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가 인하'에 제약사 실적 주춤…환자 부담 오히려 늘었을 가능성도
14일 국회서 제약·바이오산업 육성 지원을 위한 정책토론회 열려
"약가 인하 정책 이후 기업 이윤 12~13% 감소"
제약사, 이윤 보전 위해 다른 의약품 생산 비중 늘리는 '풍선효과'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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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정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에서 신약 개발 활성화를 위한 합리적인 약제비 정책을 주제로 열린 제약·바이오산업 육성 지원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정부의 약가 인하 정책이 국내 기업의 성과에 미친 영향을 분석해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정책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 미래경제성장전략위원회가 주최했고, 보건복지위원회 서영석 의원실과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주관했다.
최 교수에 따르면 국내 제약 기업은 약가 인하의 영향을 직접·장기적으로 받을수록 매출 성장이 둔화했다. 구체적으로는 약가 인하 정책으로 생산자(제약 기업 등)의 이윤은 12~13% 수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약가 인하 정책으로 환자의 약제비 부담이 10% 정도 줄어들 것이란 예상과 달리 14%가량 늘었다는 점이다. 약가 인하의 부정적인 결과를 우려한 제약 기업이 판매 제품의 비중을 바꾸는 등 별도의 조처를 했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제약 기업 96곳의 기업 행태를 2008년부터 2019년까지 분석한 결과 약가 인하 정책의 영향을 받은 기업은 다른 기업 대비 비급여 전문의약품을 더 많이 생산했다. 이로 인해 생산액을 기준으로 전체 전문의약품 중 급여 전문의약품의 비중은 해당 기간 줄어들었다. 이들 기업은 2016년 이후 기업 제품이 차지하는 매출 비중도 감소했다. 기업이 생산 제품으로 매출을 올리기보다, 다른 기업의 제품을 공동 판매하는 등의 방법으로 매출을 보전했다는 뜻이다.
최 교수는 이런 기업 행태가 장기적으로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높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기업이 약가 인하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 급여 전문의약품 중에서도 약가 인하 대상이 아닌 의약품을 더 많이 생산하면, 건강보험 재정 부담이 증가하는 풍선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라며 "앞선 연구들에선 약가 인하 정책에도 불구하고 처방 약품이 오리지널 의약품이나 고가의 의약품으로 대체돼, 비용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번 연구는 공급 제품과 가격 등이 모두 다른 기업을 대상으로 했다. 기업 간 차이가 연구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뜻이다. 이날 패널 토론에 나선 김동숙 국립공주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약가 인하 제도의 대상이 된 제품과 기업의 특성이 다르다는 점을 (연구 결과를 이해할 때) 고려해야 한다"라며 "가격이 낮은 제품이나 수액제도 각기 제품 특성과 가격이 다르다"고 꼬집었다. 이어 환자들의 약제비 부담이 늘었다는 데 대해서는 "해당 연구 기간 이후 보장성을 강화한 정책이 도입됐고, 가격이 높은 의약품이 상당수 등재됐다는 점도 살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유승래 동덕여대 약학대학 교수는 약가 사후 관리 제도가 지금보다 통합적으로, 예측적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약가 사후 관리 제도는 의약품 출시 이후 조건, 상황을 고려해 약가를 조정하는 것이다. 환자의 부담 경감을 위해 사실상 약가 인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국내 출시된 의약품은 잦으면 매월, 혹은 1~2년에 한 번씩 약가 조정의 대상이 된다. 유 교수는 "대다수의 의약품이 매월 약가 사후 관리 제도의 대상이 돼, 제약 기업이나 요양 기관 등이 약가 변동을 예측하거나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기존에 등재된 약제가 반복해서 가격이 낮아지면, 후속 신약의 등재 시에도 가격이 낮게 형성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신약 개발 기업의 제품 출시와 연구개발(R&D)을 독려하기 위해서라도 약가 사후 관리 제도가 지금보다 합리적인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패널 토론에 참석한 전문가들도 약가 사후 관리 제도가 통합적으로 운용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강형식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약가제도전문위원은 "약가 사후 관리 제도가 중복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라며 제도의 통합 운영에 힘을 실었다. 그러면서 "기업이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신약을 개발해도 약가가 낮으면 R&D 비용을 회수할 수 없다"라며 "급여 기준이 확대되면 약가가 또 낮아지는데, 기업은 R&D 비용을 투입해 개발 약물의 적응증을 지속해서 확대할 동력이 크지 않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도 "약가 사후 관리가 반복·중복적으로 진행되기보다 (담당기관이) 목표를 정해 약가를 관리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22년까지 등재된 의약품 2만5000여 개의 약가를 분석한 결과 최초 등재 가격 대비 약가는 87%였다. 김 교수는 "최근 약가가 최초 등재 가격 대비 87%라는 점은 약가가 크게 낮아지진 않은 것"이라며 "약가 사후 관리 제도가 많고 이를 운영하기 위해 여러 행정 절차와 노력이 수반되고 있지만, 제대로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했다.
조원준 더불어민주당 보건의료수석전문위원은 약가와 관련한 여러 제도의 목적이 혼재돼 있다는 점을 문제시했다. 조 위원은 "약가 제도는 의약품 사용량을 어떻게 줄일지, 가격을 어떻게 통제할지라는 두 가지 문제가 맞물려 있다"라며 "현행 제도는 이 두 목적이 섞여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의약품 사용량을 억제해 무조건 재정 절감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다른 변수가 있는지 검토가 필요하다"라며 "가격 통제가 목표이면서 사용량과 연관 짓는 일이 모순되지 않는지도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에 대해 조하진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사무관은 "과거에는 재정 절감에 정책의 방점이 찍혔으나, 최근 신약의 혁신 가치 보상 방안을 약제의 결정 및 조정 기준 고시에 담아 개정 절차를 진행하는 등 보다 균형적인 관점에서 정책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약가 사후 관리 제도와 관련해서는 "앞서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을 통해 정책 방향을 발표했고, 연구 용역을 통해 약가 사후 관리 제도의 현황과 영향에 대해 들여다봤다"라며 "약가 사후 관리 제도의 방향이 어떻게 나아가야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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