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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당신이 6개월만 살 수 있다면…

[Trend] 당신이 6개월만 살 수 있다면…

조흥은행을 시작으로 ING생명에서 컨설턴트로 일했다. 개인재무컨설팅 회사인 에셋비를 세워 경영자로 변신하기도 했다. 2008년부터 은행, 보험사, PB, FP를 교육하고 금융 콘텐트를 제공하는 네오머니에서 일하고 있다.

주말 연속극 ‘여인의 향기’가 인기다. 여행사에 근무하는 노처녀 이연재(김선아)가 담낭암으로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고 난 후 그동안 잃어버리고 살았던 삶과 사랑을 찾아나가는 모습을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는 로맨틱 코미디다. 온갖 무시와 성희롱까지 견디면서 한 달 한 달 받는 월급 때문에 직장생활을 이어가던 주인공은 어느 날 병원에서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충격 속에서 10년 동안 휴가도 제대로 가지 않으면서 지키고 싶어 했던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적금을 깨 오키나와로 꿈꾸던 여행을 떠난다.

만기 된 적금을 찾으러 간 은행에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돈을 모았느냐?’는 은행원의 질문에 이연재는 이렇게 대답한다. “안 쓰고, 안 먹고, 안 입으면 돼요, 그러면 돼요.” 왜 그렇게까지 안 먹고 안 사고 안 입고 산 것일까? 그리고 시한부 선고를 받고 나서 왜 그 돈을 다 찾아 쓰기로 한 것일까? 이런 어리석은 질문은 명확한 답을 가지고 있지만 돈에 대한 주인공의 태도 변화는 우리에게 돈이 무엇으로 존재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돈이 목적이냐, 수단이냐는 해묵은 논쟁이 있다. 애초에 돈이 탄생한 이유는 물건과 물건의 교환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어느덧 돈은 물건과 물건을 교환하는 수단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 삶의 목적이 되어 버렸다. 물론 우리는 돈이 삶의 목적이라고 말하지도 않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돈을 버는 목적은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고, 저축을 하는 목적은 집을 사기 위해서다. 교환수단으로서 돈을 원하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그 돈이라는 놈은 이름표를 가지고 있지 않고, 하나의 욕구만을 만족시키는 놈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그런 돈의 속성을 이렇게 표현했다. ‘돈은 한 가지 욕구만을 구체적으로 충족시켜주는 게 아니라 모든 욕구를 추상적으로 충족시킨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재화나 물건은 한 가지 욕구를 구체적으로 충족시킨다. 빵은 주린 배를 채워주고, 코트는 추위로부터 지켜준다. 돈은 구체적인 필요를 충족시키지는 않는다. 돈은 빵을 사서 맛있게 먹을 수 있게 해 주고, 코트를 사서 몸을 따뜻하게 할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모든 필요를 추상적으로 만족시키는 돈은 이제 하나의 재화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목적이 되고, 하나의 우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돈을 목적으로 삼지 말아야우상은 삶 전체를 요구한다.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 소중한 것들을 희생하면서 살아간다. 가족과의 소중한 시간을 포기하고, 건강을 해치기도 하고, 때론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배운 일까지 하면서 돈을 섬긴다. 돈은 그렇게 우리의 삶에서 목적으로, 우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삶의 목적으로 존재하던 돈이 어느 순간 수단으로 자리를 바꾼다. 그 순간은 흔히 일상에서나 드라마에서나 ‘삶의 끝’을 대했을 때다. 그 끝이 지인의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의 마지막일 수도 있지만 목적으로 자리 잡고 있던 돈이 수단으로 바뀌는 순간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삶의 끝을 경험할 때다. 그리고 그 이후의 시간들, 목적이던 돈을 쓰면서 사는 시간들은 길든 짧든 아름다운 추억, 행복한 기억으로 남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돈을 목적으로 섬기면서 사는 삶보다 수단으로 활용하는 삶이 아름답고, 그것이 행복한 삶이라면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 돈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자리에 옮겨놓는 첫째 방법은 돈의 추상성을 깨버리는 것, 돈을 쪼개버려 구체화하고 개별화하는 것이다. 노동을 돈이라는 추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만 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위한 노동으로 바꾸고 돈을 모으는 목적을 막연히 더 많은 돈이 아니라 내가 돈으로 해야 할 것들과 돈으로 하고 싶은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재테크 서적이나 자산관리 전문가의 강의에서 접하게 되는 것들은 대부분 해야 할 것에 대한 이야기다. 자녀들 교육을 시켜야 하고, 집을 사야 하고, 부채를 갚아야 하고,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고 그들은 말한다. 이런 내용을 다루는 분야가 재무설계다. 막연한 돈 관리의 함정에 빠져 있는 우리에게 매우 필요한 내용이다. 돈의 ‘구체화와 개별화’는 여기서 시작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더, 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것의 목록을 반드시 집어넣어야 한다. 추가되는 목록은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여인의 향기’에서 주인공 이연재가 떠나는 오키나와로의 여행일 수도 있고, 아마추어 사진작가로서의 삶을 위해 암실을 마련하고 비싼 카메라를 사는 것일 수도 있다. 아들과의 해외 배낭여행, 마음 깊은 곳에 숨겨놓았던 유학의 꿈 등 일탈로 보일 수도 있는 일의 목록을 포함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일상에서 돈의 추상성을 극복하고 돈을 수단이라는 자리에 앉힐 수 있다.



