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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 치료제의 무한한 가능성…다음엔 어떤 약 나올까

[비만 정복, 새 물결 인다]④
체중 감량 효과 발견돼 비만 치료제 된 GLP-RA
심혈관질환 및 뇌질환 치료제 개발될 가능성 주목

1월 8일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 모인 바이오 업계 관계자들.[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선모은 기자] 덴마크의 다국적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의 비만 치료제 '삭센다'(성분명 리라글루타이드)는 원래 당뇨병 치료제였다. 인슐린의 분비는 늘리고, 글루카콘의 분비는 억제해 혈액 속 포도당(혈당)을 줄이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구진은 곧 새로운 연구 결과를 얻게 된다. 삭센다의 성분인 리라글루타이드, 다시 말해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 수용체 작용제(GLP-1 RA)가 체중 감소와 염증 완화 효과가 있다는 점이 밝혀지면서다.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하려던 약물을 비만이나 심혈관질환, 뇌질환 치료제로도 개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여러 임상 결과에 따르면 GLP-1 RA는 혈당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이 물질을 단독으로 쓰거나, 혈당을 조절하는 다른 물질과 함께 썼을 때 효과는 더 두드러진다. GLP-1 RA가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됐던 것도 이 약물의 혈당 강하 효과가 우수했기 때문이다.

당뇨병 치료제에는 인슐린이나 메트포르민, 다이펩타이드 펩티다아제 4(DPP-4) 억제제, 소디움 글루코스 공동수송체 2(SGLT 2) 억제제 등이 쓰이는데, GLP-1 RA는 이런 물질들과 비교해도 의미 있는 혈당 강하 기능을 나타냈다.

특히 연구진 눈길을 끈 것은 GLP-1 RA의 체중 감소 효과였다. 당뇨병 환자의 절반 이상은 비만으로 알려져있다. 비만은 내장지방이 쌓인 경우가 많다. 이때 내장지방이 많으면 혈당을 낮추는 인슐린의 기능이 저하되기 때문에 비만이 곧 당뇨병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또 인슐린은 혈당을 낮추는 기능이 있다. 당뇨병 환자들은 인슐린 투약 후 혈당이 지나치게 낮아지는 부작용을 겪는다. 하지만 GLP-1 RA는 인슐린 부작용이 덜했다. 체중 감소 기능이 있고, 저혈당 위험도 크지 않은 GLP-1 RA가 주목받은 이유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비만 치료제, 심혈관·치매 예방까지?

최근에는 GLP-1 RA의 새로운 기능을 찾으려는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심혈관질환에 대한 효능이 대표적이다. GLP-1 RA는 체중을 줄이고 혈당과 혈압 조절 기능이 있어 심혈관질환 발생 가능성을 줄인다.

산화질소를 높이고 활성산소를 줄이는 등 심장이나 혈관 관련 질환이 진행되는 것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여러 건의 대규모 임상에서는 GLP-1 RA가 가짜약(위약)을 투여한 사람들보다 심혈관질환으로 사망하거나 비치명적 심근경색 또는 비치명적 뇌졸중 발생 가능성이 크게 줄었다. 이들 연구를 종합하면 GLP-1 RA가 심혈관질환 발생 가능성을 평균 12%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GLP-1 RA를 활용한 치료제 개발에 나선 기업들은 자연스럽게 적응증 확장을 준비 중이다. 노보 노디스크도 GLP-1 RA인 세마글루타이드가 심혈관질환에 효과가 있을지 확인하는 임상 3상을 진행했다.

지난해 중순, 발표된 이 임상 3상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세마글루타이드는 임상시험에 참여한 사람의 심혈관질환 부작용을 20% 정도 줄였다. GLP-1 계열의 약물이 심혈관질환을 예방하는 치료제로 자리를 잡을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이와 관련해 노보 노디스크는 올해 초 미국 샌프란시시코에서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당뇨병과 비만 외 심혈관질환, 희귀혈액질환을 주요 분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 회사는 “심혈관질환은 노보 노디스크가 투자할 명백한 분야”라며 “입지를 다지기 위해 사업 개발이나 인수합병(M&A)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염증과 관련한 질환에 GLP-1 계열의 약물 적용 시도도 활발하다. 삭센다의 성분인 리라글루타이드의 경우 GLP-1 RA가 지방간이 있는 생쥐의 염증을 완화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GLP-1 RA는 간 외 심장과 신장의 염증을 줄이는 데도 효과가 있었다. GLP-1 RA가 혈당과 혈압을 개선하고 염증을 줄여 신장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도 잘 알려져 있다. 리라글루타이드 외 다른 GLP-1 RA와 관련한 연구에서도 GLP-1 RA가 간에 지방이 축적되는 것을 막고, 염증을 줄여 질환의 진행을 더디게 한다는 내용이 밝혀졌다.

연구진은 GLP-1 RA가 염증을 줄인다는 점에 주목해 이 물질을 뇌질환 치료제로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도 살펴보고 있다. 뇌질환 중에서도 알츠하이머성 치매는 뇌 속 염증이 원인이기 때문이다.

당뇨병과 알츠하이머성 치매가 발병률, 유병률 등에서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발표도 있다. 일부 연구진은 이미 노보 노디스크의 비만 치료제 '위고비'의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가 알츠하이머성 치매의 발병 시기를 늦추는 데 효과가 있을지 연구에 돌입했다.

한설희 건국대병원 교수는 “해외에서는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제3의 당뇨병’이라고 부른다”며 “알츠하이머성 치매는 60세 이후 갈수록 유병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세마글루타이드로 발병 시기를 늦추게 된다면 환자 수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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