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M&A 10년, 김승연의 ‘한 방’이 화학·방산 일궜다
[10대 그룹 10년 M&A 분석⑧] 한화그룹
대규모 인수와 비핵심 매각으로 주력 계열사 육성
장남은 태양광 주도, 차남은 금융‧디지털에 주력
기업의 M&A는 한국 산업의 변화를 나타내는 이정표다. 대전환의 시기였던 지난 10년 한국 경제를 이끄는 10대 그룹은 M&A를 통해 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체질개선에 나서며 숨 가쁘게 질주했다. 10대 그룹의 M&A를 보면 기업의 전략과 방향성이 보인다. 이코노미스트가 블룸버그 리그테이블 데이터를 분석해 한국 산업을 이끄는 10대그룹의 10년간 M&A를 해부했다. [편집자]
한화그룹의 최근 10년간(2011~2021년 4월 15일) 인수합병은 '빅딜'로 요약된다. 이 기간 인수 금액이 공개된 인수 건수는 15건에 불과하지만, 규모는 4조원에 육박한다. 상위 5개 회사에 대한 인수 금액이 10년 전체 인수 규모의 90%에 달할 정도로 빅딜 위주의 거래가 이뤄졌다. ‘통 큰 경영인'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경영 스타일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이코노미스트]가 블룸버그와 공동으로 국내 10대 그룹의 10년 치(2011~2021년 4월 15일) 인수합병 현황을 분석한 결과, 한화그룹은 최근 10년간 인수합병 등을 포함해 총 129건의 거래를 완료했다. 전체 거래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거래는 인수합병(67건)으로 전체의 52%다. 다음으로는 지분 투자가 60건으로 47%를 차지했으며, 조인트벤처는 10년간 2건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 기업 인수에만 2조4000억원 썼다
한화그룹의 최근 10년 인수합병 규모를 보면, 인수 규모로 상위 1~2위 기업 모두 국내 기업이었다. 한화그룹의 최근 10년 인수합병 가운데 인수 금액 규모가 가장 큰 것은 2014년 말 삼성그룹의 화학·방산 계열사 인수다. 인수 금액만 1조7400억원에 달해 이른바 ‘삼성·한화 빅딜’로 기록됐다. 인수 금액 상위 2위는 2016년 4월 인수한 두산그룹 방산회사 두산DST(현 한화디펜스)다. 이 회사 인수 금액은 6950억원으로, 한화그룹이 국내 화학·방산회사들을 사들이기 위해 투입한 금액은 무려 2조4350억원에 달한다. 이는 한화그룹의 최근 10년 인수 금액의 무려 62%에 달하는 수치다.
재계 등에선 한화그룹의 화학·방산회사 인수를 두고 김 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한다. 재계 관계자는 “김승연 회장의 결단이 없었다면, 국내 기업들의 대규모 인수합병은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배포가 크고 추진력이 남다른 김 회장의 스타일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인수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김 회장은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 생전에 친분이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회장은 지난해 10월 고 이건희 회장 빈소를 방문해 “가장 슬픈 날”이라며 고인에 대해 “친형님같이 모셨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김 회장과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은 경기고 선후배 사이다. 김 회장이 3년 선배로, 둘은 오랫동안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화그룹의 대규모 인수합병 등에는 김 회장의 경영 방향성이 고스란히 담겼다는 평가다. 한화그룹의 최근 10년간 인수 금액 상위 5개 회사 중 4개 회사는 김 회장이 주요 사업으로 강조해온 화학·방산·항공 등이다. 한화그룹은 지난 2016년 7월 프랑스 방산회사 탈레스가 보유하고 있던 삼성 방산 계열사 지분 전량을 2880억원에 사들였다. 2019년 6월에는 미국 항공엔진 부품회사인 이닥(EDAC)을 3574억원에 인수했다.
한편 최근 10년간 인수합병 중 금액 규모로 상위 5개 매각은 유통, 제약·바이오 등인 것으로 조사됐다. 매각 금액이 가장 큰 건은 한화갤러리아백화점 광교점으로, 한화그룹은 지난 3월에 광교점을 코람코자산신탁에 약 7000억원에 넘겼다. 2014년 8월에는 제약 자회사인 드림파마(1914억원)를 글로벌 제약회사인 알보젠에 매각했으며, 2015년 7월에는 충북 오송에 위치한 바이오공장(600억원)을 국내 바이오회사인 바이넥스에 팔았다. 그룹 사업을 화학·방산·항공 등으로 재편하면서 유통‧제약 등 비(非)핵심으로 판단되는 사업에선 과감히 철수한 것이다.
그룹 신성장 주도한 김동관
김 회장의 인수합병 스타일과 유사한 인물로는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이 거론된다. 지난해 한화그룹의 중추 계열사인 한화솔루션 사장에 오른 김 사장은 한화그룹의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꼽히는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인수합병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인수가 독일 태양광 회사 큐셀(현 한화큐셀) 인수다. 한화그룹은 지난 2012년 8월 큐셀을 3665억원에 사들였는데, 이 인수는 한화그룹의 최근 10년 인수 가운데 금액 기준으로 세 번째로 큰 인수였다.
김 사장은 한화그룹이 올해 초 1090억원에 인수한 국내 유일 민간 인공위성 제조사인 쎄트렉아이 인수에도 깊게 관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쎄트렉아이 무보수 등기임원으로 재직 중인 김 사장은 한화그룹 내 우주 사업 전반을 지휘하는 ‘스페이스 허브’의 팀장도 맡고 있다.
차남인 김동원 한화생명 전무는 금융‧디지털 분야 등에 주력하면서 지분 투자를 통한 신성장 발굴 등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투자증권이 지난 2월 국내 가상화폐거래소 운영사인 두나무에 583억원에 투자한 것이 김 전무의 작품이란 이야기도 있다.
한화그룹의 10년 인수합병이 빅딜로 요약되는 만큼, 미래 인수합병에 대한 관심도 높다. 실탄은 충분한 편이다. 지난해 말 기준 한화그룹의 현금 보유액(현금 및 현금성 자산+단기금융상품)은 24조857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창훈 기자 lee.cha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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