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연봉 포기했다...“남은 생은 용접 후배 양성” [대한민국 명장]
진윤근 선박건조 분야 명장 현대중공업 퇴사 후 교단으로
2년차 한국폴리텍대학 울산캠퍼스 에너지산업설비학과 교수
“나도 선배들 도움 많이 받았다...후배 명장 만드는 것이 꿈”
그들은 남들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묵묵히 한 자리에서 15년 이상 일했다. 분야도 다양하다. 한복생산부터 제빵·금형·석공예·용접 등 한국 사회가 움직이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이지만 흔히 말하는 3D 업종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들은 일이 어려워도 편법 대신 원칙에 충실하면서 자신의 맡은 바를 끝까지 해낸 장인들이다. 그들에게 한국 사회는 ‘대한민국 명장’이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기꺼이 부여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창간 40주년을 맞이해 꽃보다 아름다운 명장의 인생사를 담은 ‘대한민국 명장’ 시리즈를 시작한다. 대한민국 명장은 고용노동부가 고시한 38개 분야 92개 직종에서 최고 수준의 숙련기술을 보유한 이들 중에서 대통령 명의로 선정된 기능인을 말한다. 지금까지 712명이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됐다. [편집자주]
[이코노미스트 이지완 기자] ‘용접’(鎔接)은 고도의 전열 또는 가스열로 두 개의 금속을 접합하는 행위를 말한다. 용접 작업자는 위험에 노출돼 있다. 항상 강한 빛, 열과 싸워야 한다. 용접 과정에서 나오는 유해 가스 등은 작업자의 건강을 위협한다. 사람들이 용접을 3D(더럽고(dirty)·힘들고(difficult)·위험한(dangerous)) 업종이라고 일컫는 이유다.
하지만 용접은 기계산업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분야다. 산업 현장에 몸을 담았던 사람들은 용접이 제조업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일의 마무리를 완벽하게 끝낸다는 뜻)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한국폴리텍대학 울산캠퍼스에서 만난 진윤근 선박건조 부문 명장도 ‘용접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3D’라 불리는 용접...뿌리산업의 기초
진 명장은 “용접을 하면서 화상도 입은 적이 많다. 현장에서 일을 하던 중 튄 불꽃으로 인해 동맥이 터진 적도 있었다. 이때 손목에 시계를 차지 못하는 트라우마가 생기기도 했다”며 “용접은 힘들고, 어렵고, 지저분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힘들고 어렵지만 용접이라는 기술은 기능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대형 구조물 화재를 보면 용접으로 인한 경우가 많다. 용접이 잘못되면 배가 침몰하거나 운항 불능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결국 용접은 제조업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다. 뿌리산업의 기초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덧붙였다.
진 명장은 선박건조 용접 부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인물이다. 그는 2013년 최연소 대한민국 명장 타이틀을 획득한 인물이다. 당시 진 명장의 나이는 만 40세로 어린 편이었다. 어떻게 이른 나이에 명장이 될 수 있었을까. 그의 이력을 보면 바로 수긍이 된다.
1989년 19세의 나이로 현대중공업(HD현대중공업)에 입사해 대한민국 명장이 되기까지 진 명장이 선박건조 분야에서 용접을 하며 몸담은 시간은 20년이 훌쩍 넘는다.
진 명장은 일과 배움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고 한다. 그는 1990년 울산과학대 야간대학 기계과에 입학해 일과 학업을 병행했다. 그렇게 18년 만인 37세 나이로 울산대 공학석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그는 “자기개발 목적으로 현재 박사 과정까지 밟고 있다”고 귀띔했다.
일에 대한 진 명장의 열정은 산업 현장에 몸담으며 이뤄낸 성과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선박 자동용접 장치와 용접 재료 등을 개발해 조선 공정의 생산성 및 품질을 끌어올리는 데 일조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진 명장은 곡선으로 움직이는 ‘자동 판계용접 장치’와 수직 용접 시 용융금속의 흘림을 막는 ‘받침쇠’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용접의 정확도를 높이고 후처리 과정을 단축시켰다.
