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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스타트업 보육 공간에 탁구대가 있는 이유 [최화준의 스타트업 인사이트]

스타트업 보육 공간에서 수요 양극화 현상 벌어져
프론트원·마루 등 창업자에게 인기 높은 공간

탁구대는 실리콘밸리에 있는 기업을 상징하는 대표 아이템으로 꼽히고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최화준 아산나눔재단 AER지식연구소 연구원] 조직 외부에서 혁신을 수혈하는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의 중요성과 효과는 오랜 기간에 걸쳐 입증되었다. 이에 국내 기업·지자체·공공기관·교육기관들은 앞다투어 오픈 이노베이션을 추구하고 있다. 그들은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혁신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스타트업을 내부로 유치하여 조직을 혁신할 활동을 기대한다.

오픈 이노베이션의 성공을 결정하는 중요 요인 중 하나는 공간이다. 공간은 혁신을 받아들이고 키우는 역할을 수행한다. 조직과 기관은 다양한 이름으로 혁신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조직은 혁신 공간에 그들의 특징을 반영하여 이름을 붙인다. 이를테면 지식 센터나 보육 센터, 부트 캠프 등이다. 이름은 다르지만, 실상 공간 운영 목적이라는 본질은 비슷하다. 스타트업을 보육하고 혁신을 내재화하는 것이다.

오픈 이노베이션에 대한 높은 관심과 함께 보육 공간이 늘어나고 있지만, 창업자와 스타트업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보육 공간들이 과잉 공급되면서 입주 스타트업 부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하지만 모든 보육 공간이 같은 상황은 아니다. 어떤 보육 공간은 입주를 희망하는 스타트업들을 모두 수용하지 못해 심사와 경쟁 과정을 통해 선발하기도 한다. 부동산 시장의 양극화처럼 스타트업 보육 공간에서도 수요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차이는 왜 생기는 것일까.

공간 제공자 중심의 스타트업 보육 공간 외면 받아 

스타트업 공간은 개방과 연결을 지향한다. 보육 공간은 창업자들에게 사무 공간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들에게 공간은 교류를 증진하고 혁신을 촉진하는 매개체이다. 업계에서 스타트업 공간이 사무실이나 오피스(office)가 아니라 보육 공간 혹은 인큐베이터(incubator)로 불리는 이유다.

스타트업 보육 공간은 유기적 연결을 통해 성장한다. 연구자들은 지식 파급 효과(knowledge spillover effect)와 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를 통해 스타트업 공간이 개방과 연결을 중심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설명하였다. 

지식 파급 효과는 개인이나 집단의 지식이 이웃으로 전이되면서 그들 전체의 발전이 촉진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이유로 유사 혹은 동종 산업에 속한 기업들이 위치상 가까운 지역으로 모인다. 네트워크 효과는 시장을 선점한 기술이나 제품이 시장 전체로 확산되며 자연스럽게 관련 시장 및 산업의 표준이 되는 것을 뜻한다. 이는 물리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인적 관계 확장 과정에도 적용된다. 

지식 파급 효과와 네트워크 효과는 스타트업 보육 공간에서 공유를 통한 연대 형성과 선순환 과정을 효과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적 토대이다. 같은 관점에서 공실률이 높은 보육 공간의 문제점 역시 해석이 가능하다.

보육 공간이 창업자들에게 외면을 받는 가장 흔한 원인은 이용자가 아닌 제공자 입장에서 계획된 공간 구성이다. 한 유명 금융 기업이 운영하는 보육 공간을 예로 들어보겠다. 해당 공간은 마치 사설 개인 독서실처럼 모든 자리를 칸막이로 분리했다. 해당 금융 회사는 스타트업 투자에 적극적이어서 업계에서 평판은 좋지만, 정작 창업자들은 해당 공간에 입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딱딱한 사무 공간 이상의 역할을 기대할 수 없으니 창업자들이 외면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구획을 나눈 공간 구조는 창업자와 창업 회사 간의 대화를 단절하고, 이로 인해 창업자들 간 교류 기회도 줄어든다. 

일부 공간 운영사들은 창업자와 스타트업 유치에만 집중한다. 이는 일시적으로 공실률만 낮추는 단기 해법일 뿐이다.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창업자는 벤처 투자자, 창업 기획자, 경영 조언자 등 여러 행위자들과 어울리며 함께 활동한다. 창업자만 있는 보육 공간에서는 다양한 행위자들이 교류하는 순환 구조가 형성되기 어렵다. 중장기 관점에서 창업자들이 보육 공간에 길게 머무를 이유가 없다. 이에 반해 창업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스타트업 보육 공간에는 스타트업 생태계의 주요 행위자들이 함께 입주해 있다. 이는 한 공간에서 되도록이면 필요한 모든 가능성을 제공하려는 조치이다.

입주 보조금 지원 조건은 공간 운영사들이 가장 흔하게 저지르는 실수이다. 재무적 혜택은 초기 단계 스타트업 유인에는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미봉책에 그칠 수 있다. 오히려 성장 단계 스타트업들은 파트너 연결, 채용 기회 등 비금전적 지원이 풍부한 보육 공간을 선호한다. 상당수 지방 정부나 공공기관들이 공간 입주 유인책으로 보조금 지원을 제공한다. 이는 정주형 스타트업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결코 알맞지 않은 정책이다. 입주 보조금 지원 같은 일회성 정책은 공간 운영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스타트업 공간의 핵심은 ‘이음’ 

스타트업 공간의 핵심은 이음이다. 은행권청년창업재단에서 운영하는 프론트원과 아산나눔재단의 마루는 창업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스타트업 공간이다. 선발 과정을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에도 많은 창업자들이 지원해 경쟁률이 높다. 보조금처럼 재정 지원은 없지만 공간 내에는 다양한 무형의 혜택이 있다. 이곳에는 창업자들이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행위 집단이 함께 입주해 있다. 공간 입주 선후배들 간의 끈끈한 연결을 후원하는 강력한 커뮤니티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공간의 역할은 단순한 사무 공간이 아니라 구성원 간 이음을 통해 가급적이면 필요한 모든 기회와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많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은 사무실에 열린 공간을 만들고 한가운데 탁구대를 두었다. 탁구에 대한 넘치는 열정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탁구대는 오늘날 실리콘밸리의 상징이 되었다. 그 이유는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모두가 짐작할 것이다. 국내 스타트업 보육 공간 운영자들도 탁구대의 의미를 새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최화준의 스타트업 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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