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고개 놀이’처럼 나오는 ‘트럼프 관세’…한국 공격 배제 못해[특파원리포트]
우려했던 트럼프 리스크 ‘불확실성’ 현실화
무역적자 변수…韓, 안도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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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윤 이데일리 뉴욕특파원] “예측하기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여전히 가늠할 수 없다. 당분간 그의 발언 하나하나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미국 뉴욕의 국내 대기업 해외법인 관계자는 20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 취임에 대해 “불확실성이 가장 큰 리스크”라고 입을 모았다. 기업들은 1기 행정부를 겪으며 그의 스타일에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2기 임기 첫날부터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대통령 행정명령은 일반적으로 집무실에서 서명하는 것이 관례지만, 그는 예상과 달리 지지자들로 가득 찬 ‘캐피털 원 아레나’에서 열린 취임 퍼레이드에서 1호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내려졌던 행정조치 78건을 한꺼번에 철회하며 강렬한 ‘쇼맨십’을 발휘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정책 역시 구체적인 로드맵 없이 ‘스무고개 놀이’처럼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다. 취임사에는 비교적 온건한 무역정책 그림이 담겼다. 트럼프는 “미국 노동자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무역 시스템의 개편을 시작할 것”이라며 “다른 나라를 부유하게 하기 위해 우리 시민에 과세하는 대신, 우리 시민을 부유하기 위해 외국에 관세를 부과하고 세금을 매길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 우리는 모든 관세, 의무, 수입을 징수하기 위해 대외세입청을 설립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당초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와 캐나다가 불법이민과 마약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25%의 관세를, 중국 역시 펜타닐 수출 차단책을 내놓지 않으면 취임 당일 10%의 관세를 추가하겠다고 경고했는데 이같은 내용이 빠졌다. 이에 시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에 대해 신중한 태도로 전환했다고 해석하며 안도했다.
안도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 저녁 추가 행정명령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관세를 2월 1일쯤 부과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전 세계는 다시 관세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트럼프는 중국 관세에 대한 질문에는 구체적으로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국가주석과 협상을 염두에 두고 말을 아끼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하루 만에 바뀌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과 하루 뒤인 21일(현지시간)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대중국 관세부과 시점과 관련해 “아마도 2월 1일”이라고 밝혔다. 당초 밝힌 대로 멕시코, 캐나다 외 중국에게도 신규 관세를 물리겠다는 뜻을 다시 밝힌 것이다. 그는 구체적인 관세 플랜을 제시하기보다는 즉흥적으로 하나둘씩 던지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야말로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다.
문제는 트럼프의 이런 움직임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캐나다, 멕시코, 중국 관세는 그가 줄곧 주장하는 불공정 무역에 대한 관세 조치가 아니다. 이는 경제문제도 아닌 정치·외교적 문제다. ‘관세맨’ 트럼프 대통령은 2기 행정부에서 관세를 무역 불균형 해소 수단이 아니라 전방위적인 외교 압박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4월1일 이후 무역전쟁 몰아칠 듯…USMCA 개정 우선순위
본격적인 무역전쟁은 4월 1일 이후 가시화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서명한 ‘미국 우선 무역 정책’ 각서에는 재무부‧상무부‧무역대표부(USTR)가 4월1일까지 무역파트너 국가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검토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권고하도록 기술돼 있다. 즉, 향후 2~3개월 동안 트럼프 행정부는 본격적인 관세 및 무역 전략을 수립할 시간이 주어진 셈이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먼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지명자와 제이미슨 그리어 USTR대표 지명자의 청문회 및 인준 시간을 기다리겠다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연방정부 직원들을 총동원해 전 세계를 뒤흔들 관세 및 무역정책을 세심하게 짜겠다는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약 석 달가량 시간을 두고 무역적자 원인과 각국의 무역장벽을 비롯해 환율 조작 문제까지 종합적으로 분석하겠다는 얘기다. 물론 이 시간 동안 무역 파트너국이 적절한 무역적자 해소책을 가져오면 공격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여지를 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주목할 점은 USTR에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개정 준비 절차를 시작하라는 지시가 포함됐다는 점이다. USMCA는 6년마다 협정 이행사항을 검토하게 돼 있는데, 2026년에 첫 시점이 도래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올해 안에 이 협정을 대거 뜯어고치는 것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재협상을 통해 특히 무역협정의 자동차 관련 조항을 변경해 현재 캐나다와 멕시코에 있는 자동차 공장을 다시 미국으로 이전하는 ‘리쇼어링’에 집중하고 있다고 트럼프 최측근들은 언급하고 있다.
한국 ‘트럼프 레이더망’서 빠져 있지만…확대된 무역적자 변수
현재까지 한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레이더망’에서 벗어나 있는 듯 하다. 그는 아직 한국의 무역 관행이 불공정하다는 발언을 하지 않았다. 현 시점에서 그의 최우선 타깃은 멕시코·캐나다·중국이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때 한미자유무역협정(FTA)를 개정했지만, 그 이후 무역적자는 더욱 확대됐다. 물론 이는 한국기업들이 대미 투자를 늘리면서 수출이 늘어난 영향이 적지 않다. 하지만 트럼프 스타일상 구체적인 원인보다는 단순히 무역적자 수치에 초점을 잡고 언제든 한국을 공격할 가능성이 크다. 각국의 무역협정을 재검토하는 그리어 USTR 대표는 트럼프 1기 시절 ‘무역차르’로 불렸던 로버트 라이트 하이저의 비서실장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한미FTA 개정에 깊숙이 개입했던 만큼, 향후 한국과 무역협정을 다시 검토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2기 행정부는 예측 불가능한 관세 정책을 앞세워 국제무역 질서를 흔들고 있다. 당장 한국이 주요 타깃에서 제외됐다고 해도, 트럼프 스타일을 감안하면 언제든 관세 공세 및 무역협정 개정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만큼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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