한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진 명장. 그가 용접을 접하게 된 계기는 ‘가난’ 때문이었다. 그는 15살 어린 나이에 처음 철공소로 들어가 용접을 배웠다. 돈이 필요해서였다. 2남 6녀 중 막내로 태어난 진 명장은 “시골에 살았는데 어릴 적 집이 너무 가난했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했다”며 “주변에 있던 동네 아저씨들이나 삼촌이 해외를 다녀오면 논과 소를 샀다. 저분들은 무슨 일을 할까 궁금해 물어보면 배관 용접 등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용접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고 회상했다.
용접에 대한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었던 진 명장은 배우겠다는 일념 하나로 무작정 가출까지 했다고 한다. 그만큼 절실했던 것이다. 그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하다 가출까지 하게 됐다. 그 시기가 중학교 2학년 방학 때였다”며 “무작정 용접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게 발판이 돼 고등학교도 특성화고로 진학하게 됐다”고 말했다.
진 명장이 용접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특성화고에 진학한 이후다. 주변인들의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진 명장은 “특성화고에 입학한 뒤 그 안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기능훈련반에 들어가게 됐다”며 “단순 용접, 배관 용접, 철골 구조물 용접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선배님,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다양한 것을 경험하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배관 용접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기능올림픽 전국대회에서 메달도 수상했다”고 설명했다.
진 명장은 전국대회 수상을 발판 삼아 세계대회까지 출전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이는 그가 산업현장으로 진입하는 계기가 됐다. 진 명장은 “세계대회 출전이 좌절된 뒤 현대중공업 기술교육원에 입사해 방위산업체에서 근무하게 됐다”며 “선배들에게 혹독한 겨울, 여름철 무더운 날씨에도 블록 밑에서 용접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래도 진 명장은 현재 용접에 대한 인식과 기술 환경이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그는 “다들 용접을 3D 업종이라고 말하지만 지금은 용접이라는 트렌드가 많이 선진화됐고 기술적으로 진보됐다”며 “로봇 용접과 캐리지 용접 그리고 자동 로봇 등 많은 분야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기술의 발달로 로봇이 용접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는 사람이 더 이상 용접을 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일 수 있다. 하지만 진 명장은 이를 부정했다. 그는 “기술이 발전해도 용접 분야에서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진 명장은 “뿌리산업의 기초가 되는 것은 전부 정보통신기술(IT)로 인해 진화하고 자동화가 되고 있다”며 “그러나 용접은 유일하게 로봇이 사람을 대체할 수 없는 기술”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면서 “진 명장은 “비행기, 상선, LNG 운반선 등 대형 구조물 화재 사고를 보면 용접에 의한 중대재해가 많다. 사람의 미세한 손기술은 로봇이 따라갈 수 없다. 용접의 자동화가 이뤄진다고 해도 모든 것을 커버할 수 없다. 전체의 10%는 결국 사람이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잘나가던 용접 전문가...돌연 현장 떠났다
진 명장은 현대중공업에서 승승장구했다. 그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억대 연봉을 받았다. 일부 직원에게만 제공됐다는 500원짜리 지폐도 받은 그다. 조선소 건설을 위한 투자금 유치를 위해 영국에서 500원짜리 지폐를 내민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일화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게 회사에서 인정을 받던 진 명장은 돌연 산업 현장을 떠났다. 약 2년 전, 그가 용접일을 시작한지 34년 10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진 명장이 회사를 떠난 이유는 ‘미래 세대’를 위해서다.
진 명장은 “40년 넘게 일기를 쓰고 있는데 이 과정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계획과 목표를 세운다”며 “지금껏 5개년 계획을 짜서 목표를 달성해 왔다. 여기에는 향후에 후배 양성을 하고 싶다는 계획도 담겨 있다. 이 계획을 실천에 옮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진 명장은 산업 현장에 있을 때부터 후배 양성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는 “2008년부터 지역에 있는 특성화고, 중소기업 등에서 지도교사 봉사활동을 했다”며 “15년 넘게 봉사활동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본인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라고 얘기해 왔다”고 말했다.
회사 관계자와 동료들은 현장의 핵심 기술인이었던 진 명장의 퇴사를 말렸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말도 그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진 명장은 “회사는 말렸지만, 나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며 “교수직은 회사보다 연봉이 적었다. 그러나 돈은 문제가 아니었다. 돈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진 명장은 2023년부터 한국폴리텍대학 울산캠퍼스 에너지산업설비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학생을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은 나의 오랜 꿈이었다”며 “우연히 채용 공고가 나온 것을 보고 지원했다. 그렇게 아이들을 가르치게 됐다”고 설명했다.
