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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POLITICS - 피와 눈물의 땅 바그다드

GEOPOLITICS - 피와 눈물의 땅 바그다드

수니파 무장단체 ISIS가 이라크의 여러 도시를 점령한 가운데 북부의 유전지대 키르쿠크에서 한 시아파 무장대원이 무전연락을 하고 있다.



이라크의 혼돈과 유혈사태,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 ‘이라크·시리아 이슬람 국가(ISIS)’의 복면한 전사들, 그리고 그들의 이슬람 제국 건설 야심─. 중동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런 지정학적 상황을 이해하려면 지금으로부터 1239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때는 AD 775년, 장소는 바그다드.

원래 바그다드는 762년 압바스 왕조의 수니파 칼리프(과거 이슬람 국가 통치자) 알 만수르가 건설했다. 그는 바그다드를 중앙아시아에서 대서양까지 펼쳐진 대이슬람제국의 수도로 정하고 ‘평화의 도시’라고 불렀다. 그후 10여 년 뒤 만수르는 메카 순례 중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만수르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마흐디와 그의 아내 리타는 부친의 생전에 비밀 지하실을 열 수 있는 열쇠를 물려 받았다. 칼리프의 죽음이 공식 확정될 때까지는 그 지하실에 들어가선 안 된다는 조건이 따랐다.

만수르의 사망이 공식 확정되자 마흐디 부부는 지하실로 뛰어 내려갔다. 금화와 은화, 보석과 갖가지 보물들이 가득하리라는 생각에 그들의 가슴은 마냥 두근거렸다. 바그다드는 동방의 아테네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장려한 도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지하실 문이 열리자 기대와 아주 다른 것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넓은 지하실은 시체로 가득했다. 남자, 여자, 어린이, 노인 등 다양했다. 각 시신의 귀에는 이름과 족보가 적힌 가죽 인식표가 달려 있었다. 그들은 모두 만수르의 수하들에게 처형당했다. 그들에겐 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전부 예언자 무함마드(마호메트)의 조카로 그의 딸 파티마와 결혼한 알리의 후손이었다. 그들이 시아파의 원조다.

이슬람 창시자인 예언자 무함마드가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사망하자 이슬람은 수니파와 시아파로 갈렸다. 수니파는 칼리프라고 불리는 이슬람 공동체의 지도자를 무함마드의 합법적 후계자로 간주한다. 반면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사위이자 4대 칼리프인 알리만을 유일한 후계자로 인정한다. 현재 세계 이슬람교도의 약 85~90%를 차지하는 수니파는 스스로 정통파라고 부른다. 반면 시아파는 소수로 세계 이슬람교도의 10~15% 차지한다.

만수르가 새로운 제국의 수도 바그다드를 건설한 뒤 10년도 못 가 만들어진 그 시아파 죽음의 지하실은 수니파와 시아파의 분열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최초의 잔혹사였다. 그 종파 분쟁은 그후 13세기 동안 이라크를 괴롭혔으며 지금도 이라크를 공포에 떨게 하며 중동 전체를 혼란의 도가니로 밀어넣고 있다.

지금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맹위를 떨치는 혼란은 기존의 확실성을 뒤엎으면서 국인경과 국제적 경계선을 다시 그리도록 위협한다. 그 와중에 숙적인 미국과 이란이 협력을 도모할 수밖에 없는 희한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ISIS를 격파하고 이라크를 안정시키려는 목적이 서로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미국인 다수는 미국과 이란이 손잡는 상황을 혐오한다. 다른 한편으로 이라크의 온건 수니파는 미국에 배신감을 느끼며 그런 행동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얄궂게도 지금 바그다드의 운명은 이란의 손에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이란 혁명수비대 소속 최정예 부대 ‘쿠드스’의 카셈 술레이마니 사령관이 이미 이라크에 파견돼 ‘군사작전실’을 설치하고 ISIS의 공격에 대비해 방어를 강화하며 중화기를 들여놓고 있다.



