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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 제판분리 시대①] '살아남자'…생존 위한 '분리' 시작됐다

보험사, 상품만 개발하고 판매는 전문회사에 맡겨
코로나19로 영업환경 변화 가속화…훌쩍 큰 GA·빅테크에 위협 느껴

 
 
[사진 연합뉴스]
최근 보험업계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단연 '제판분리'(상품 제조와 판매 분리)다. 보험사들은 저금리 기조에 투자수익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영업조직 운영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또한 보험대리점(GA)의 급성장, 보험설계사 고용보험 도입, 빅테크사들의 보험업 진출 등으로 보험사들의 '생존을 위한 변화' 역시 필요한 상황. 이러한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판분리'가 부각되고 있다.
 
보험업계에서는 이미 2000년대 초부터 제판분리가 진행돼왔다. 방카슈랑스(은행에서 보험판매)나 대리점·중개사를 통한 보험판매는 사실상 제판분리가 된 영업형태다. 하지만 당시의 제판분리가 보험사들의 수익 극대화를 위한 판매채널 확장 측면이라면 최근에는 변화하는 업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을 위한 제판분리'가 진행되는 추세다.   
 

제판분리 핵심은 '자회사형 GA 설립'

보험사들은 직접 판매자회사를 설립하거나 모집조직을 분사하는 등의 방법으로 제판분리를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자회사형 GA 설립은 보험사들의 제판분리 주된 전략으로 활용된다.
 
그동안 보험사들은 직접 상품을 개발한 후 전속설계사 조직을 통해 판매를 진행해왔다. 전속설계사들이 자사의 상품만을 고객에게 판매하는 식이다. 하지만 최근 GA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여러 보험사의 상품을 판매하는 GA설계사가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보험사 전속설계사 수는 약 19만명, GA설계사 수는 약 23만명이다.
 
자사 설계사들이 여러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이점 때문에 GA로 대거 이직하자 보험사들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아예 자회사형 GA를 설립해 설계사 유출에 대비했다. 삼성생명, 신한라이프, 삼성화재, 현대해상, DB손보 등 주요 생명·손해보험사들은 몇 년전부터 GA를 설립해 영업 중이다.  
 
[자료 각사]
 
특히 미래에셋생명(올 3월)과 한화생명(올 4월)처럼 아예 모집조직을 분사한 '완전한 제판분리' 형태의 GA도 등장했다. 미래에셋생명은 보험사 중에서는 처음으로 전속 설계사 3300명 전체 인원을 자회사로 재배치하며 미래에셋금융서비스를 출범시켰다. 신임 대표에는 10년 이상 미래에셋생명을 이끈 하만덕 부회장이 선임됐다. 
 
한화생명도 1만9000여명의 설계사로 구성된 초대형 판매전문회사를 세은 후, 업계 30년 '영업 베테랑' 구도교 대표를 선임했다. 무게감이 남다른 보험전문가들을 대표에 내세운 것은 양사가 자회사형 GA 성장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위에서부터) 하만덕 미래에셋금융서비스 대표, 구도교 한화생명금융서비스 대표.[사진 각사]
 
하나손보의 하나금융파트너는 연내 출범을 목표로 인재 채용에 한창이다. 기존 하나손보의 설계사 인력을 하나금융파트너 측으로 이동시킬지의 여부에 따라 미래에셋생명, 한화생명과 같은 '완전한 제판분리형' GA가 될 수도 있다. 
 
다른 보험사들의 자회사형 GA 출범 검토도 잇따르고 있다. 대형 손보사 중 하나인 KB손보도 자회사형 GA 설립을 검토 중이다. 삼성생명은 산하 연구소인 인생금융연구소를 통해 디지털GA 설립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업계에서는 라이나생명의 모기업인 시그나그룹의 국내 디지털손보사 설립 추진을 두고, 사실상 판매채널 확대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보험판매, '전략 수정' 불가피했다 

보험사들이 이처럼 자회사형 GA를 통해 제판분리에 나서는 이유는 보험 업황이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5년 사이 생명보험산업의 연평균 성장률은 0%대에 머물렀다. 생보사 주력상품인 개인보험은 2016년 이후 역성장 중이다. 생보사 관계자는 "생보사의 주력 상품은 결국 사람과 연계된 개인보험상품"이라며 "경제가 어려워지며 개인을 보장해주는 생명보험에 대한 관심이 식은 것이 업계 역성장의 이유"라고 설명했다.  
 
[자료 보험연구원]
 
보험을 찾는 사람이 줄어든 것과 함께 저성장·저금리 환경과 시장경쟁 심화로 보험사 수익성도 꾸준히 하락세다. 네이버나 카카오 등 빅테크사들의 보험업 진출도 보험사를 위협한다. 결국 영업조직 효율화를 통한 비용절감, 그리고 판매전략 수정은 필수가 됐다는 얘기다. 
 
보험사들이 자회사형 GA채널을 둘 경우 타 GA로의 이탈을 줄일 수 있고 여러 보험사 상품 판매로 설계사 생산성 향상도 도모할 수 있다. 특히 조직을 직접 운영하지 않는 데 따른 고정비용 감소는 영업조직 효율화의 핵심이다. 또 최근 보험시장 주도권이 공급자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는 만큼, 여러 상품을 제공할 수 있는 GA채널 운영은 보험사 입장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수밖에 없다.
 
김동겸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업권 내 경쟁이 심화될수록 판매채널에 자사의 핵심역량을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고 자회사형 GA가 그 방법이었을 것"이라며 "전속설계사의 반복적인 이탈로 기존 영업조직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에서 판매자회사 설립은 영업통제권을 확보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외 보험선진국들은 이미 제판분리가 활성화된 상황이다. 미국은 1990년대부터 불완전판매가 급증하고 영업조직 운영에 대한 비효율성 문제가 대두되자 자연스레 독립채널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2019년 기준, 미국의 생명보험 채널 구성 비중은 전속채널이 36%에 머무른 반면, 독립채널은 53%를 차지했다.
 
영국 역시 80년대 후반부터 불완전판매 문제가 커지자 당국이 직접 나서 소매판매채널 개선방안을 내놨고 이후 보험사 독립채널과 전속채널이 양분화됐다. 특히 1988년, 독립자문업자(IFA)제도가 도입되며 독립채널이 크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2016년, 보험업법을 개정하자 보험사들의 영업채널 운영 부담이 커졌다. 결국 대형사들이 보험대리점을 인수 또는 설립하기 시작해 제판분리가 가속화됐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시장에서 제판분리는 더이상 피할 수 없는 세계적인 추세"라며 "다만 늘어나는 자사형 GA와 기존 대형 GA간 경쟁이 과도해 질 경우 무리한 판매 경쟁이 생길 수 있고 되레 마케팅 비용 증가 등 영업 효율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훈 기자 kim.junghoo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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