산업 현장에서 30년 넘게 일한 전문 기술인이지만, 진 명장에게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아직도 어렵다. 그는 “처음에는 적응이 쉽지 않았다. 직장은 수직적인데, 학교는 수평적”이라며 “이제 4학기째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약 35년의 세월을 2년 만에 극복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것 같다. 현장에서 선배들은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이곳에서는 나 혼자가 아닌, 협업해야 한다는 것을 계속 배운다. 나 역시 노력하고 있고, 학교에서도 배려를 해준다. 요즘은 선생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진 명장은 기술인을 꿈꾸는 후배들이 올바른 길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예전보다 환경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용접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며 “개인적으로 5개년 계획을 세 번 세우라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또한 진 명장은 “처음 5년 동안 원하는 일을 해봐라. 그리고 이게 아니다 싶으면 빨리 방향을 바꿔야 한다. 만약 첫 5개년 계획을 성공적으로 실천했다면 그다음 5년, 즉 10년 차 때 구체적인 꿈을 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진 명장은 어릴 때 진로를 정하는 게 가장 좋다고 했다. 그는 “20대에 진로를 빨리 정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며 “그렇게 5개년 계획을 세 차례 세운 뒤 모두 달성하면 우수숙련기술인 또는 명장이 될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다만 그는 “자신의 체질과 일이 안 맞을 수 있다. 그러니 남들이 한다고 무조건 따라서 하려고 하지는 말아라”라고 덧붙였다.
진 명장은 또 “공부를 절대 게을리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용접을 잘하려면 화학과 물리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기능장, 기술사 등을 취득할 정도로 이 분야의 전문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하면서도 놓지 말아야 하는 것이 기초다. 항상 기초에 충실해야 한다. 우리가 잘 아는 로마의 콜로세움이나 중국 만리장성 등도 결국 기초가 튼튼하기 때문에 현존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억대 연봉, 대한민국 명장, 대학 교수 등 다양한 삶을 살고 있는 진 명장. 제3자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을 이룬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진 명장에게는 또 다른 꿈이 있었다.
진 명장은 “후배 명장을 만들고 싶다. 올해도 선박건조 용접 분야에 명장 후보가 있었지만, 최종 단계에서 결국 떨어져 아쉬웠다”며 “당장의 꿈은 후배 명장 육성”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 현장에 있을 때 기술 교재를 집필한 적이 있다. 지금 1년째 나의 기술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 여러 정보를 정리하는 단계다. 이런 것들을 통해 K-조선의 경쟁력을 키우고 싶다. 선배로서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후배를 양성하며 노력하다 보면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후에 우리가 미국, 중국의 용접 인프라를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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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이지완 기자] ‘용접’(鎔接)은 고도의 전열 또는 가스열로 두 개의 금속을 접합하는 행위를 말한다. 용접 작업자는 위험에 노출돼 있다. 항상 강한 빛, 열과 싸워야 한다. 용접 과정에서 나오는 유해 가스 등은 작업자의 건강을 위협한다. 사람들이 용접을 3D(더럽고(dirty)·힘들고(difficult)·위험한(dangerous)) 업종이라고 일컫는 이유다.
하지만 용접은 기계산업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분야다. 산업 현장에 몸을 담았던 사람들은 용접이 제조업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일의 마무리를 완벽하게 끝낸다는 뜻)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한국폴리텍대학 울산캠퍼스에서 만난 진윤근 선박건조 부문 명장도 ‘용접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3D’라 불리는 용접...뿌리산업의 기초
진 명장은 “용접을 하면서 화상도 입은 적이 많다. 현장에서 일을 하던 중 튄 불꽃으로 인해 동맥이 터진 적도 있었다. 이때 손목에 시계를 차지 못하는 트라우마가 생기기도 했다”며 “용접은 힘들고, 어렵고, 지저분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힘들고 어렵지만 용접이라는 기술은 기능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대형 구조물 화재를 보면 용접으로 인한 경우가 많다. 용접이 잘못되면 배가 침몰하거나 운항 불능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결국 용접은 제조업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다. 뿌리산업의 기초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덧붙였다.
