 켜져라’(All Together, All On)를 주제로 첨단 기술을 모든 산업 분야에 적용해 인류 앞에 놓인 공통 과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자는 의미를 담았다.
국회에서도 필자를 포함해 6명의 의원이 5일 일정으로 CES에 참가했다. 미팅과 회의 등의 공식적인 일정을 제외하고 CES 현장을 돌아보는 것에 집중했다. 몇 년 동안 꾸준하게 참여하면서 CES의 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한국 스타트업이 선보인 기술력은 놀라웠다. 여권에 핀테크를 결합하고 블록체인 기술을 연결한 애플리케이션(앱)이 눈길을 끈다. 로드시스템이라는 한국의 스타트업이 개발한 ‘트립패스’(TripPASS)가 주인공이다. 관광객이 스마트폰에 여권 정보를 등록하면 이를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데이터로 저장해 면세점 등을 출입해서 결제할 수 있는 기술이다. 해외여행을 하는 데 실물 여권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혁신적인 기술이 제대로 자리 잡히면 해외 여행객들의 좀 더 편하게 해외여행을 즐길 수 있다.
세계 최초 모바일 여권 앱뿐만 아니다. 한국 스타트업이 보여준 놀라운 기술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시각장애인 전용 블루투스 키보드, 세계 최초 공기 주입식 스마트 농장 에어팜, 블록체인 기반 투표 시스템, 코골이를 해결하는 베개 등은 일상생활의 불편함이나 ‘있었으면 하는’ 기술을 현실화하면서 관람객의 눈길을 끌었다.
그 결과물로 다양한 스타트업과 기술로 중무장한 중소기업이 CES에서 혁신상을 받았다. CES 행사를 주최하는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는 올해 인공지능(AI)·디지털 헬스·스마트시티·로봇공학 등 28개 분야에서 전 세계 300여 개의 기업에 혁신상을 수여했다. 특히 올해 처음 만들어진 ‘AI 혁신상’을 받은 28개 기업 중 절반(16개)가 한국 스타트업이 차지했다. 텐마인즈·미드바르·스튜디오랩·탑테이블·지크립토·원콤 등 8개 한국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은 ‘최고혁신상’을 받았다.
모든 것을 위한 AI, 어디에나 있는 AI 시대’ 알린 CES
또 하나 눈길을 끈 것은 현대자동차그룹이나 삼성전자, LG전자 등이 보여준 전시 부스의 규모와 화려함이다. 삼성전자는 CES에 참가한 기업 중 가장 넓은 3934㎡(약 1192평) 규모로 5개 영역으로 구성된 전시관을 꾸몄다. 삼성전자의 디스플레이 기술이 집약된 ‘더 월’(The Wall)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수많은 관람객이 이곳을 찾게 했다. LG전자는 55형 올레드 디스플레이 140여 대로 터널 내부 벽면과 천정을 꾸민 아치형 터널 구조의 콘텐츠 체험 공간을 만들어 눈길을 끌었다. 현대자동차·기아 전시 부스에 10만명 이상이 다녀간 것으로 나타나 모빌리티 강자의 면모를 잘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CES는 AI와 모빌리티 등 4차 산업혁명의 경쟁이 벌어지는 또 다른 현장이었다. 쉽게 말해 보이지 않는곳에서 반도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글로벌업계를 이끌어가는 강자인 애플이나 테슬라, 엔비디아 등은 CES에 전시관을 마련하지 않는 자신감을 보고 기분이 섬뜩하기도 했다.
미래학자이자 공학자인 미국의 레이 커즈와일은 2005년 그의 저서 ‘Singularity’(특이점이 온다)에서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순간을 특이점이라고 했고 그 시점을 2045년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인공지능이 모든 인간의 지능을 합친 것보다 강력할 것으로 예측하면서 인공지능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고, 인간이 인공지능을 통제할 수 없는 지점이 올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번 CES에서 2005년에 40년 후를 예측한 그의 통찰력이 절반의 시간을 관통하며 현실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인간의 생물학적 경계를 뛰어넘는 AI 기술이 어쩌면 신의 영역까지 이르고 있음을 라스베이거스의 새로운 랜드마크인 스피어(Sphere) 공연에서도 느꼈다.
