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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 버금가는 위기지만 대처능력 충분

대공황 버금가는 위기지만 대처능력 충분



“지금 우리 경제는 과거 어느 때보다 건강합니다. 우리나라 시스템은 어느 나라보다 안정적이에요. 우리가 정부와 가계 부문을 잘 관리하고 있고 기업과 은행 부문도 정비가 상당히 잘 돼 있기 때문이죠. 유럽위기 등으로 밖에서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다른 나라들보다훨씬 잘 견뎌낼 겁니다.”

김석동(59) 금융위원장은 “우리 경제가 대외의존도와 외국인 투자비율이 높아 구조적으로 외부변수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지만 어려운 시절 어느 나라보다 잘 버틸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 2차 총선에서 중도우파 신민당이 승리해 유로존 잔류로 그리스 사태의 가닥이 잡힌 6월 18일 오후 여의도 금융위원회에서 김위원장과 만났다. 2주 전 그는 금융위 간부회의에서 “유럽 사태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1929년 대공황에 버금가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이 발언은 유럽 위기와 관련해 정부고위당국자가 발한 가장 높은 수위의 경고였다. 발언의 파문은 컸다. 그는 “사전에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뜻으로 꺼낸 말인데 물의를 일으켰다”며 웃었다.

유럽 위기의 본질이 무엇이라고 보나요?

“그리스 경제의 불안정성은 구조적인 것입니다. 유로존의 단일통화 체제 자체가 회원국의 경제 불안을 야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유로화로 통화는 통합했지만 재정은 통합되지 않은 게 근본 원인입니다. 유로존 국가들은 세 가지 매크로 정책 중 금리를 조작하는 통화정책과 환율을 조정하는 외환정책을 쓸 수가 없어요. 개별국가로서는 오로지 재정정책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처지죠. 경기를 부양하자니 결국 정부가 돈을 쏟아 부을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국가 부채가 누적된 겁니다. 그리스 사태는 유동성 문제가 아니라 지불능력의 문제입니다. 그리스가 유로존에 잔류하더라도 긴축과 관련한 합의가 잘 이뤄져 경제가 안정될 수도 있지만 구제금융 조정과 실행이 잘 안 돼 다시 위기국면에 접어들 수도 있습니다. 만일 유로존을 탈퇴한다면 질서 있는 퇴진이나 무질서한 퇴진의 길을 가겠죠. 어느 쪽이 됐든 그리스로서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겁니다.”

유로존 지도부가 그리스 사태에 어떻게 대응했어야 한다고 봅니까?

“유로존은 회원국들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얽혀 있습니다. 이렇다보니 사태 해결의 당사자인 복수의 정부가 정확한 진단과 제대로 된처방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렇더라도 정부가 빨리 개입해 적절한 조치를 취했어야 합니다. 개입의 폭은 작아야 하고요. 이렇게 하려면 정부가 시장을 깊이 이해하는 한편 평소 시장과 긴밀하게 소통해야 합니다.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잘할 수 있도록 룰을 잘 세팅하는 게 일반적인 정부의 평소 역할이죠.”

김 위원장은 금융통이다.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금융정보분석원장,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등 금융 분야의 요직을 거쳤다. 그의면모는 ‘영원한 대책반장’과 ‘관치의 대명사’란 별명에 잘 드러난다.그는 정책 전환기나 경제 위기에 구원투수로 여러 번 등판했다. 재정경제원 금융실명제 총괄반장, 부동산 대책반장, 한보 대책반장등을 맡았고 2003년 카드 사태, 2005년 부동산 가격 폭등 때도 해결사로 투입됐다.

괄목할 성과를 발판으로 승진도 고속으로 했다. 재경부 차관보로 있다가 금융위의 전신인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긴그는 5개월 만에 2007년 수석 차관인 1차관으로 친정에 복귀한다. 이때 2차관이 행시 6년 선배인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이었다. 4년 후 두 사람은 금융위원장 업무를 인수인계했다. 2003년 카드사태 당시 관치 논란이 일자 그는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선언해 논란을 잠재웠다.

‘관치의 대명사’라는 평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어쩌다 제가 관치를 선호하는 사람으로 잘못 알려졌는데 제가 우리나라 금리 자유화를 완성한 주역입니다. 시장이 경색되고 왜곡되는 위기상황에서 여러 번 대책반장을 맡다 보니 관치주의자로 비쳐진거죠. 시장이 정상적으로 기능할 때 시장의 주인은 가격이고, 그 작동원리는 자율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 시장과 금융의 본 모습이죠. 이럴 때는 정부가 빅브라더로서 베일 안쪽에 있어야 합니다.이때 시장에 모습을 드러내면 그게 바로 관치죠.

