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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경남→농협銀으로 이어지는 ‘릴레이 금융범죄’…대책 안 보인다

[사고 진원지 은행]①
농협은행서 109억원 규모 업무상 배임 발생
4년 넘게 발견 못하며 배임 규모 키워
작년 경남은행 3000억원 발생 등 은행권 내부통제 ‘유명무실’

서울 중구 NH농협은행 본점. [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이용우 기자] 은행원의 금융범죄가 멈추지 않고 있다. 고객의 돈을 이용해 배임과 횡령을 일삼는데, 그 규모만 매번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에 달한다.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금융당국과 은행이 내부통제 강화를 부르짖고 있지만 직원 일탈을 막기에 역부족이란 비판이 나온다. 그 사이 직·간접적 피해는 고객에게 전가되고 있다. 

‘청렴 농협’ 외쳤지만 결과는 109억원대 배임

NH농협은행은 지난 5일 업무상 배임으로 109억4733만원 규모의 업무상배임 사고가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손실예상금액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농협은행은 자체 감사 등을 통해 이번 사고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일단 배임 혐의를 받고 있는 직원을 형사고발했고, 인사위원회를 통해 징계를 예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업계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대출자의 한 매매계약서상 거래금액이 실거래금액보다 약 12억6000만원 큰 점이 확인되며 발견됐다. 은행 측에서 대출액이 과대 산정된 것을 보고 자체 감사를 진행해 해당 혐의를 발견했고 이에 대해 경찰 수사를 의뢰했다. 

농협은행이 밝힌 109억원 배임액은 올해 은행권에서 발생한 배임 및 횡령액 중 가장 큰 규모다. 문제는 은행이 조사해 알아낸 사고 발생 기간이 2019년 3월 25일부터 지난해 11월 10일까지라는 점이다. 약 4년 6개월 동안이나 배임이 발생했어도 농협은행은 모르고 있었고, 이런 이유로 배임 규모가 100억원이 넘는 상황이 벌어졌다. 

특히 이 기간은 농협은행이 ‘청렴 농협’이 되자고 외치던 시기와 겹친다. 지난해 3월 27일 이석용 NH농협은행장은 “고객에게 신뢰받는 청렴농협을 구현해달라”며 ‘3행(行) 3무(無) 실천운동’ 서약서를 작성했다. 당시 이 행장은 ▲청렴 ▲소통 ▲배려를 실천해야 할 3행으로, ▲사고 ▲갑질 ▲성희롱을 근절해야 할 3무로 제시했지만 이번 사고로 이 취지가 무색해졌다. 

금감원은 3월 7일부터 농협금융지주와 은행에 대한 검사를 시작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조사 내용에 대해) 정확한 내용을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금감원은 최근에 발생한 농협은행 배임 사고 등 전반적인 이슈에 대해 들여다보고 내부통제 문제를 발견할 시 임직원에 대한 징계 여부도 고려할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통제 있어도 직원은 3000억원 횡령

금융당국과 은행은 내부통제를 강화하는 노력을 해왔음에도 대규모의 배임 및 횡령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번 농협은행 직원의 109억원 배임 혐의 외에도 지난해 경남은행에서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관련 자금을 관리하는 직원이 3000억원에 육박하는 횡령을 한 사실이 발각됐다. 우리은행에서는 2022년 기업 매각 관련 업무를 맡아온 직원이 2012년부터 2018년까지 615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횡령한 일이 드러나면서 업계 논란이 됐다. 

우리은행에서는 이 외에도 2022년에 전북 소재 지점에서 근무하던 A씨가 외환 금고에 있던 시재금 7만 달러(약 9100만원)를 횡령했다가 적발된 사례가 있었다. 서울의 한 지점에서 직원 B씨가 고객 공과금 5200만원을 횡령한 일도 발생했다. 지난해에는 KB국민은행의 증권대행업 직원들이 61개 상장사의 무상증자 업무를 대행하는 과정에서 해당 정보를 이용해 수백억원의 이익을 챙긴 일이 적발됐다. KB국민은행은 해당 직원 두 명을 검찰 고발 조치했다. 

7년간 고객 돈 ‘4243억원’ 은행원 주머니로

금융권의 횡령 규모는 지난 7년 동안 4200억원이 넘는 가운데 대부분 은행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국내 금융업권 임직원 횡령 사건 내역’ 을 살펴보면 2017년부터 지난해 9월 말까지 7년여간 금융업권에서 횡령을 한 임직원 수는 206명에 달했다. 이들이 횡령한 금액은 약 1850억원이다. 

당시 강 의원실에서 확인한 경남은행 횡령액은 595억원으로 추산됐다. 하지만 이후 금감원은 현장검사를 통해 경남은행 투자금융부 직원이 총 2988억원을 횡령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결과에 의하면 지난 7년 동안 금융권에서 발생한 횡령 규모는 1850억원에서 4243억원으로 커진다. 임직원이 횡령한 돈은 제대로 회수되지도 못한 상황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횡령액 환수율은 14.0%밖에 되지 않았고, 특히 은행의 경우 9.0%에 그쳤다.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가 지난해 9월 8일 횡령 혐의로 붙잡힌 경남은행 직원 은신처 침대 밑에서 발견한 골드바. [사진 연합뉴스]
이런 이유로 은행만 아니라 금융당국의 책임론도 커지고 있다. 강 의원실은 “경남은행의 경우 금감원이 2017년에서 2021년까지 9차례 부문 검사와 2022년 10월부터 2023년 2월까지 2차례 수시검사 등 총 11회의 검사를 나갔다”며 “(이런 조사에도 범죄 혐의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은행권에선 직원이 마음만 먹으면 배임과 횡령이 가능하기 때문에 직원 윤리의식 교육 및 순환근무 강화, 철저한 관리 감독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또 범죄를 저지른 직원과 함께 윗선에 대한 징계를 통해 금융범죄를 근절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배임과 횡령을 저지른 직원이 해당 업무 담당자라면 짧은 기간이라도 큰 규모의 범죄를 저질러도 아무도 발견하지 못할 수 있다”며 “직원들 교육 확대와 업무에 대한 보상, 강한 징계가 나오지 않는다면 큰돈을 다루는 직원들이 언제든 범죄 유혹에 빠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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