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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최초 ‘와인 올림픽’ 심사위원...“좋은 와인? 자기 입맛을 믿으시길”[이코노 인터뷰]

홍미연 이코엘앤비 대표 인터뷰
‘아시아계 최초’ 세계 와인대회 심사위원 팀장
“1만원대에서도 훌륭한 와인 많아”

홍미연 이코엘앤비 대표가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 신인섭 기자] 
[이코노미스트 김정훈 기자] 2024 파리올림픽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요즘, 유럽은 또 다른 이유로 들썩이고 있다. 바로 세계 5대 와인경진대회 중 하나인 ‘문두스 비니’(Mundus Vini)가 지난 8월 28일부터 오는 9월 1일까지 독일에서 열리고 있어서다.

이 대회는 일종의 와인품평회다. 전문가들이 와인을 시음하고 점수를 매겨 메달을 수여하는 식이다. 매년 전 세계에서 1만3000여 개에 달하는 와인이 출품된다. 당연히 이 대회에 참여하는 심사위원들의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 대회에 수년간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홍미연 이코엘앤비 대표(43)는 국내 와인업계의 보물 같은 존재다. 지난 2010년 한국인이자 아시아계로는 사상 최초로 ‘콩쿠르 몽디알 드 브뤼셀’(Concours Mondial de Bruxelles) 세계 와인경진대회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이후 14년 동안 10개 이상의 주요 와인 품평회 무대를 누비고 있다. 와인의 고향이 유럽인지라 심사위원들은 대부분 서양계 출신들이 많다. 그럼에도 그는 세계 주요 와인경진대회에서 당당히 심사위원 팀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유럽의 ‘편견’, 실력으로 돌파 

홍 대표는 2000년대 초중반, 와인 전문지에 관련 글을 기고하던 아버지를 돕다가 ‘와인 세계’에 입문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아버지의 기고글 지원을 위해 와인을 공부하던 그는 본격적으로 소믈리에와 테이스터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2006년 관련 자격증을 따기에 이르렀다. 이후 자신의 이름으로 와인 전문지에 기고를 하기 시작하며 와인업계에서 찾는 이가 많아졌다. 

“당시 한국에는 와인업계와 관련돼 글을 기고하는 사람이 많이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저의 이력이 조금 더 돋보일 수밖에 없었죠. 이후 제가 이력을 더 쌓아가던 도중 2010년 처음으로 세계 와인경진대회 심사위원을 맡게됐습니다.” 

홍 대표는 한국인 최초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와인경진대회들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달 독일에서 열리고 있는 ‘문두스 비니’를 비롯해 와인올림픽이라 불리는 ‘콩쿠르 몽디알 드 브뤼셀’, 프랑스에서 열리는 ‘비날리 국제전’(Vinalies Internationals)이 그녀가 참가하는 저명한 경진대회들이다.  

특히 홍 대표는 콩쿠르 몽디알에서 10년 동안 심사위원으로 참가해 지난 2020년 ‘골드배지’를 받았다. 대회 심사위원 자리는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언제든 교체될 정도로 경쟁도 압박도 심하다. 이 세계에서 당당히 실력으로 살아남은 셈이다. 

홍미연 이코엘앤비 대표가 지난 2020년 ‘콩쿠르 몽디알 드 브뤼셀’(Concours Mondial de Bruxelles) 세계 와인경진대회에서 ‘골드배지’를 받는 모습. 그는 2010년부터 10년 동안 심사위원으로 활약한 덕분에 이 뱃지를 수여받았다.[사진 이코엘앤비]

홍미연 이코엘앤비 대표가 지난 2월 독일에서 열린 '문두스 비니'(Mundus Vini)에서 와인을 시음하고 있다.[사진 이코엘앤비]
또 2017년에는 30대 나이에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심사위원 팀장을 맡는 쾌거를 이뤄냈다. 대체로 와인경진대회에서 유럽 출신의 60대 이상 남성들이 심사위원 팀장을 맡는 편임을 감안하면 홍 대표가 세계 와인업계에서 얼마나 큰 인정을 받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지난 2021년, 30년의 유럽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한 뒤 국내에서 프리미엄 와인 수입 회사를 설립해 대표로 활동 중이다.

“보통 심사 때 테이블마다 해당 심사위원의 국기를 걸어줘요. 테이블 정중앙 팀장 자리에 태극기가 걸려있으면 아무래도 뿌듯할 수밖에 없죠. 개인적으로 이런 부분은 제가 조금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가 세계적인 와인경진대회에서 오랜 기간 활약할 수 있던 비결은 무엇일까. 홍 대표는 처음에 질투 어린 얘기도 많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처음 팀장을 맡았을 때는 젊은 아시아 여성이다 보니 보수적인 유럽 와인업계에서는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또 제가 심사위원 팀장을 맡은 초기, 대회에 참가하지 못하는 와인 전문가들 중에는 ‘대회를 더 모던하고 아방가르드하게 보이려 너를 팀장 자리에 앉혔을 뿐이다’라고 비하하던 사람도 있었죠. 하지만 제가 팀장직을 계속 수행하는 모습을 보며 결국 ‘너가 실력은 좀 있나 보다’라며 인정을 해주더라고요.” 

홍 대표가 아시아계 최초로 심사워원 팀장까지 오른 데에는 그의 언어 구사 능력이 큰 역할을 했다. 그는 한국어는 물론, 스페인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 어린 시절부터 주재원인 아버지를 따라 오랜 외국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나라 언어를 습득하게 됐다. 주요 와인경진대회는 역사가 깊은 양조가들이 많은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경우가 많다. 이에 심사 때 해당 국가 언어 구사 능력은 필수다.  