칼리프 제국의 꿈성전주의 단체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ISIS의 꿈도 원대하다. ISIS의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는 2003년 이라크전 발발 후 이라크에서 활동한 알카에다의 고위간부 출신이다. 그는 레바논과 시리아부터 이라크, 이란, 바레인까지 펼쳐진 ‘시아파 초승달 지역’을 이단으로 간주하며 증오의 대상으로 본다. 바그다디는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시작해 수니파 이슬람 칼리프 제국을 건설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다.

그런 성전주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지중해 해안부터 페르시아만까지 이어지는 칼리프 제국의 건설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이슬람 율법 샤리아의 엄격한 교리 아래 서서히 하나로 뭉쳐지는 이슬람세계의 건설이 그들의 목표다.

그러나 762년부터 1258년까지 바그다드를 수도로 삼은 압바스 왕조는 이슬람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당시의 이슬람 세계는 진보적이고, 지적인 호기심이 강했으며, 문화적으로 세계주의를 추구했다. 바그다드는 유대인, 기독교인, 무슬림이 어울려 사는 번창하는 대도시였다.

물론 ISIS가 품은 칼리프 제국 건설의 꿈은 황당무계하다. 그러나 만약 그 꿈이 이뤄진다면 그 제국은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이나 소말리아의 테러단 알 샤바브와 더 비슷할 것이다. 21세기 성전주의의 전형을 말한다. 즉결 처형이 자행되고, 간통자들이 돌로 쳐 죽임을 당하며, 도둑이 손목을 잘리고, 어린이들이 성전주의에 세뇌되며, 경제가 붕괴하는 무시무시한 곳이 될 것이다.

ISIS의 야망이 터무니없으며 그들에겐 그럴 능력도 없다고 보는 게 타당할지 모른다. 그러나 중동 내부의 국경선을 다시 긋는 것이 허무맹랑한 꿈은 결코 아니다. 지금의 국경들은 비교적 오래 되지 않았으며, 외세의 압력으로 그어졌기 때문이다. 영구히 확정된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영국과 프랑스는 1916년 사이크스-피코 협정으로 오스만 제국 아래 있던 중동을 각각의 세력권으로 분할했다.

이라크의 국경은 영국이 그었다. 모술(수니파), 바그다드(시아파), 바스라(쿠르드족) 지역을 하나의 새 국가로 묶어 1921년 이라크를 탄생시켰다. 그때부터 이라크에는 폭력사태가 거의 끊임없이 이어졌다. 지금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비교적 조용하던 이라크 쿠르디스탄에선 쿠르드족이 들썩이고 있다. 오랫동안 쿠르드족 국가 건설을 염원해온 그들은 지금의 위기를 기화로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이번 위기가 더 복잡해졌다.

ISIS의 급작스러운 부상은 세계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브라질 월드컵 때문에 약간 주의가 흐트러지긴했다). 하지만 모술, 티크리트를 비롯해 여러 이라크 도시를 점령하고 바그다드까지 위협하는 ISIS 복면 대원들의 기승은 흔히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달리 새로운 현상이 결코 아니다.

그들은 수세기에 걸친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정치권력 투쟁에서 가장 최근 등장한 주인공일 뿐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도구와 기술은 새 것일지 모른다(실제로 이라크 역사의 대부분에서 저항세력이 끔찍한 처형 장면을 동영상으로 전파할 수 있는 트위터 같은 기술은 없었다). 그러나 다른 것, 특히 참수 같은 끔찍한 행위는 이 세계에서는 오래된 전통이다.

