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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에 스며든 ‘페즈의 향기’…멈출 줄 모르는 삶의 젖줄 ‘테너리’

[여기는 모로코]③
노동자 4532명 생계 책임지는 페즈 테너리
모로코 가죽 산업 중심...관련 직업도 다양

한 건물 옥상에서 내려다본 페즈의 전경 [사진 박세진 기자]
[모로코(페즈)=이코노미스트 박세진 기자] 미로의 도시 ‘페즈’에서 길을 잃었다. 빽빽한 골목에선 휴대전화 GPS도 길을 헷갈려한다. 결국 시각이 아닌 후각에 의지해 가죽 염색 공장 테너리를 찾는다. 테너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독한 냄새는 되려 친절히 길을 안내한다. 이 냄새의 근원은 비둘기의 대변, 소의 소변, 동물의 지방, 석회암 등과 같은 천연재료다.

냄새의 끝에 다다르자, 한 직원이 입구에 비스듬히 기대서있다. 기자를 보자 짙은 녹색 줄기를 손에 쥐어준다. 향긋한 민트다. 그는 이 민트 줄기를 코에 갖다 대고 입장하라 조언했다. 처음 맡는 냄새에 고생하지 말라는 나름의 배려다.

직원의 조언을 바탕으로, 민트를 코에 욱여넣고 입장한다. 이 같은 노력에도 테너리의 냄새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민트 향기를 비집고 테너리의 냄새가 똬리를 튼다. 생전 처음 맡는 냄새다. 

모로코 페즈 페너리에서 한 노동자가 가죽을 옮기고 있다. [사진 박세진 기자]
하늘과 삶을 품은 ‘태닝 배트’

민트를 손에 쥔 기자는 냄새의 중심에 섰다. 기자의 발아래 태닝 배트(Tanning Vat) 수십개가 펼쳐져 있다. 태닝 배트는 물과 천연재료를 혼합해 가죽을 가공하는 데 사용되는 거대한 통을 칭한다. 이곳에서 갖가지 천연재료들과 가죽이 만난다. 

테너리 직원들은 이 통 안에서 짐승 가죽을 무두질하고, 염색한다. 이 모든 과정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 곳 가죽 염색법은 70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기나긴 세월을 거친 테너리에 현대식 기계는 없었다.

가죽 염색 공장에 놓인 태닝 배트는 페즈의 하늘을 머금고 있었는데, 그 색도 다양했다. 때론 푸른 하늘을 담았다가도, 떠다니는 구름을 담아두곤 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테너리의 풍경은 냄새를 잊을 만큼 경이롭기까지 했다.

테너리는 페즈 주민들의 삶도 담고 있다. 페즈 주민들은 가죽을 무두질하고, 무두질 된 가죽을 받아 재단하고, 재단된 가죽을 한땀 한땀 바느질해 물건을 만든다. 인고의 시간 끝에 만들어진 가죽 제품은 상가 한켠에 자리 잡아 관광객들에게 판매된다. 터너리에는 무수한 삶이 엮여있다. 

아흐메드(Ahmed)가 가죽을 재단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 박세진 기자] 
인고 끝에 탄생하는 ‘명품 가죽’

이 날 기자가 만난 페즈 주민들은 모두 페즈 가죽의 품질에 자부심을 품고 있었다. 이들은 직접 가죽을 재단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가죽에 광택을 내는 비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들이 상세히 알려준 가죽 제조 과정은 페즈의 가죽이 왜 명품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들 설명에 따르면 먼저 태닝 배트에 천연재료와 가죽을 담궈 둔다. 사용되는 천연재료는 앞서 말한 비둘기 대변과 소의 오줌, 석회암 등이다. 대변에는 암모니아가 들어있는데, 이 암모니아가 가죽을 부드럽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석회암은 가죽의 털과 지방을 분리하는 역할을 한다. 인부들은 태닝 배트에 들어가 수도 없이 가죽을 밟아댄다. 이 과정을 수도 없이 거친다. 이들에겐 인고의 시간이자, 성스러운 노동의 시간이다.

가죽 광택제 아트라스를 소개하는 아드난(Adnan). [사진 박세진 기자]
며칠 시간이 흐른 뒤, 가죽을 태닝 배트에서 꺼낸다. 가죽을 씻고 남은 얼룩을 제거한다. 말끔해진 가죽의 다음 행선지는 염색 용기다. 염색에는 헤나, 양귀비, 사프란, 민트 등의 식물이 사용된다. 각기 다른 색들이 가죽에 새로운 색을 입힌다.

형형색색 새로운 옷을 입게 된 가죽은 테너리 밖 또 다른 노동자의 앞에 놓여 진다. 가죽을 재단하는 아흐메드(Ahmed)와 광택을 입히는 아드난(Adnan)은 기자 앞에서 제품이 만들어 지는 과정을 손수 보여주기도 했다.

페즈 가죽제품 상점에 걸려있는 제품들. [사진 박세진 기자]

아흐메드는 가죽 원단을 칼로 그어 모양을 잡는다. 직사각형 모양을 만들다가도, 정사각형 모양을 만들기도 했다. 자로 잰 듯 반듯하게 잘려나간 가죽들은 아드난에게 건너간다. 아드난은 아트라스 광택제를 가죽에 손수 바른다. 이 모든 과정은 한치의 망설임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아드난은 “내가 들고 있는 제품이 아트라스라는 광택제다. 이 광택제를 발라 가죽의 내구성을 높여 외관을 보호함과 동시에 광택을 낸다”며 “페즈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가죽 제품들은 우리가 직접 손으로 만들어낸다”고 설명했다.

아흐메드는 “아무렇게나 잘려있는 가죽을 칼로 모양을 잡는 것이 내 역할”이라며 “페즈에 온걸 환영한다. 물건을 꼭 사지 않아도 되니, 이 모든 과정을 사진으로 담고 추억해주길 바란다”고 웃어보였다.

염색을 마친 가죽들이 페즈의 가죽 상점에 널려 있다. [사진 박세진 기자]

냄새마저 잊게 만든 페즈의 역동적인 삶

테너리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는 한 달 평균 2500디르함(모로코 화폐 단위·약 35만원)을 번다. 한 논문에 따르면 페즈 가죽 염색 공장에서 근무하는 전체 노동자 수는 대략 4532명으로 추산된다. 터너리가 페즈의 생계를 지탱하는 젖줄인 셈이다.

태너리는 페즈의 약 300가구 이상의 고용을 책임진다. 외신에 따르면 테너리 작업자들의 아버지 대다수는 태너리 작업자들로 알려졌다. 사실상 대를 물려 테너리의 삶을 이어가는 셈이다. 이들 가정은 한 평생을 테너리와 함께한다. 

페즈에서 나고 자랄 아이들도 가죽과 함께한다. 기자가 본 대다수 페즈 아이들은 가죽 제품 가판대 옆에 서서 호객행위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날 만난 한 아이도 가죽 제품을 열심히 소개하며 제 역할을 다했다. 

손에 쥐어진 민트를 다시금 바라본다. 이들에게 테너리는 삶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민트는 테너리가 지닌 삶의 냄새를 피하기 위한 물건이다. 이질감이 들기 시작했다. 손에 쥔 민트를 버렸다. 그러자 테너리의 냄새가 아닌 향기가 코끝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기자가 전해 받은 민트 줄기. 민트 향기가 강하게 풍겨졌다. [사진 박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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