이번 CES에서 AI가 더욱 폭넓게 부각됐다. 미래 항공 모빌리티가 새로운 주제로 등장하였고, 로보틱스·디지털 헬스·지속가능성·Web 3.0 등 다양한 분야에서 첨단 기술의 발전상을 엿볼 수 있었다. 기술 분야의 ‘명칭’만 놓고 보면, 최근 2~3년간 CES에서 선보인 기술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각 분야를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 불과 1년 전 CES와 완전히 다른 기술이 선보였음을 알 수 있다. 필자가 가장 인상 깊게 본 분야는 인공지능과 로보틱스 기술의 결합이다.
특히 최근 들어 생성형 AI와 같은 새로운 기술이 보급되면서 ‘일반 인공지능’(AGI,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또는 강 인공지능, Strong AI)을 탑재한 서비스 로봇이나 협동 로봇 등의 등장이 부쩍 늘었다.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가 우리의 지식 업무의 효율성과 삶의 질을 한층 끌어올린 것처럼, 이제 로봇이 인간의 ‘물리적’인 업무 효율성을 개선하는 데 본격 활용되고 개인의 일상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위한 AI, 어디에나 있는 AI’(AI for All, AI Everywhere)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America is back in the Chip World’
CES는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 중 하나인 라스베이거스, 이곳에 글로벌 기업들은 자신들이 개발한 최신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필자가 엔지니어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상상하고 꿈꿔오던 기술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CES, 마치 설레는 축제와 같은 시간이다. 그렇지만 CES 현장을 돌아보면 이것은 축제가 아니라 전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번 기조연설에 나선 기업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마치 ‘미국이 반도체 세상에 다시 돌아왔다’고 선포하는 것만 같다. 최근 몇 년간 CES 기조연설의 특징은 BMW·로레알·월마트와 같은 가전 또는 정보기술 기업이 아닌 다양한 영역의 기업들이 IT 기술과 자사 상품의 결합을 주제로 하는 트렌드가 이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번 CES 2024에서 미국의 전통 반도체 강자인 인텔과 퀄컴이 기조연설의 전면에 재등장했다. 부상하는 AI 반도체와 차량 반도체 시장에 대한 야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AI 전환기를 기회로, 정부 지원까지 등에 입은 ‘찐’미국 정보기술 기업의 귀환을 목도하는 순간이었다.
우리만 제자리걸음에 멈춰 있는 것은 아닌가
기술 축제 기분에 젖은 것도 잠시, 나도 모르게 우리는 지금 뭐 하고 있는가 하는 탄식이 새어 나왔다. 글로벌 선도기업이 이제 AI를 넘어 생성형 AI 시대를 열고, 각국 정부는 첨단 기술 기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면서 치고 나가는 현실에서 한국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겠느냐는 우려 때문이다.
2023년 한 해 동안 우리 과학기술계에 일어난 일을 되짚어 볼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대통령이 나서 과학기술계를 ‘구조조정의 대상’이나 ‘이권 카르텔의 온상’으로 지목한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은 기다렸다는 듯이 국가 R&D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이다.
차세대 기술은 단기간 내 상용화가 어렵고, 불확실성도 높아 기업·민간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반드시 정부가 장기적인 전략을 세워 주도해야만 한다. 정부 R&D 예산의 삭감은 당장 눈에 띄는 타격이 없다 할지라도, 수십 년 뒤 우리 후손들의 미래 먹거리를 고사시키는 행위와 마찬가지다.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조지 스무트 박사도 “R&D 예산을 삭감한다면 그 나라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강조했다. 자원 불모지인 우리나라가 지금의 위상까지 올라온 원동력은 과학기술이라는 점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 때문에 6.25 한국전쟁 이후 최대 국난이라고 하는 1997년 IMF 외환위기 때에도 국가 R&D 예산만큼은 삭감하지 않고 계속 늘렸다. 미래를 위해 씨앗을 뿌리는 것만큼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멈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23년 7월 OECD가 발간한 “한국 과학기술 정책 리뷰”보고서는 한국 혁신 정책의 취약점 중 하나로 과학기술과 경제발전 전략을 아우르는 로드맵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중장기 경제사회정책 로드맵을 세우고 이에 따라 과학기술의 역할을 연계해 범부처적인 비전을 수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매우 정확한 진단이다.
