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독일 “미국도 러시아에 버금가는 위협국”

독일 “미국도 러시아에 버금가는 위협국”

최신 여론조사에서 위협 느끼는 비율 56%와 55%로 근소한 차 … 27%는 북한, 16%는 중국 우려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는 나토 분담금을 더 내라고 요구하고, 이란 핵협정에서 탈퇴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다. / 사진:AP-NEWSIS
대다수 독일인은 러시아를 가장 위협적으로 생각하지만 미국을 두려워하는 독일인도 그와 거의 비슷하게 많다. 하지만 북한을 위험으로 느끼는 독일인은 그 절반도 되지 않는다.

포르자 사회조사 통계분석 연구소가 잡지 인테르나치오날 폴리티크와 함께 실시한 여론조사(지난 1월 8일 타블로이드 신문 빌트에 실렸다)에서 응답자의 55%는 독일에 위협이 되는 나라가 미국이라고 생각했다. 러시아가 위협이라고 응답한 비율인 56%와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러시아와 미국은 오랫동안 유럽 전역에서 영향력 확대를 놓고 경쟁을 벌였고 그들 두 나라 사이의 긴장이 다시 고조되면서 독일이 대서양 양안 경쟁의 한가운데 놓이게 됐다.

한편 독일에 북한이 위협적이라고 응답한 독일인은 27%였다. 또 24%는 터키를, 23%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위협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갈수록 막강해지고 있는 중국을 두고 우려를 표명한 독일인은 16%에 불과했다.

나치 독일에 맞서 미국과 소련이 일시적인 동맹을 맺었던 제2차 세계대전 후 냉전이 시작되면서 독일은 동서 긴장의 최전선이었다. 독일의 수도였던 베를린은 서방과 소련 구역으로 양분됐다. 그 분단의 상징으로 악명 높았던 베를린 장벽은 1989년 소련의 사회주의 제국이 붕괴하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무너졌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소련 해체로 추락한 러시아의 국제적 지위를 되찾으려고 하면서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새로운 긴장이 조성됐다.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에 속했던 크림반도를 합병했다(그해 3월 우크라이나의 자치공화국이었던 크림반도가 러시아와의 합병안을 두고 주민투표를 실시해 90% 이상이 찬성함에 따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크림반도를 합병했지만 주민투표 자체가 무효라는 논란이 있다). 미국은 러시아의 그런 국제적 영향력 확장을 서방이 지배하는 세계질서에 중대한 위협이라고 판단한다. 그러면서 두 나라의 갈등은 2016년 미국 대통령선거 이래 더욱 심해졌다. 미국은 러시아가 그 선거에 개입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도록 여론을 조작했다고 비난한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선출되기 전까지 독일은 미국의 확고한 파트너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서방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분열시키는 견해를 피력했다. 재정적인 측면에서 미국의 나토 기여가 압도적으로 크다는 점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그는 독일과 다른 회원국들에 비용을 더 많이 부담할 것을 요구했고 그런 언행이 유럽 지도자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래서인지 독일의 최근 여론조사에서 30~44세 중 63%, 45~59세 중 58%가 미국이 러시아보다 더 큰 위협이라고 응답했다. 반면 60세 이상의 60%와 18~29세의 44%는 러시아를 더 심각한 위협으로 생각했다.
정치 측면에서 보수 노선의 집권 여당 기독민주당은 러시아를 더 두려워했다(59%). 미국을 최고 위협으로 지목한 비율은 45%였다. 한편 녹색당은 미국과 러시아를 똑같은 위협으로 판단했다(59% 대 59%). 중도 우파인 자유민주당은 66%가 러시아를 독일의 가장 큰 위협으로 봤고, 미국을 위협으로 지목한 비율은 59%였다. 중도 좌파인 사회민주당의 경우 63%는 미국을, 59%는 러시아를 가장 두려워했다. 한편 좌파당에선 82%가 미국의 위험을 경고했고, 러시아를 더 심각한 적으로 생각한 비율은 53%였다.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의 지지자들은 러시아보다 미국을 더 우려했다(57% 대 38%).

트럼프 대통령의 돌출 행동과 막말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미국 주도의 나토 체제 외부에서 범유럽군 창설을 촉구하고 나섰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해 11월 13일 유럽 독자군 창설을 주장한 마크롱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대립했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유럽의회에서 한 연설을 통해 “언젠가 실질적이고 진정한 유럽군을 창설하기 위해 비전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군은 유럽연합 국가 사이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세계에 보여줄 것이다.” 이 발언은 같은 달 11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식 전후로 마크롱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군 창설 문제 등으로 대립각을 세운 가운데 나왔다.

마크롱 대통령은 같은 달 6일 “우리는 중국, 러시아, 심지어 미국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면서 “우리가 진정한 유럽의 군대를 갖겠다고 결심하지 않는 한 유럽을 보호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종전 기념식 참석을 마치고 귀국한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유럽군 창설 주장에 대해 “아주 모욕적”이라며 강한 불쾌감을 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날에도 한 걸음 나아가 트위터를 통해 “마크롱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 러시아로부터 유럽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 창설을 제안했다. 하지만 제1, 2차 세계대전에서 (전범국은) 독일이었다. 그때 프랑스는 어떻게 됐나? 미국이 오기 전 파리에서는 독일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며 “나토에 분담금을 지불하든가, 말든가!”라고 지적했다.

독일과 프랑스, 영국은 이란 핵협정을 두고도 미국과 대립했다. 트럼프 정부는 이란이 해외에서 시아파 무슬림 무장단체들을 지원하고 탄도미사일 기술을 개발한다고 비난하며 독일·프랑스·영국만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에도 협정에서 탈퇴하고 이란에 제재를 다시 부과했다.

이전의 여러 여론조사도 트럼프 정부 아래서 미국에 대한 유럽의 신뢰가 떨어졌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지난해 퓨 리서치 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독일인과 프랑스인 중 트럼프 대통령을 신뢰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각각 10%와 9%에 불과했다. 한편 미국 정부가 지원하는 매체인 자유유럽방송의 조사에선 독일인의 35%와 프랑스인의 20%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신뢰한다고 응답했다.

- 톰 오코너 뉴스위크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설립 두 달 만에 네이버 ‘픽’…스탠퍼드 출신 창업자의 AI 비전은?

2차바이오텍, 신주 발행 등 748억원 수혈…“재생의료·CDMO 투자”

3알바생이 ‘급구’로 직접 뽑는 ‘착한가게’

4“삼성이 하면 역시 다르네”…진출 1년 만에 OLED 모니터 시장 제패

5 ‘여자친구 살해’ 20대 의대생 구속영장 발부

6‘네이버 색채’ 지우는 라인야후…이사진서 한국인 빼고 ‘기술 독립’ 선언

7NCT드림이 이끈 SM 1Q 실적…멀티 프로덕션 구축에 수익성은 악화

8삼성메디슨, 프랑스 AI 스타트업 ‘소니오’ 품는다…“우수 인력 확보”

9데일리펀딩, SaaS 내재화해 지속 성장 거버넌스 구축…흑자 전환 시동

실시간 뉴스

1설립 두 달 만에 네이버 ‘픽’…스탠퍼드 출신 창업자의 AI 비전은?

2차바이오텍, 신주 발행 등 748억원 수혈…“재생의료·CDMO 투자”

3알바생이 ‘급구’로 직접 뽑는 ‘착한가게’

4“삼성이 하면 역시 다르네”…진출 1년 만에 OLED 모니터 시장 제패

5 ‘여자친구 살해’ 20대 의대생 구속영장 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