진 명장은 선박건조 용접 부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인물이다. 그는 2013년 최연소 대한민국 명장 타이틀을 획득한 인물이다. 당시 진 명장의 나이는 만 40세로 어린 편이었다. 어떻게 이른 나이에 명장이 될 수 있었을까. 그의 이력을 보면 바로 수긍이 된다.
1989년 19세의 나이로 현대중공업(HD현대중공업)에 입사해 대한민국 명장이 되기까지 진 명장이 선박건조 분야에서 용접을 하며 몸담은 시간은 20년이 훌쩍 넘는다.
진 명장은 일과 배움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고 한다. 그는 1990년 울산과학대 야간대학 기계과에 입학해 일과 학업을 병행했다. 그렇게 18년 만인 37세 나이로 울산대 공학석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그는 “자기개발 목적으로 현재 박사 과정까지 밟고 있다”고 귀띔했다.
일에 대한 진 명장의 열정은 산업 현장에 몸담으며 이뤄낸 성과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선박 자동용접 장치와 용접 재료 등을 개발해 조선 공정의 생산성 및 품질을 끌어올리는 데 일조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진 명장은 곡선으로 움직이는 ‘자동 판계용접 장치’와 수직 용접 시 용융금속의 흘림을 막는 ‘받침쇠’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용접의 정확도를 높이고 후처리 과정을 단축시켰다.
한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진 명장. 그가 용접을 접하게 된 계기는 ‘가난’ 때문이었다. 그는 15살 어린 나이에 처음 철공소로 들어가 용접을 배웠다. 돈이 필요해서였다. 2남 6녀 중 막내로 태어난 진 명장은 “시골에 살았는데 어릴 적 집이 너무 가난했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했다”며 “주변에 있던 동네 아저씨들이나 삼촌이 해외를 다녀오면 논과 소를 샀다. 저분들은 무슨 일을 할까 궁금해 물어보면 배관 용접 등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용접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고 회상했다.
용접에 대한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었던 진 명장은 배우겠다는 일념 하나로 무작정 가출까지 했다고 한다. 그만큼 절실했던 것이다. 그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하다 가출까지 하게 됐다. 그 시기가 중학교 2학년 방학 때였다”며 “무작정 용접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게 발판이 돼 고등학교도 특성화고로 진학하게 됐다”고 말했다.
진 명장이 용접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특성화고에 진학한 이후다. 주변인들의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진 명장은 “특성화고에 입학한 뒤 그 안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기능훈련반에 들어가게 됐다”며 “단순 용접, 배관 용접, 철골 구조물 용접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선배님,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다양한 것을 경험하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배관 용접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기능올림픽 전국대회에서 메달도 수상했다”고 설명했다.
진 명장은 전국대회 수상을 발판 삼아 세계대회까지 출전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이는 그가 산업현장으로 진입하는 계기가 됐다. 진 명장은 “세계대회 출전이 좌절된 뒤 현대중공업 기술교육원에 입사해 방위산업체에서 근무하게 됐다”며 “선배들에게 혹독한 겨울, 여름철 무더운 날씨에도 블록 밑에서 용접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래도 진 명장은 현재 용접에 대한 인식과 기술 환경이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그는 “다들 용접을 3D 업종이라고 말하지만 지금은 용접이라는 트렌드가 많이 선진화됐고 기술적으로 진보됐다”며 “로봇 용접과 캐리지 용접 그리고 자동 로봇 등 많은 분야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기술의 발달로 로봇이 용접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는 사람이 더 이상 용접을 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일 수 있다. 하지만 진 명장은 이를 부정했다. 그는 “기술이 발전해도 용접 분야에서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진 명장은 “뿌리산업의 기초가 되는 것은 전부 정보통신기술(IT)로 인해 진화하고 자동화가 되고 있다”며 “그러나 용접은 유일하게 로봇이 사람을 대체할 수 없는 기술”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면서 “진 명장은 “비행기, 상선, LNG 운반선 등 대형 구조물 화재 사고를 보면 용접에 의한 중대재해가 많다. 사람의 미세한 손기술은 로봇이 따라갈 수 없다. 용접의 자동화가 이뤄진다고 해도 모든 것을 커버할 수 없다. 전체의 10%는 결국 사람이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잘나가던 용접 전문가...돌연 현장 떠났다
진 명장은 현대중공업에서 승승장구했다. 그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억대 연봉을 받았다. 일부 직원에게만 제공됐다는 500원짜리 지폐도 받은 그다. 조선소 건설을 위한 투자금 유치를 위해 영국에서 500원짜리 지폐를 내민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일화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게 회사에서 인정을 받던 진 명장은 돌연 산업 현장을 떠났다. 약 2년 전, 그가 용접일을 시작한지 34년 10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진 명장이 회사를 떠난 이유는 ‘미래 세대’를 위해서다.