그런데, 한국은 대통령의 한마디에 정부 R&D 예산을 삭감했다. 그러는 동안 우리의 과학기술과 경제발전 로드맵에 대한 고민이 있기라도 했을까. 정부 R&D가 대한민국 미래의 방향타가 돼줘야 하는 상황에서 이것은 제자리 정체가 아니라 자해행위요, 퇴보다.
이공계 인재의 과학기술 기피 해결해야
당장의 R&D 위축만으로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장기적으로 연구 현장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관료가 일방적으로 하달하는 정책 기조가 우리 과학기술계의 근간을 흔들고 과학기술인 경시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데 있다. 2022년 누리호 발사 성공으로 온 나라가 들떠 있던 당시, 성공의 주역인 항공우주연구원의 열악한 처우가 여기저기에서 지적된 적이 있었다. 관심도 잠시, 그로부터 1년여 만에 우리 과학기술인들은 하루아침에 이권 카르텔로 싸잡아서 몰아붙여지고 말았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1980~1990년대 청소년 중에는 장래 희망이 과학자라고 대답하는 비율이 꽤 높았다. 정책적으로 과학기술인을 우대하기도 했고, 경제·산업 성장의 열망 속에서 과학기술인이 되어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순수한 꿈에 모두 박수를 보내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의·치·한·약 전공에 밀려 과학기술 전공을 희망하는 청소년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대학입시에서도 의대 쏠림 현상은 여전히 재현되고 있다. 처우 개선 등 우수 인재들이 과학기술 분야로 모이도록 하는 방안을 내놓아도 부족할 시점에, 대통령이 나서서 이제 대한민국에서는 과학기술인을 꿈꾸는 것은 미련한 것이라고 이야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정치권 입김 한 번에 연구과제가 멈춰버리는 대한민국에서 누가 과학자가 되려 할까. 과학기술 인재가 부족하면 대한민국 첨단산업의 미래도 없다.
또한 혁신 기술에 따르는 규제 때문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았다. 현장에서 만난 스타트업 창업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규제 때문에 비즈니스를 제대로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혁신 기술과 이를 통한 새로운 비즈니스를 하려면 스타트업은 모든 부처를 찾아다니면서 설득해야 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하소연했다. 심지어 “한국에서 사업을 하기 싫다”는 말을 할 정도다. 정치와 정책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창업가들을 통해 다시 한번 느꼈다.
과학기술입국(科學技術立國) 실행해야
매해 CES를 참관할 때마다 기술 개발에 붙은 가속도는 더욱더 빨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수년 이상 걸릴 것으로 생각한 기술들이 매우 빠른 속도로 실현되어 이미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아마 CES 2025에서는 더 빨라져 있을 것이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일반인공지능의 시대는 빨라야 2020년대 후반에나 올 것으로 예측했지만, 이미 현실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빠르게 기술이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잠시 잠깐의 실기만으로도 영원히 주도권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늘 첨단기술 개발 경쟁에서 다른 나라보다 가장 먼저, 가장 멀리 나가 선봉에 서 있는 나라 중 하나였다. 그것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했다. 과학기술로 세워 온 나라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세상을 감탄하게 할 때보다, 세상의 변화에 우리가 한두 박자 늦게 올라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대한민국의 과학기술 개발 엔진이 이렇게 점차 느려지다가 언젠가는 멈춰 버리는 것은 아닌지 너무나도 우려스럽다. 거기에다 정치가 찬물 한 바가지씩 끼얹고 있는 것은 아닐까
50년 뒤 대한민국의 미래를 내다보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예측 가능한 정책과 제도,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국가의 미래 경쟁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급속도로 팽창하는 AI 산업을 보며 대한민국의 기회는 여전히 반도체에 있음을 확신한다. 용인 클러스터를 반드시 성공시켜 대한민국 전체 첨단산업의 성공을 견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CES 현장에서 다시 한번 느꼈다. ‘과학기술이 대한민국의 희망’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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