그런데 시장이 외부의 충격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시장 붕괴의 위기엔 가격 시스템이 고장 납니다. 이럴 땐 정부가 베일을 벗고 시장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때도 정부의 역할은 최소화해야 합니다. 또 의사결정이 신속해야 돼요. 치료 부위를 최소화해 빨리 확실하게 처방을 하고 바로 빠져나와야죠. 이게 관치의 본질입니다. 미국 정부가 리먼브라더스 사태 후 시티뱅크에 45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투입했는데 2년도 안 돼 회수했습니다. 정부가 이렇게 운신해야 관치 논란도 잦아듭니다.”

우리금융지주 민영화, 산은지주 기업공개(IPO)는 어떻게 돼 가나요? 대통령선거의 영향은 없을까요?

“우리금융지주는 7월 27일 예비입찰을 합니다. 최종 입찰을 거쳐 10월 중엔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수 있을 겁니다. 위기를 잘 극복한 만큼 정부 지분을 파는 게 원칙입니다.세계 70위권의 금융지주회사가 12년째 양해각서(MOU)에 의해 경영이 된다는 건 말이 안 돼요. 따로 염두에 두고 있는 임자가 있는 건 아닙니다. 우리 금융산업의 규모가 커졌고 질적으로도 성장했으니 시장에 내다팔겠습니다. 대선 일정에 영향을 받으면 안 되죠. 경제 문제는 경제 문제이고 정치일정은 정치일정입니다.

공직자가 정치일정을 고려해 경제문제의 해결을 미룬다면 그게 더 문제죠.서울은행 민영화도 국민의 정부 임기 마지막 해인 2002년 5월 매각 공고하고 그 해 12월 합병등기까지 완료했습니다. 산은지주 IPO는 당사자가 올 9~10월을 목표로 추진 중이니 기다려볼 참입니다.산은지주의 경우 민영화가 이른 시간 안에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을거예요.”

우리나라 금융산업이 경쟁력이 있다고 보나요? 우리 경제의 성장엔진도 될 수 있습니까?

“부임 후 대외환경 변화에 대응해 금융시장 안정에 주력했습니다. 가계빚, 저축은행 문제, 은행건전성 확보, 외화 유동성 확보 같은 것들이죠.폭풍우가 올 때에 대비해 창틀을 고정하고 처마 끈을 단단히 동여매는 작업을 한 셈이죠. 그런데 언젠가 먹

구름이 걷히고 나면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나서야 합니다. 그러자면기본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한국형 헤지펀드 출범, 자본시장법 개정안 국회 제출 같은 게 이런 시도입니다.

금융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죠. 과거 금융산업은 실물경제를 뒷받침하는 그림자 기능에 충실했지만 사실 금융은 미래의 성장산업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트레이닝만 잘 받으면 아주 잘 해낼 수 있는 분야죠. 그래서 금융산업을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키워보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 올 하반기에 자본시장법 개정,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제정,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 이 세가지를 추진할 겁니다. 시장의 안정과 산업 발전을 위해 대단히 시급한 법률들이죠.”



금융 허브론은 어떻게 보나요?

“금융 허브란 이렇게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고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과정을 거쳐 도달 가능한 결과물로 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역내 여러 나라를 아우르는 금융의 중심지가 되면 그게 바로 금융 허브죠.”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자본주의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자본주의는 지난 40년 간 강고한 힘을 발휘한 신자유주의하에서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금융산업도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경제위기가 반복됐고 사회의 양극화가 극심해졌다. 대표적인 위기가 리먼 브라더스 사태와 이번 유럽의 재정위기다.

양극화에 대한 반작용은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로 분출했다. 그는 “자본주의가 과연 우리 사회를 주도하는 질서로서 사명을 다하고 있느냐는 회의가 대두했고 그에 따라 자본주의 4.0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자본주의를 움직이는 기본원칙으로서 자유방임은 이제 시효를 다했습니다. 신자유주의 정부는 물가 관리만 담당했지만 새로운 자본주의 하에서 앞으로 정부의 개입이 확대될 겁니다. 금융 패러다임도 시장 자율성보다 시장규율과 안정성,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뀔 겁니다.”

가계 빚 규모를 둘러싸고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참 걱정스런 대목입니다만, 한 마디로 정부가 그립을 쥐고 있습니다. 상황 인식을 제대로 하고 있고 구체적인 대책들을 가동하고 있죠. 우리 가계부채의 문제는 너무 빨리 늘어났고 구조가 굉장히 나쁘다는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시장상황이 나빠지고 금리가 오르면 빚을 갚기 어려운 위험에 노출되기 쉬운 구조라는 거죠. 지난 해 초 부임 후 마련한네 가지 대책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일자리 만들기입니다. 빚이 많아도 제때 갚으면 문제 될 게 없습니다. 원리금상환을 제때 하게 하려면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부채도 심각한 수준 아닙니까?