압바스 왕조의 권위 있는 역사서를 들춰보면 만수르에 관한 대목은 즉결 처형 묘사로 가득하다. “만수르가 ‘참수하라!’고 외치자 그가 처형장으로 끌려가 목이 잘렸다.” “만수르의 명령으로 그가 참수됐다.” 자칭 ‘이슬람의 칼’이자 ‘세계 정복자’였던 타타르족 군벌인 티무르 타메를란은 1401년 바그다드를 점령한 후 9만 개의 해골로 탑 120개를 세웠다. 그처럼 피비린내 나는 오랜 역사를 감안하면 허세를 부리며 이목을 끄는 ISIS의 대원들은 조상에 비해 열정이 떨어져 보일 정도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해묵은 갈등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핵심에는 정치권력을 장악하려는 투쟁이라는 간단한 이야기가 있다. 세계 16억 명의 무슬림 중에서 10~15%를 차지하는 시아파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를 최초의 칼리프로 떠받들며 박해 받은 그의 후손들을 무함마드의 정통 후계자이자 이슬람 세계의 지도자로 간주한다(‘시아’라는 용어는 알리의 신봉자라는 뜻의 ‘시아트 알리’에서 나왔다).
이라크 북부 키르쿠크주에 수니파 무장단체가 진격하자 그들을 피해 마을을 탈출한 시아파 여성들.



시아파 초승달 지역.


사라지지 않는 시아파의 순교그러나 무슬림의 다수를 차지하는 수니파(‘수니’라는 용어는 예언자의 전통과 무슬림 공동체의 합의를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알 알 수나 왈 자마’에서 유래했다)에겐 알리가 4대 칼리프로 ‘정통 칼리프 시대’의 마지막일 뿐이다. 수니파에 따르면 이슬람의 권위는 그의 혈통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AD 680년 알리의 아들 후세인이 이끄는 시아파 군대가 지금의 이라크 남부에서 벌어진 카르발라 전투에서 수니파 군대에 대패했다. 그 자리에서 후세인은 무참하게 처형당했다. 그 후세인이 시아파 순교 전통의 원조다.

그런 7~8세기의 역사가 왜 중요할까? 첫째, 시아파 순교 전통이 지금도 이란의 시아파, 그리고 이라크 인구의 60~65%를 차지하는 시아파 사이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둘째, 중세의 일시적인 예외를 제외하면 현재의 이라크를 포함하는 지역의 정치 권력은 만수르 시대부터 지금까지 수니파가 독점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2003년 미국이 주도한 연합군의 이라크 침공으로 그 오랜 권력구조가 붕괴됐다.

압바스 왕조의 첫 500년 동안 바그다드는 세계 문화와 지식의 수도였다. 학자와 과학자, 시인과 음악가가 시대를 풍미한 ‘천일야화’의 도시가 바그다드였다. 당시는 최고 권력자가 수니파 칼리프들이었다. 1534년 오스만제국의 술탄 술레이만이 바그다드를 점령한 뒤에도 잠시 페르시아가 바그다드를 점령한 시기를 제외하고는 수니파 오스만족이 4세기 동안 내리 권력을 잡았다.

1917년 영국인들이 바그다드에 진입해 오스만족을 몰아냈을 때도 영국은 수니파 집권의 오랜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파이잘을 꼭두각시 군주로 앉혔다. 파이잘은 1958년 혁명으로 무참히 처형됐지만(요즘 ISIS가 장악한 지역에서도 그런 중세시대적인 폭력과 잔혹한 처형이 그대로 반복된다) 그때도 시아파는 권력을 잡지 못했다.

그후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도 시아파를 탄압하고 학살했다. 그의 행동도 8세기 만수르의 시아파 박해와 조금도 다름이 없이 잔학했다. 오죽했으면 그를 ‘바그다드의 도살자’라고 불렀겠는가?

