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그린벨트 해제, 그리고 한은 총재의 파격 제안 [EDITOR’S LETTER]
[이코노미스트 권오용 기자] 정부가 이달 초 서울 시내(서리풀 지구)와 서울 경계로부터 10㎞ 이내 지역인 경기도의 고양 대곡, 의왕 오전·왕곡, 의정부 용현에 신규 택지를 조성해 주택 5만가구를 공급하기로 했습니다. 집값을 잡기 위한 8·8 주택공급 방안의 후속 조치인데요, 12년 만에 서울 서초구 서리풀 지구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까지 해제하며 ‘공급 절벽’ 우려로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것을 잡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이번 신규 택지가 눈길을 끄는 것은 그린벨트를 풀었다는 점도 있지만 양질의 주거와 일자리 제공이 가능한 서울과 가까운 곳들이라는 점입니다. 특히 서초 서리풀 지구는 원지동·신원동·내곡동·우면동 일대로 강남 생활권에 자리하고 있고 교통 접근성도 좋아 계획대로 2031년 공급이 시작되면 젊은 세대에 인기가 높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되면 서울의 몸집은 지금보다 더욱 커질 것입니다. 서울이 수도권과 연계한 ‘메가시티’(인구 1000만의 거대도시)로 성장하고 있는데, 서울 시내의 그린벨트까지 풀며 주택을 공급한다면 지방 인구까지 빨아들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민단체에서는 이번 조치가 집값을 잡기보다는 투기를 부추기고, 지방소멸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지방소멸은 심각한 수준입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 6월 발간한 ‘지방소멸 2024:광역대도시로 확산하는 소멸위험’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228개 시군구 중에서 소멸위험지역은 130곳으로 절반(57.0%)을 넘었습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부산시가 2016년 처음 소멸위험지역 측정한 이후 광역시 중 처음으로 소멸위험지역에 진입했다는 점입니다. 서울 다음으로 큰 제2의 수도인데, 저출산에 교육·결혼·직장 등의 이유로 청년들이 떠나면서 ‘소멸 빨간불’이 켜진 것입니다. 부산이 이 정도면 다른 지방 도시는 더 심각할 것입니다.
보수 정부든, 진보 정부든 ‘지방 살리기’를 위해 각종 대책과 예산을 쏟아부었습니다. 윤석열 정부도 지역 균형발전과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국정 운영의 핵심 기조로 삼고 ‘지방시대 4대 특구’ 도입, 대규모 투자 유치, 양질의 일자리 창출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백약이 무효’란 듯 지방소멸의 속도가 오히려 빨라지고 있다는 진단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 시내 및 수도권에 신규 택지를 조성하겠다는 것은 지방소멸에 기름을 붓는 격으로, 정부의 ‘지방 살리기’는 구호일 뿐이라는 비판입니다.
말과 행동이 달라서야 지방소멸을 막을 수 없습니다. 또 해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최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기회가 될 때마다 수도권 집중 폐해의 해결책으로 상위권 대학 신입생을 지역 비례로 선발하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지방 학생을 80% 뽑으면 수도권 집중을 바꿀 수 있는 하나의 단초가 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통화정책을 책임지는 중앙은행 수장이 웬 생뚱맞은 소리냐고 힐난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교육과 주택 문제를 떼어놓을 수 없는 만큼 한은 총재의 오지랖으로 치부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마침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최근 “충분히 공감한다.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며 호응했는데요, 논의로만 그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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