“GDP의 35% 수준으로 세계적으로 부러움의 대상이죠. 정부만 잘한게 아니라 1997년 IMF 체제 당시 전 국민이 고통분담을 한 덕입니다.시장금리는 30%까지 치솟고 환율은 2000원까지 뛰었죠. 그 바람에 수입물가가 올랐는 데도 금반지까지 모으지 않았습니까? 그때 만일 금리를 올리지 않고 환율도 1000원 선을 유지했다면 엄청난 규모의 재정을 쏟아부었어야 할 겁니다.

그랬다면 지금 스페인 비슷하게 됐을 거예요. 5년 전 스페인의 국가부채가 지금 우리와 비슷한 35% 수준이었습니다. 그랬던 게 80%까지 올라갔어요. 그리스도 그랬지만 고통을 분담하지 않고 재정을 투입했기 때문입니다. 홍콩에 갔더니 거기 당국자가 그리스는 한국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하더군요. 우리 국민은 장롱 속 금반지까지 들고나와 기적을 만들어 냈는데 그리스 국민은 분노에 차 돌을 들지 않았습니까?

재정은 국가의 마지막보루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그랬고, 지금 우리나라의 재정 건전성은 대한민국 국민이 지켜낸 겁니다. 국민들이 올린 개가예요. 이렇게 국민의 손으로 지켜낸 재정을 누구도 훼손해선 안 됩니다. 복지에 대한 과도한 지출을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까닭이죠.”

재무부 출신인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감춰진 국가부채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적절한 지적이고 국가부채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 부단히 경계해야합니다. 다만 우리가 처한 여러 가지 상황을 해외 기관들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을 감안하고도 우리 재정에 대해 좋게 평가를하는 거고요.”

저축은행 사태 처리 수준에 대해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재조사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보지는 않나요?

“부임 당시 세계 경제환경이 상당히 어려워질 거로 내다봤습니다. 외부 환경이 어려워지면 국내에 파급될 거고 이때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게 취약한 부문입니다. 취약한 곳 중 하나가 저축은행이라고 봤죠. 그래서 작년 상반기에 여덟 개 저축은행을 정리한 것을 비롯해 지금까지 20곳을 정리했는데 이게 자산 기준으로 전체 저축은행의 40%에 해당합니다. 업계 전체적으로 부실한 건 다 솎아냈고 이제 일괄적으로 하는 구조조정은 더 이상 없을 겁니다. 큰 뇌관을 뽑은 셈이죠. 개별 저축은행에서 경영 상황에 따라 부실이 나올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습니다만. 또 대주주 직접 조사 등을 골자로 하는 저축은행법 개정을 추진 중입니다.”

유럽 재정위기의 요인으로 과도한 자본 유출입을 지적하는 전문가도 있습니다.자본 유출입을 확대하는 방향성은 타당한가요?

“외환 시스템이 흔들리지 않도록 외화건전성부담금 제도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을 튼실하게 만들고 투명성과 신뢰성을 확보해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투자를 하게 하는 겁니다. 제도적으로 자본 유출입을 막기보다 확대 균형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거죠. 물론 외화 투기자금의 급격한 유입으로 우리 시장이 위협받는 건 막아야겠습니다만.”

금융사들이 레버리지를 과도하게 키워 성공을 거둔 후 종사자들에게 과도한 보너스를 지급한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있습니다. 그러다 실패하면 세금을 쏟아 붓는데 이런 도덕적 해이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지 않나요?

“성과급 등 보수의 수준은 금융회사가 자체적으로 결정할 문제입니다. 단 이들이 안정적이고 건전하게 경영이 돼야 한다는 원칙은 한치도 양보할 수 없습니다. 과도한 레버리지, 불건전한 영업 등으로 시장의 안정이 훼손되거나 금융소비자의 이익이 침해된다면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김 위원장은 기업은행의 민영화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우리 경제의 근간인 중소기업에 전문적으로 자금을 공급하는 은행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유럽 재정위기가 장기화하고 금융 불안이 지속되면 이 위기가 실물경제로 전이될 수 있다고 말했다.“금융시장을 지키는 건 일종의 마지노선을 구축하는 겁니다. 그런데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은 철벽 같은 마지노선을 우회해 그 북쪽 벨기에 지방의 숲을 통과해 프랑스군 본부를 점령합니다.

이렇게 금융시장을 잘 지켰어도 실물부문이 나빠질 수 있습니다. 금융시장을 잘 지키더라도 실물 쪽으로 우회해 공격해 들어올 수 있다는 거죠. 지금 조선·해운 경기가 안 좋은 게 유럽 위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실물쪽에서 걱정스러운 게 중소기업입니다. 중소기업은 한번 무너지면 재건이 안 됩니다. 그래서 중소기업 지원과 관련해 우리가 가동할 수 있는 모든 정책수단에 대해 연구 중입니다. 기업은행의 민영화에 반대하는 것도 바로 그래서죠. 정부 전체의 의견과는 안 맞을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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