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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주인 마음 아는데 주인은 잘 몰라

개는 주인 마음 아는데 주인은 잘 몰라

반려견도 감정 갖고 있지만 추상적인 개념의 이해나 이성적인 사리 분별은 불가능해
개를 쓰다듬어 주면 개에게서 사랑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 옥시토신 수치가 올라간다. / 사진:GETTY IMAGES BANK
반려견과 함께 지내면 개가 기분 좋거나 우울할 때를 직감으로 알 수 있다. 대다수 견주가 반려견의 기분 상태를 모르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과학계도 이제는 개가 감정을 갖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물론 개가 경험하는 감정을 직접 측정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인간은 길들인 개와 수 세기 동안 밀접한 유대를 가졌다.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는 1764년 펴낸 ‘철학사전’에서 이렇게 적었다. “자연은 사람에게 신변 보호와 기쁨을 위해 개를 선사한 것 같다. 개는 동물 중에사 가장 충직하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친구다.”

오랜 세월에 걸친 수많은 연구는 반려동물이 우리 삶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성인 견주 97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정신적인 고통을 받는 시기엔 대다수가 부모나 형제자매, 가까운 친구, 자녀보다 반려견에 의지할 가능성이 더 컸다.

따라서 개가 인간의 심리 치료에 가장 흔히 사용되는 동물인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실제로 다양한 정신건강 프로그램에 개를 활용하는 경우가 갈수록 많아진다. 친구로서 부담 없이 즐겁게 어울리고 조건 없는 사랑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어바인 캠퍼스) 연구팀은 개를 이용한 치료법이 어린이의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증상 완화에 상당히 효과적이었다고 발표했다.

영국에선 비영리단체 ‘치료반려동물(PAT)’에 등록된 개 5000여 마리가 매주 13만 명 정도의 사람을 치료 목적으로 만난다. 미국 와이오밍주에 있는 치료견연합(ATD)은 개를 훈련시켜 외롭거나, 정서적으로 불안한 고령층을 방문해 치료한다. 1990년에 설립된 ATD는 미국 내 최대 규모의 반려견 치료협회로 정식으로 등록된 치료견과 치료사를 한팀으로 구성해 정서적 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미국 전국 조직으로 구성된 ATD는 지역별로 반려견이 치료견으로 적합한지 테스트한 후 반려견 주인과 반려견을 함께 훈련시켜 공식적인 ATD 자격증을 부여한다.정신분석학으로 유명한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처음부터 의도하진 않았지만 개를 활용한 치료의 선구자로 인정 받는다. 그가 1930년대 심리치료를 하는 도중 ‘조피’라는 이름을 가진 중국산 품종인 차우차우 개가 우연히 그의 곁에 있었다. 프로이트는 조피가 그냥 근처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상담치료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조피가 치료실 내의 긴장감을 완화하고 환자의 마음을 쉽게 열어 상담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조피가 곁에 있으면 환자가 좀 더 마음을 열었고, 그런 상황이 환자와 의사의 편안한 관계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됐다.

하지만 동물을 활용한 치료의 시작은 제2차 세계대전과 연결돼 있다. 당시 미국 공군 소속의 윌리엄 린 상병은 뉴기니의 이동병원을 방문할 때 요크셔 테리어 스모키와 동행했다. 스모키를 본 부상병은 기분이 좋아지고 사기가 올랐다.

그러나 1960년대가 돼서야 개가 ‘동료치료사’로서 활동한 공식적인 사례가 나왔다. 최초의 현대적이고 체계적인 치료 프로그램은 1962년 미국의 소아정신과 전문의 보리스 레빈슨이 자신의 애견 ‘징글스’을 치료견으로 활용한 사례를 꼽을 수 있다. 진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던 어린이들이 징글스와 놀면서 치료 받지 않고도 회복하는 것을 목격한 그는 연구를 통해 동물을 매개로 한 치료 효과를 입증했다. 레빈슨은 “어린이 심리치료의 새로운 차원이 열렸다”고 주장하며, 동료들의 반대에도 치료 도우미로 개를 활용하는 방안을 강력히 옹호했다. 현재는 우울증, 간질환, 심근경색, 협심증, 대인기피증, 자폐증 등 많은 질환 치료에 개가 활용되고 있다.

실제로 개는 인간을 매우 잘 이해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역이 반드시 성립하는 건 아니다. 전형적인 예가 이것이다. 집안에서 작은 ‘사고’가 있었을 때 견주는 반려견이 자신의 잘못을 알고 스스로 주눅이 든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도둑이 제 발 저리듯이 말이다. 하지만 반려견의 그 표정은 순전히 굴복을 의미한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인정이 아니라 ‘나를 벌하지 말라’고 말하는 방식이라는 뜻이다.

개의 뇌는 옳고 그름의 개념을 이해할 수 없지만 우리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기는 아주 어렵다. 하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지 구별할 능력이 없으면 죄책감을 가질 수도 없다. 깨진 컵 곁에서 주눅 든 모습을 보이는 개는 벌어진 상황에 대한 주인의 반응이 두려울 뿐이다. 대부분의 경우 개는 이전 경험을 근거로 주인이 내리는 벌을 두려워한다.

