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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잃는 병 치매…조기 검진·관리하면 진행 늦춘다 [이코노 헬스]

치매 발생 시 언어능력·판단력 등 흐려진다
우리나라 초고령사회 진입…치매 관리 필요

치매에는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병’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샘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상욱 원장]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병. 치매에 붙은 수식어다. 세상에 잔인하지 않은 병은 없다. 모든 병은 증세가 심해질수록 잔인해진다. 환자와 가족도 병이 악화하면 육체·심리적으로 힘들어진다. 그런데도 유독 치매를 일컬어 잔인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기억’을 잃어서다. 기억을 잃으면 사람은 삶을 유지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치매는 인지 전반에서 퇴행이 발생했을 때 붙이는 병명이다. 퇴행이 기억에 그친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치매가 오면 먼저 언어 능력에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특정 단어가 기억나지 않아 ‘이거’ ‘저거’ 등 지시사로 대상을 가리킨다. 명칭실어증(Anomic Aphasia)이다. 감정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매사 의욕을 내던 사람이 갑자기 모든 일에 의욕을 느끼지 못하거나 온화했던 사람이 갑자기 감정적으로 변할 수 있다.

치매 환자는 판단력도 상실할 수 있다. 특히 시간·장소·사람을 인지하는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오늘이 몇 년 몇 월인지 잊고, 장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길을 잃는다. 가족의 얼굴은 물론 자신의 이름도 기억에서 지워진다. 순간 기억력만 떨어지는 단순 건망증에서는 보이지 않는 ‘지남력’(指南力·Orientation) 상실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치매로 ‘나’를 잃어가는 셈이다. 사람들이 치매를 다른 중증질환보다 두렵게 느끼는 이유다.

가족에게 주어지는 부담도 사람들이 치매가 자신을 찾아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유다. 치매는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능력을 퇴행시킨다. 치매 환자의 가족들도 치매 환자를 돌보며 부담을 느끼기 마련이다. 치매 환자는 판단력이 흐려지고 감정 조절이 어려워져 일상 행동에서 문제가 많아진다. 의사소통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니 답답함도 해소하기 어렵다.

50대 A씨가 그랬다. 그는 치매 초기 증상을 겪는 모친을 봉양하다 상담실을 찾았다. 어머니께서 집안에서 물건을 잃어버리고는 매번 책임을 A씨한테 돌려서 갈등이 생긴다고 한탄했다. 자신을 골탕 먹이려고 물건을 일부러 숨겼다느니, 골탕먹는 자신을 보며 좋아한다느니, 어머니가 역정을 내면 참다못해 자기도 주체하지 못하고 버럭 화를 내게 된다고 A씨는 말했다.

“옛날 엄마는 어디 가고 이렇게 변한 건지, 너무 속상해요.”

치매 환자를 직접 돌보지 않아도 보호자의 역할을 한다면 부담이다. 치매 환자가 밖에 나가 길을 잃을까 걱정하거나, 경제적으로는 병원비·약값·돌봄 서비스 이용비 등은 보호자의 가계를 압박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치매를 진단받은 사람은 물론 치매 조짐만 있는 사람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40대 B씨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B씨는 평소 편두통이 심해 컴퓨터단층촬영(CT)을 찍었다. CT를 통해 치매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종합하면 대뇌 주름이 정상인보다 적어 조심해야 한다는 소견이었다. B씨는 대뇌기능검사인 간이정신상태검사(MMSE·Mini-Mental State Examination)에선 정상 점수를 받았지만, 이는 B씨가 마음을 다잡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외가 친척 중에 치매 환자들이 있어, 자기도 그들처럼 폐를 끼치게 될지 걱정스럽다는 이야기였다.

“치매로 고생하시는 분들을 가까이에서 보다 보니까, 저도 저렇게 될까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약물치료·인지활동·기억력 훈련 등으로 관리

아직 치매 완치법을 모른다는 점은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다행인 점도 있다. 치매를 조기에 발견한다면 적절한 치료를 통해 증상 진행을 최대한 늦출 수 있다는 것이다. 약물 치료와 더불어 인지 활동, 기억력 훈련 등을 통해 치매를 관리한다면 일상생활에서 받는 지장을 줄일 수 있다. 치매에서 초기 검진과 예방이 중요한 이유다. 기초 지방자치단체 단위 별로 있는 치매안심센터를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치매관리법을 알고 있다면 막연한 불안감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 B씨는 검진 이후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아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 치료를 꾸준히 받는다. 생활 습관도 같이 바꾸고 있다. 평소 인스턴트 식단을 선호하던 그는 이제 채소·통곡물·육류 위주의 건강한 식단을 유지한다.

B씨는 최근 새로 산 스마트 밴드도 자랑했다. 사실상 운동과 담을 쌓고 지내던 B씨가 2만보 이상 걷는 산책을 습관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마련한 방편이다. 치료와 습관 개선을 병행하며 치매 예방을 위해 노력한 결과 B씨는 정신 건강 측면에서 한층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고 있다.

치매 가족도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정신적으로는 고통을 일정 부분 줄일 수 있다. A씨는 꾸준하게 상담과 치료를 받으면서 어머니와의 갈등에서 생기는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만 중증 치매 환자를 돌보는 과정에서 신체적·경제적 고통이 생길 수 있다. 환자가 치매 등급 판정을 받아 치료와 요양 측면에서 지원받더라도 부담이 되긴 매한가지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12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주민등록인구 5명 가운데 1명이 만 65세 이상 노인이다. 평균 연령이 높아지면서 치매 인구도 증가하는 추세다.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인구 중 치매 유병률은 11%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65세 이상 치매 환자 수는 100만명을 넘긴 105만명으로 추정된다. 사회 전체가 치매에 슬기롭게 대처해야 하는 시점이다. 모두가 함께 치매를 예방하고 관리하며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병’을 이겨내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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