“프랑스에서 열리는 비날리 국제전에서는 심사 때 무조건 프랑스어만 써야 해요. 이 대회에 참여하는 심사위원 80%가 프랑스 양조가 사람들이다 보니 굳이 다른 언어를 쓰지 않는 거죠. 토론 때 프랑스어로 자유롭게 토론이 가능해야 해요. 저에게는 이런 부분들이 심사 능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됐죠.”

홍 대표가 참여하고 있는 와인경진대회 문두스 비니는 테이블마다 5~6명의 심사위원과 1명의 팀장이 배정되고 와인 시음 후 점수 평균값을 낸다. 보통 85점 이상을 받으면 은메달을, 90점을 넘으면 금메달을 받는다. 95점을 넘으면 대상격인 ‘그랜드 골드’가 수여된다.   

와인을 출품하는 사람들에게 와인경진대회가 중요한 이유는 입상 시 향후 이 와인을 출시할 때 입상 메달을 부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메달은 이 와인의 품질을 보증하는 징표다. 메달이 부착된 와인은 그렇지 않은 와인보다 소비자들의 선택을 더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이에 홍 대표처럼 심사위원 팀장들은 더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대회에 임한다. 
지난 2월 독일에서 열린 '문두스 비니'(Mundus Vini) 와인경진대회에서 심사위원들이 심사를 하고 있다.[사진 이코엘엔비]

지난 2월 독일에서 열린 '문두스 비니'(Mundus Vini) 와인경진대회에서 홍미연 이코엘앤비 대표가 자신의 팀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사진 이코엘앤비]
홍 대표는 와인경진대회에서 와인을 시음하고 팀원들의 점수를 확인한 후 점수를 최종 평가한다. 다만 홍 대표같은 전문가들은 시음 전 향만 맡아도 어느 정도 점수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편이다.  

“기본적으로 와인은 시각적, 후각적, 미각적 이 세 가지가 조화로워야 해요. 우선 와인 색깔을 확인하면 어느 정도 숙성됐는지 감이 잡혀요. 이후 향을 맡으면 어떤 수준의 와인인지 알 수 있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맛을 봐요. 시음 후의 맛이, 눈과 코로 보고 맡은 후 예상한 맛과 너무 다르면 이 와인에 문제가 있는 거죠. 굉장히 젊은 느낌의 와인인데 오래된 맛이 난다면 조화롭지 못한 와인으로 봅니다. 이 세 가지 측면이 조화로운 와인이 좋은 점수를 받습니다.” 

내게 맞는 와인? ‘정답은 없다’ 

홍미연 이코엘앤비 대표가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 신인섭 기자]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이 와인 생산국이라면 한국은 와인 소비국이다. 유럽에서는 와인이 식사와 곁들여 먹는 술로 애용될 만큼 일상이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와인은 특별한 날 마시는 비싼 술이라는 인식이 크다. 한국도 유럽처럼 와인을 일상처럼 마시는 날이 올 수 있을까.

“한 3년 전에 와인 조사 기관 와인 인텔리전스에서 한국을 전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시장 2위로 뽑은 적이 있어요. 여전히 중요한 시장이라는 얘기죠. 다만 국내 와인 소비자들 중 음식과 와인을 페어링해서 먹는 비중은 전체에서 30% 정도라고 봐요. 나머지 70%가 더 와인을 즐겨주는 것이 필요하죠. 우리가 김치에 막걸리를 먹듯 와인이라고 해서 너무 격식을 갖추고 어렵게 볼 대상이라기보다 막걸리처럼 편하게 인식하는 것이 일단 중요할 것 같아요.”

와인은 포도 품종에 따라 종류만 수천, 수만가지에 이르고 맛과 향도 각각 다르다. 쉬운 듯 쉽지 않고, 파도 파도 끝이 없다. 어떤 자리에서든 와인에 대해 좀 안다고 아는 체하기 쉽지 않은 이유다. 홍 대표가 와인에 대해 ‘겸손을 가르쳐주는 음료수’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홍 대표는 와인을 고를 때의 자신만의 팁도 전했다. 조금 더 자신을 믿으라는 조언이다. 한국인들이 값싼 와인을 맛있다고 당당히 말하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는 듯 했다.  

“제 생각에는 사람들이 와인을 고를 때 너무 다른 사람 눈치를 보는 것 같아요. 대체로 대회에서 수상한 와인은 좋은 와인으로 인정받고 사람들이 많이 선택하지만 이것이 꼭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좋은 와인이라도 내 입맛에 맞지 않으면 의미가 없잖아요. 저는 사람들이 좀 더 자신의 미각을 믿었으면 좋겠어요.” 

홍 대표는 한국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파는 1만~2만원대 와인에서도 충분히 좋은 와인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이는 대기업의 힘 덕분에 가능하다는 논리다. 

“국내 수입되는 유럽 현지 와인은 각종 세금이 붙기 때문에 당연히 현지 가격보다 비싸게 팔아야겠죠. 그런데 대기업은 현지에서 대량 계약을 맺기 때문에도 오히려 현지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와인을 국내에 수입할 수 있어요. 게 중에는 대회에서 금메달을 받은 와인도 있고요. 가성비를 따지는 사람이라면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산 와인 입문을 권하고 싶어요. 최근 들어서 이쪽 와인들이 입상을 많이 하고 있거든요.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취향이라는 점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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