반려견과 견주 사이에서 생기는 주된 어려움 중 하나는 개의 몸짓 언어를 주인이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거기에다 개가 추상적인 개념을 이해하며 복잡한 상황에서 이성을 사용해 사리를 판단한다는 인간의 잘못된 인식이 더해지면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동물이 감정을 갖는지 알 수 있는 다른 방법은 호르몬 수치를 살펴보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주인이 반려견의 목을 쓰다듬어 주면 개의 옥시토신 수치가 올라간다. 옥시토신은 다른 기능도 많지만 ‘사랑의 호르몬’으로 불리며 긴장 완화를 유도한다고 알려졌다(특히 어머니와 자녀 사이의 유대감 형성에 도움이 된다). 반려견과 주인 사이에서도 같은 효과가 있다.

따라서 목을 쓰다듬는 것 같은 애정 어린 행동을 하는 동안 개가 어떻게 느낄지 확실히 알 순 없지만 옥시토신이 인간이 경험한 것과 비슷한 느낌을 개에게도 일으킨다고 판단하는 것이 합당한 듯하다. 쉽게 말해 주인에게 사랑과 애착을 느낀다는 뜻이다.

반면 즐겁지 않은 상황에 처한 개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올라간다. 그 같은 스트레스 반응을 일으키는 흔한 상황 중 하나가 오랜 시간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있게 하는 것이다. 개는 군집 동물로 동반자가 필요하다. 혼자 있는 개가 행복한 경우는 거의 없다. 따라서 견주라면 바로 그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 모든 점은 개와 인간이 함께 살고 함께 일하려면, 또 그런 상황을 양측이 모두 즐기려면, 서로의 감정 상태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개와 인간이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진 못해도 견주와 반려견은 서로의 웰빙에 필수적이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인간과 개는 더 행복하고 건강해질 수 있도록 서로 도울 수 있다.

- 잰 훌, 대니얼 앨런



※ [필자 잰 훌은 영국 킬대학 생물학 교수이며, 대니얼 앨런은 같은 대학의 동물지리학자다. 이 글은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
 [박스기사] 염소도 사람 표정 읽을 수 있다 - 농장 동물도 행복하게 미소 짓는 사람과 교감하려 해
염소는 미소 짓는 사람을 좋아한다. 사진은 앨런 매켈리것 박사와 영국 켄트 버터컵스 염소 보호소의 염소. / 사진:TWITTER
개는 사람의 가장 좋은 친구라고 일컬어진다. 개는 인간의 감정을 알고 인간의 표정까지 파악할 수 있는 것으로 잘 알려졌다. 그렇다면 다른 동물은 어떨까? 인간과의 정서적 소통은 개와 말 같은 반려동물이나 인간이 부리는 동물에서만 가능할까 아니면 염소 같은 농장 동물도 사람의 표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앨런 매켈리것과 동료들은 그 점을 확인하기 위해 영국 켄트에 있는 버터컵스 염소 보호소에서 간단한 실험을 했다. 연구팀은 같은 사람의 얼굴을 찍은 사진 두 장을 각 염소 앞의 벽에 붙였다. 한 사진은 기쁜 표정, 다른 사진은 화난 표정을 담았다. 연구팀은 여러 사진을 바꿔 붙여 염소가 다양한 얼굴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연구팀은 염소의 반응을 녹화한 뒤 그 결과를 분석했다. 이 연구를 설명한 논문은 학술지 영국 왕립 오픈 사이언스 최신호에 발표됐다.

영국 퀸메리대학에 있을 때 이 연구를 이끌었고 지금은 로햄턴대학으로 옮긴 매켈리것 박사는 염소가 화난 사람의 얼굴을 피하고 행복한 표정의 얼굴에 다가가는 경향을 보였다고 뉴스위크에 설명했다. “행복한 표정의 사람 얼굴 사진 앞으로 가면 그곳에 멈춰 서서 자세히 들여다보는 듯했다.” 특히 행복한 표정의 얼굴이 벽의 오른쪽에 붙어 있을 때 그런 경향이 뚜렷했다. 그에 따라 연구팀은 긍정적인 감정이 염소 뇌의 왼쪽 부위에서 처리된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판단했다.

퀸메리대학에 있을 때 이 연구에 참여했고 지금은 독일 라이프니츠 농장동물생물학 연구소에서 일하는 크리스티안 나브로트 박사는 “우린 염소가 인간의 몸짓 언어를 잘 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분노와 행복 같은 인간의 서로 다른 감정 표정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이 연구에서 우리는 염소가 그런 표정을 구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행복한 표정을 짓는 사람과 상호작용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매켈리것 박사는 염소의 반응에 놀랐다고 말했다. “실험하기 전엔 염소가 사진을 무시하거나 뜯어먹으려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염소가 사람의 미소 짓는 얼굴에 더 관심을 가진 것은 행복해 보이는 사람과 긍정적인 교류를 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을 학습을 통해 배웠기 때문인 듯하다고 설명했다. “사람 곁에 있는 데 익숙한 염소는 일반적으로 사람과 교류하고 쓰다듬어 주는 것 같은 행동을 좋아한다.”

매켈리것 박사는 염소의 인지 능력을 이해하는 것이 그들의 복지 증진에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과학자들이 소나 양, 돼지 같은 다른 농장 동물을 이해하는 데 염소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는 염소와 사람의 소통을 좀 더 깊이 연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염소는 약 10억 마리에 이른다. 따라서 그들의 복지에 무엇이 필요한지 더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 캐서린 히그넷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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