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셈부르크 주유소, 유럽을 ‘습격’하다!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앞둔 시기, 유럽에는 두 번에 걸친 차량들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그 첫번째가 성탄절을 함께 보내기 위해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을 찾는 차량 이동이고, 연이어 연말과 새해 축제를 즐기기 위해 친구를 찾는 차량들의 행렬이 꼬리를 문다. 독신자들이나 가족이 없는 노년층들도 간단히 짐을 챙겨 훌쩍 여행길에 오르는 시기도 이맘때다. 이래저래 고속도로가 붐비기 시작한다. 프랑스와 룩셈부르크 국경지역의 E 25번 고속도로는 일년내내 차량 정체가 지독한 곳으로 유명하다. 여름 휴가철이나 연말 연시면 정도가 더욱 심하다. 꼬리를 문 차량들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 어디론가 한두 대씩 빠져나간다. 그래도 누구하나 짜증내거나 투덜거리는 사람은 없다. 무언가 기다리는 모습이다. 유럽에서 소문난 룩셈부르크의 어느 주유소를 찾아가는 차량들이다. 네덜란드·벨기에와 함께 ‘베네룩스 3국’으로 불리는 룩셈부르크는 스위스와 함께 세계 최고의 국민소득(약 4만5천 달러)을 자랑하는 나라다. 스위스와 마찬가지로 몇 개의 외국어는 기본이다. 이런 나라의 사람들이 검약 정신으로 유명하다. 1995년 유럽의 대표적 철강회사인 룩셈부르크의 아베드(Arbed)사 회장이 수행원 없이 한국을 방문해 화제를 모았고, 작년 아시아·유럽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방한했던 룩셈부르크 융커 총리의 검약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유럽인들 중에는 룩셈부르크라 하면 유럽의 명물 ‘에 드 베르’란 주유소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긴 차량들은 바로 ‘에 드 베르’란 주유소를 찾아가는 행렬이다. 이 행렬에는 벨기에·프랑스·네덜란드·독일·영국에서 온 차들이 뒤섞여 있다. 이 주유소는 유럽에서 연간 매출액이 가장 높은 곳으로 유명하다(약 2천5백만 달러). ‘테마 주유소’로 불릴 정도로 재미나고 희안한 시설을 갖춘데다, 철저한 박리다매(薄利多賣)로 승부를 거는 곳이다. 하루 평균 6천대의 자동차가 이곳을 찾으며 약 30만ℓ의 휘발유가 팔려나간다. 유럽인들이 자주 쓰는 농담 중 “교회만 없다”라는 것이 있다. 웬만한 물건은 구할 수 있게 갖춰져 있다는 뜻이다. 과일과 채소·빵·음료수·술·담배·커피·CD·비디오·출판물과 서적·장신구와 시계에서부터 동물의 사료까지 없는 것이 없다. 셀프서비스로 운영되는 식당도 있고, 모텔도 있다. 식당과 모텔에는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과 멀티미디어 시설 등이 갖춰져 있다. 주유소가 멀티미디어와 정보통신산업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음을 은근히 자랑하기도 한다. 가격은 휘발유를 포함한 생필품과 각종 서비스 등은 인근 국가나 타주유소보다 평균 30%나 저렴하다. 룩셈베르크의 교통경찰들은 주유소를 찾는 차량 때문에 고속도로가 밀려 교통사고 방지에 신경을 곤두세우지만, 정체 상황을 오히려 적절히 이용하기도 한다. 서행하는 차량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마약이 합법화된 네덜란드로부터 마약을 밀수입하는 마약운반범을 단속하거나, 훌리건 등 극렬 축구팬들을 검문하는 등 차량 정체를 톡톡히 이용한다. 이제 2002년 1월1일부터 유럽연합 12개국들이 각자 사용하던 화폐들은 역사 속으로 묻히게 된다. 대신 유럽의 단일 통화인 유로화가 실제 생활에서 쓰이는 것이다. 유럽 내 모든 상품 가격이 유로화로 통일되어 표시되며, 소비자들도 단일 화폐인 유료화를 통해 각국의 상품 가격을 그 자리에서 바로 비교해 구매할 수 있게 된다. 유로화로 모든 가격이 통일되어 표시되다 보니 소숫점 이하 자리가 반올림되는 품목들이 있어, 가격상승을 우려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그러나 ‘에 드 베르’에서는 소수점 이하 가격을 아예 떨어 버리는 것마저 고려하고 있다. 그야말로 한계(limit)가 없는, 끝까지 밀어붙이는 ‘박리다매’ 전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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