지금이라도 당장 할 수 있는 일 시작해야돈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자리에 옮겨놓는 둘째 방법은 시간이라는 한계를 삭제하는 것이다. ‘아이가 대학을 가면, 내 집을 마련하고 나면, 대출을 다 갚고 나면’이라는 조건을 지워버리고 ‘지금 당장!’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질문한다. 시간이 충분히 남아 있지 않을 때, 우리의 생각 속에서 부차적인 삶의 목표는 우선순위에서 멀어지게 되고 가장 핵심적인 삶의 의미가 고개를 들고 밖으로 나온다.

‘지금 당장!’이라는 말과 ‘만약 ~하면 어떨까?’라는 질문을 던져보고, 지혜로운 시나리오를 짜 보자. 우리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한정된 시간 속에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을 소비할 수도 없고, 모든 경제적인 짐을 벗어버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겠다고 선언할 수도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혜로운 시나리오 속에서 멋진 이야기를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 살려내는 것이다.

가까운 사람 가운데 은퇴해 북카페를 하고 싶어 하는 부부가 있었다. 이들은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이 대학에 입학하고 나면 서울 생활을 정리해서 아내는 바리스타 자격을 취득해 핸드드립 커피를 팔고,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남편은 독서토론회도 열고, 조촐한 저자 초청 강연회도 열 수 있는 서울 근교의 조그만 북카페를 하고 싶어 했다. 10년 정도의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그동안 아이 사교육비를 충당하고, 대학등록금을 준비하고, 주택 대출을 갚아 나가는 데 두 부부는 맞벌이를 하며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온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제주도로 여행을 가면서 불량한 일기 때문에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경험하고 난 후 부부는 대화를 나누었다. ‘만약 사고가 난다면 가장 후회스러운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부부가 하고 싶은 일을 시작도 하지 못한 것, 오지 않은 먼 내일만을 생각하면서 살아온 시간들에 대한 후회일 것 같았고,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후 부부는 ‘지금 당장 북카페를 시작하면 어떨까?’라는 질문을 했다. 자금 문제, 아이들 학업 문제 등 여러 가지 현실적 장애물이 그들의 생각을 막아섰다. 그리고 질문은 이렇게 바뀌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아내는 바리스타 자격증 과정에 등록했고, 남편은 어렵지만 수입의 10%를 펀드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펀드 통장에는 ‘Bean’s Ireland’라는 북카페의 상호를 써 놓았다. 그리고 한 달에 두 번씩 주말을 이용해 유명한 커피전문점 탐방을 시작했다. 남편의 노트에는 카페 운영에 필요한 내용들이 하나씩 쌓여가고, 아내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고, 지인의 소개로 커피전문점에서 바리스타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커피전문점 운영에 대해 배워가고 있다. 10년 뒤의 삶은 이미 시작되었고, 그들은 그렇게 내일과 오늘을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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