진 명장은 “40년 넘게 일기를 쓰고 있는데 이 과정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계획과 목표를 세운다”며 “지금껏 5개년 계획을 짜서 목표를 달성해 왔다. 여기에는 향후에 후배 양성을 하고 싶다는 계획도 담겨 있다. 이 계획을 실천에 옮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진 명장은 산업 현장에 있을 때부터 후배 양성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는 “2008년부터 지역에 있는 특성화고, 중소기업 등에서 지도교사 봉사활동을 했다”며 “15년 넘게 봉사활동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본인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라고 얘기해 왔다”고 말했다.
회사 관계자와 동료들은 현장의 핵심 기술인이었던 진 명장의 퇴사를 말렸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말도 그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진 명장은 “회사는 말렸지만, 나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며 “교수직은 회사보다 연봉이 적었다. 그러나 돈은 문제가 아니었다. 돈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진 명장은 2023년부터 한국폴리텍대학 울산캠퍼스 에너지산업설비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학생을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은 나의 오랜 꿈이었다”며 “우연히 채용 공고가 나온 것을 보고 지원했다. 그렇게 아이들을 가르치게 됐다”고 설명했다.
산업 현장에서 30년 넘게 일한 전문 기술인이지만, 진 명장에게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아직도 어렵다. 그는 “처음에는 적응이 쉽지 않았다. 직장은 수직적인데, 학교는 수평적”이라며 “이제 4학기째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약 35년의 세월을 2년 만에 극복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것 같다. 현장에서 선배들은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이곳에서는 나 혼자가 아닌, 협업해야 한다는 것을 계속 배운다. 나 역시 노력하고 있고, 학교에서도 배려를 해준다. 요즘은 선생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진 명장은 기술인을 꿈꾸는 후배들이 올바른 길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예전보다 환경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용접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며 “개인적으로 5개년 계획을 세 번 세우라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또한 진 명장은 “처음 5년 동안 원하는 일을 해봐라. 그리고 이게 아니다 싶으면 빨리 방향을 바꿔야 한다. 만약 첫 5개년 계획을 성공적으로 실천했다면 그다음 5년, 즉 10년 차 때 구체적인 꿈을 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진 명장은 어릴 때 진로를 정하는 게 가장 좋다고 했다. 그는 “20대에 진로를 빨리 정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며 “그렇게 5개년 계획을 세 차례 세운 뒤 모두 달성하면 우수숙련기술인 또는 명장이 될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다만 그는 “자신의 체질과 일이 안 맞을 수 있다. 그러니 남들이 한다고 무조건 따라서 하려고 하지는 말아라”라고 덧붙였다.
진 명장은 또 “공부를 절대 게을리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용접을 잘하려면 화학과 물리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기능장, 기술사 등을 취득할 정도로 이 분야의 전문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하면서도 놓지 말아야 하는 것이 기초다. 항상 기초에 충실해야 한다. 우리가 잘 아는 로마의 콜로세움이나 중국 만리장성 등도 결국 기초가 튼튼하기 때문에 현존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억대 연봉, 대한민국 명장, 대학 교수 등 다양한 삶을 살고 있는 진 명장. 제3자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을 이룬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진 명장에게는 또 다른 꿈이 있었다.
진 명장은 “후배 명장을 만들고 싶다. 올해도 선박건조 용접 분야에 명장 후보가 있었지만, 최종 단계에서 결국 떨어져 아쉬웠다”며 “당장의 꿈은 후배 명장 육성”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 현장에 있을 때 기술 교재를 집필한 적이 있다. 지금 1년째 나의 기술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 여러 정보를 정리하는 단계다. 이런 것들을 통해 K-조선의 경쟁력을 키우고 싶다. 선배로서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후배를 양성하며 노력하다 보면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후에 우리가 미국, 중국의 용접 인프라를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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