2003년 이라크전 발발 후에야 시아파는 아야드 알라위(2004~05), 이브라힘 알 자파리(2005~06), 누리 알 말리키(2006~) 총리 아래서 정치권력을 맛볼 수 있었다. 수니파와 시아파 모두에게 그런 현상은 말 그대로 대격변이었다. 게임의 규칙과 지배자가 완전히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수니파와 시아파의 지각판이 서로 충돌한 것이 현재의 혼란을 촉발한 지하의 조건이었다면 지상의 원인은 대부분 말리키에게 돌아간다. 말리키는 이미 총리로 8년을 재임했고 이번 선거에서 세 차례 연임을 노린다. ISIS가 최근 갑자기 무대에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말리키가 지난 4월 총선 후 총리 연임을 위해 연정을 꾸리느라 바그다드의 담배 연기 자욱한 방에 박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니파 무장단체 ISIS가 장악한 모술에서 탈출한 이라크 청년이 난민수용소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
지난 1월 ISIS가 이라크 서부의 전략 도시 팔루자를 점령했을 때 이라크 정부가 정신을 차려야 마땅했다. 그러나 말리키는 불만을 품은 수니파 지도자들을 포용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시아파 패권을 더욱 확대하면서 권력을 독점하고 수니파와 쿠르드족을 소외시켰다.

수니파가 다수인 북부 지역에서 이라크군이 쉽게 무너져 ISIS가 모술을 점령하고 바그다드로 남하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 것도 그 때문이다. ISIS가 이라크 북부를 장악한 뒤 말리키는 의회의 비상사태 선포조차 이끌어내지 못했다. 이라크에서 그가 그처럼 무시당한다는 뜻이다.

비판자들은 이란의 꼭두각시로 널리 간주되는 말리키가 이라크 총리로서 완전히 실패작이라고 주장한다. 이라크 각료를 지냈고 미국 주재 대사를 지낸 사미르 수마이다이에는 “말리키의 통치 아래서 이라크의 안보, 투명성, 부패, 언론의 자유, 인권, 실업, 의료, 교육을 포함한 모든 지표가 후퇴했다”고 말했다.

“그는 무자비하게 자신에게 권력을 집중시키고 적대 세력만이 아니라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탄압하면서 종파적 증오심을 부추겨 자신의 시아파 권력 기반을 다졌다. 그 과정에서 일부 동지들과 이웃나라가 이라크에 등을 돌리게 됐다. 물론 이란과 시리아 정권은 예외다.”

지금 바그다드에 사는 것은 그 옛날처럼 또 다시 공포 속에서 지내는 것이다. 바그다드 주민 중 다수는 겉으로는 허세를 부리지만 속으로는 비상식량을 사재고 알라에게 자신의 안위를 기도한다. 2003년 4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바그다드에서 약탈이 횡행했다. 그때 바그다드의 블로거 살람 팍스는 마치 ‘자해 행위’와 같은 약탈의 공포를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눈앞에서 도시가 파괴되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것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다. 내면이 갑자기 무너져 모든 희망을 잃게 된다. 자신의 손으로 파멸을 초래하는 것이다.” 11년이 지난 지금 바그다드는 그 수준을 넘어서는 위기의 문턱에 서 있다.

이라크가 ISIS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란, 그리고 이라크의 시아파 지도자 알리 알 시스타니 덕분일 것이다. 최근 시스타니는 이라크의 시아파에게 수니파 테러리스트에 맞서 나라를 지키자고 촉구했다. 그러자 수많은 자원자들이 무기를 들었다.

이라크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 중 한 명인 시스타니는 2003~04년 당시 미군의 이라크 최고행정관이던 폴 브레머에 의해 완전히 무시당했다. 잘 알려진 일화에서 브레머는 시스타니를 “검은 터번을 두른 또 다른 늙은이”라며 일축했다. 그처럼 종파 갈등이 심하고 사정이 복잡한 나라인 이라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앞으로 미국과 영국의 특전대가 ISIS를 표적으로 공격하면서 미군의 무인공격기가 언론의 머리기사를 장식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런 극적인 공격으로도 현실을 바꿀 순 없다. 미국이 더는 이라크의 운명을 좌우할 수 없다는 현실 말이다. 미국이 아무리 원치 않는다며 손사래를 쳐도 이라크의 혼돈 상황에 관한 한 모든 길은 테헤란으로 통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란이 2003년 발발한 이라크전의 최대 승자라는 이야기다. 사담 후세인만이 아니라 칼리프 만수르도 기겁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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