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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에서 '소통'으로…선명성 더하는 정은보號 금융감독원

정은보 원장, 하나은행 제재심 결론 전 "입장 충분히 청취"
취임 이후 '금융사와 소통' 강조… 규제+당근책 동시 제안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이 11월 23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 호텔에서 열린 증권회사 CEO 간담회에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금융감독원은 지금까지 금융사의 자율적 개선이 아닌 적대적 징벌에만 초점을 맞춰 움직였다. 제재 건에서는 피감기관인 금융사와의 소통을 생략하는 경우가 더러 있어 의견 교환조차 쉽지 않을 때가 많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윤석헌 전 금감원장 당시 금감원의 관리감독 기조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하지만 지난 8월 금감원장이 정은보 현 원장으로 바뀐 후 관리감독 기조에 변화를 느낀다는 것이 최근 금융권의 시각이다. 각 업계와의 간담회를 통해 관리감독에 대한 예측 가능성은 물론 규제 완화 등의 당근책도 함께 제시하는 행보도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연장선에서 지난 2일 금감원은 하나은행 관련 제재심에서 결론을 내지 않고 "은행 측 설명을 충분히 청취했다"고 밝혔다. 윤 전 원장이 이 펀드 판매와 관련해 은행의 '사기성'이 의심된다는 정치권 비판에 동의하는 모습을 보인 것과도 사뭇 차이를 보인다.
 

금감원 "은행 측과 검사관 진술 충분히 청취"

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 2일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이탈리아헬스케어 펀드 환매 중단 사태와 관련해 하나은행에 대한 종합검사 결과 조치 안을 상정·심의했으나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제재심은 하나은행 측 관계자들과 검사국의 진술·설명을 충분히 청취하면서 제반 사실관계와 입증자료를 면밀히 살폈다"면서도 "이날 심의를 마무리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 다시 회의를 속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번 제재 안건으로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와 '기관 및 임직원의 불완전판매 행위'가 올랐다.  
 
하나은행은 2017∼2019년 이탈리아 병원이 지방정부에 청구하는 진료비 매출채권에 투자하는 상품이라며 투자자를 모아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를 판매했다. 피해자 측에 따르면 2019년 말부터 상환이 연기되거나 조기상환이 거부돼 현재까지 파악된 피해액이 11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감독 본분은 규제 아닌 지원" 정 원장 의중 담겨

이번 제재심이 업계의 주목을 받은 것은 정 금감원장이 취임한 후 처음 다뤄진 은행 사모펀드 판매 관련 제재심이었기 때문이다. 앞서 금감원은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만 아니라 라임펀드, 독일해리티지펀드, 디스커버리펀드를 묶어 이번 제재 수위를 논의했다. 금감원은 하나은행이 펀드 판매 과정에서 불완전판매를 한 잘못이 있다고 보고 2019년 12월 하나은행에 기관경고, 지성규 하나은행 부회장(전 은행장)에 문책경고를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윤 전 원장은 지난해 10월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하나은행이 판매했던 이탈리아 헬스케어펀드에서 짙은 사기성이 감지된다는 배진교 정의당 의원의 지적에 "여러 정황상 그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금감원의 강경한 태도로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도 제재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정은보 금융감독원장(가운데)이 11월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시중 은행장과의 간담회에 앞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정 원장이 신임 원장에 오르며 취임사로 "금융감독 본분은 규제가 아닌 지원에 있다"고 밝히며 감독 체계 변화를 시사하기 시작했다. 이후 함 부회장이 이번 제재심 대상에서 빠진 것도 마찬가지 이유로 풀이됐다.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에서 논란이 일자 정 원장은 직접 "법과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내려진 금감원 중징계에 대해서도 지난 9월 법원이 손 회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과도한 감독은 맞지 않다'는 인식이 금감원 내부에서 힘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법원은 우리은행의 내부통제 부실은 인정하면서도 금융사 임직원을 제재할 만한 뚜렷한 근거를 찾기 어렵다며 금감원이 법리를 오해했다고 봤다. 다만 금감원은 이번 1심 판결에 불복, 항소했다.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점은 인정됐다는 게 항소 이유로 알려졌다. 
 
한 은행 관계자는 "지난 2~3년간 금감원이 사모펀드와 관련해 보인 태도를 보고 은행권에서는 '너무 하다'는 인식이 팽배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은행측 의견을 패싱하는 것으로 서로 간에 불신만 키웠다. 하나은행 제재심에 관심이 쏠린 것도 마찬가지 이유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용우 기자 lee.yongwo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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