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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반도체 파업과 노동환경[이근면의 시사라떼]

반도체 시장 상황 고려해야…파업 명분 충분치 않아
‘노동법’ 선제적 미래 법체계 도입 서둘러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아시아 최고 갑부 무케시 암바니 인도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 회장의 막내아들 아난트 암바니의 결혼식에 참석한 뒤 7월 14일 귀국했다. [사진 연합뉴스]

[이근면 사람들연구소 이사장] 전례 없던 일이 벌어졌다. 1969년 창사 이후 반백 년이 넘도록 노동조합도 없었던 삼성전자에 사상 처음으로 총파업이 시작됐다. 지난 7월 8일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H1 정문 앞에 모인 4천여 명의 전국삼성전자노조(전삼노) 조합원들은 ▲2024년도 임금 기본 인상률(3%) 거부 ▲초과 이익성과급(OPI) 제도 개선 ▲유급휴가 약속 이행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 결의대회를 열었다.

삼성전자는 창업자 이병철 회장의 유지였던 ‘무노조 경영’ 방침을 끝까지 고수했지만 2018년 삼성전자사무직노조 설립을 필두로 2019년엔 한국노총 산하 전국삼성전자노조가 설립되면서 노동조합의 활동이 본격화했다. 2020년 5월 선택했던 무노조 경영에 대한 사회적 비판의 목소리를 수용한 이재용 삼성전자는 회장(당시 부회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무노조 경영 폐기’를 선언했다.

‘생산 차질’ 내건 파업…노조 이기심의 발로

전삼노의 이번 총파업이 적잖은 파장을 일으킨 건 삼성이 노조 없는 회사라는 이미지를 오랫동안 강고히 구축해 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노조가 내건 ‘생산 차질’이라는 파업의 목표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은 삼성이라는 기업의 열쇠이자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 경제의 핵심 성장동력이기도 하다. 올해 상반기 전체 수출의 20%를 차지한 국가전략산업이자 나라 경제를 떠받치는 근간인 반도체 생산 업체의 직원들이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생산 차질을 공공연히 입에 올리는 것은 나라 경제 전체를 세워서라도 조합원들의 이익은 지켜야겠다는 노조의 이기심의 발로다.

지금 삼성전자가 처한 안팎의 상황이 무척이나 긴박하고 어렵다. 엔비디아가 쏘아 올린 인공지능(AI) 시대의 본격 개막으로 반도체 위탁생산 분야 1등 업체인 대만의 TSMC는 그야말로 하늘을 날아다니며 2위 삼성과의 격차를 압도적으로 벌리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 실기로 인해 국내에서조차 SK하이닉스에 따라잡혀 1등 기업의 자존심에 금이 갔다. 삼성이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선 여전히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현재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AI발 수요는 비메모리 분야에 해당하고 삼성은 아직 엔비디아에 자사 제품을 납품하지도 못하고 있다.

쫓아가기도 벅찬 상황에서 노조가 말하는 생산 차질이 현실화하면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고 한 번 벌어진 격차는 어지간해선 좁혀지지 않는다. 미국은 2022년 반도체 제조 능력을 강화하고 반도체 경쟁 속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반도체지원법’을 제정하였다. 이를 통해 끌어낸 글로벌 반도체 제조사의 투자 규모는 기대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반도체 산업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고 있다. TSMC도 한 해 50조원에 달하는 투자비를 쏟아부으며 추격자들을 뿌리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한가하게 성과급 타령이나 하며 생산 차질을 목표로 한 쟁의를 이어가고 있으니 자해 행위나 다름없다. 삼성전자의 총파업이 시작된 날 TSMC는 아시아 기업 최초로 장중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돌파했다. 한쪽은 노조의 파업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데 다른 한쪽은 범국가적으로 큰 자부심을 느끼며 더 큰 내일을 다지고 있으니 어찌하면 좋을꼬. TSMC와 인텔이 무노조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이유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진정한 나눔은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거위알을 낳게 한다는 평범한 진리는 이미 어디선가 잠자고 있는 것이다. 보호받아야 할 국민의 몫은 누가 지켜줘야 할까? 

노조 입장에선 자신들의 절박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파업을 택했다고 항변하겠지만 반도체가 한국경제에 미치는 파급력,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위상을 생각하면 이번 총파업은 성급했고 명분도 충분치 않다. 행여나 삼성전자가 세계적 차원의 반도체 경쟁에서 밀릴까 싶어 국회에선 여당은 물론 기업에 엄격한 시선을 갖는 야당조차도 강력한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법안들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7월 8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앞에서 열린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7월 9일 국회에서 진행된 ‘K반도체 대전환 국가 차원의 비전과 전략 수립을 위한 대토론회’에서는 반도체 산업과 관련한 보조금 및 세제 혜택·인프라 지원을 미국·유럽 등의 경쟁국 수준으로 끌어올리자는 제언이 나왔다. 2022년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목적으로 추진한 ‘K칩스법’보다 세제 혜택을 강화한 ‘스트롱 K칩스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정부는 수도권 과밀억제를 위한 온갖 규제를 뒤로하고 경기도에 반도체 공장을 지을 수 있도록 모든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반도체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위치한 경기 용인과 평택, 반도체 원재료와 부품 업체들이 입주해 있는 경북 구미를 반도체 특화 단지로 선정해 산업 역량을 집중하기 위한 클러스터 육성을 하는 것이다. 이는 국가적 과제와 생존, 미래가 걸린 문제로 모든 국민이 일치된 생각으로 ’반도체 강국’의 꿈을 지원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더욱이 이 모든 지원책이 국민의 혈세로 이루어지는데 노조는 생산 차질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목표가 설령 정당하더라도 그 파업은 절대다수 국민들의 싸늘한 눈초리를 피할 길이 없다.

국민에게 외면받는 삼성전자 노조의 이러한 행보는 결국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노조가 과연 사회적 약자인가, 나아가 어떤 노조가 정말 필요한 존재인가 하는 물음을 갖게 할 것이다. 힘 있고 조직화한 대기업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못한 평범한 국민들이 보기에 그들은 국리민복이나 다음 세대에 미치는 영향, 국민 전체의 이익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인 행태만 반복할 뿐이다. 삼성전자 노조의 이번 총파업은 한 회사의 파업이지만 한국 경제가 처한 현실을 고려하면 그 영향이 온 사회에 미칠 것이기에 걱정스럽다.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제대로 고치려면 이번 기회에 기업과 노동조합 간의 발전적 공존, 대기업 노조와 중소기업 노동자 간의 이익의 균형을 다시 한번 고민해 보고 개별 경제주체와 사회 전체의 이익을 어떻게 조화시켜 나갈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어져야 할 것이다. 

이런 선상에서 세계적 인재 전쟁의 시대, 고도화된 AI 시대에 한국의 생존을 위한 노동개혁에 부끄럽지 않고 진정한 ‘노동법’의 선제적 미래 법체계의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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