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차라리 전경련회장 안 맡을걸...

차라리 전경련회장 안 맡을걸...

김대중 대통령(왼쪽)과 김우중
“차라리 전경련 회장직을 안 맡었더라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텐데.” ‘대우 몰락’ 이후 김우중 회장이 측근들에게 사석에서 후회막급해 하며 회고조로 내뱉은 말이다. 결과적으로 김우중 회장이 재계 수장격인 전경련 회장(98∼99)의 감투를 쓴 바람에 대우그룹이 망했다는 것이다. 대우그룹이 죽음으로 가는 길목엔 직·간접적인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대우그룹의 몰락을 복기해 보면 적어도 전경련 회장직이란 자리가 끝내 동티가 되었다는 게 김우중 회장 자신의 판단인 셈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묘수의 산실로 보여지던 김우중의 전경련 회장자리가 왜 자충수로 판명난 것일까. 여기엔 신흥 경제관료들의 보이지 않은 ‘판흔들기’가 작용했다는 것이 김우중 회장과 측근들의 풀이다.

정치 9단과의 독대해법 정치 9단과 경제 9단의 독대. 그리고 재벌 구조조정이라는 ‘IMF 엄명’을 받은 신흥관료간의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 김우중 회장이 전경련 회장직을 맡았던 짧은 기간에 일어난 숨가쁜 막후의 실체는 무엇인가. 엉킨 실타래를 푸는 길은 두가지다. 하나는 실이 끊기지 않게끔 조심스럽게 푸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단칼로 일거에 푸는 길이다. 승부사인 김우중 회장에겐 김대중 대통령을 직접 상대할 수 있는 전경련 회장직이 남의 눈을 피해 대우그룹 문제를 일거에 풀 수 있는 최선의 지름길로 판단했을 것이란 게 재계의 관측이다. 관료 벽을 뛰어넘어 청와대로 통하는 지름길을 택한 김우중 회장은 당시만 해도 ‘해피데이’를 연발했다. 전경련관계자의 증언. “당시 김회장의 전경련 일을 거들기 위해 전경련에 파견된 대우 사람들은 회장님이 요즘처럼 행복해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공사석에서 말하곤 했다.” 어떤 정권이든 새 정부 출범 직후에 힘이 가장 센 법이다. 그럴수록 재계는 납작 업드리기 마련이다. 그것이 오랜동안 되풀이돼온 정-재계간의 일반적 풍경이다.

대통령 낙점은 ‘혁명적인 재계사건’ 그런 분위기 속에서 대통령과의 독대는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간에 ‘특별대접’일 수밖에 없다. 재계 한 관계자는 “모르긴 해도 역대 정권 중 대통령과 재벌총수 간의 독대자리는 기간대비 김대중-김우중 회장이 가장 많았던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97년 12월 말. 김대중 대통령은 청와대로 5대그룹 총수를 불렀다. 당시 대통령은 부채비율 2백% 등을 골자로 하는 강도 높은 새정부의 재벌정책을 재계총수들에게 요구한 자리였다.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국제그룹의 양정모 회장은 대통령 초청자리에 폭설로 인해 지각한 죄로 그룹이 붕괴됐다고 지금껏 믿고 있지 않나. 이런 자리임에도 불구, 당시 해외출장중이던 김우중 회장은 불참했고 해를 넘겨 김대중 대통령과 따로 독대할 정도였다. 그만큼 김대중 대통령의 배려는 눈에 띄었다. 김우중 회장도 어딘지 믿는 구석이 있어 보였다. 하긴 김우중 회장은 “왜 야당이라고 유력한 후보인 김대중 대통령후보자에겐 정치자금을 안 주느냐”고 재계의 공개석상에서 말할 정도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김우중 회장은 자신을 잠시 ‘해피’하게 만든 전경련 회장자리에 어떻게 앉았을까. 최규선의 2차 육성녹취록에 따르면 김우중 회장을 전경련 회장으로 낙점해 앉힌 사람은 김대중 대통령이다. 그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이것은 가히 ‘재계혁명’에 속한다. 그간의 오랜 정-재계 관행으로 미루어 보면 재계 수장자리는 본인이 원한다고 해서 맡는 자리도 아니고 본인이 원치 않는다고 해서 마냥 ‘노’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다. 더구나 대통령이 지명해서 시킨다고 덜썩 앉은 ‘임명자리’는 더욱 아니다. 사실상 대통령이 비토를 할 수는 있어도 그것이 말처럼 쉽지도 않다. 고 정주영 회장은 한때 청와대가 ‘노’했음에도 불구 ‘무슨 소리냐’며 재계의 추대를 그대로 밀어붙였을 정도였다. 그때 정권보다 김대중 정부의 힘이 더 센 것인가. 아니면 비토 안 한 김대중 대통령의 생색내기인가. 당시를 보자. 고 최종현 회장은 차기 후임 회장후보로 세명을 올렸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그리고 김우중 회장이었다. 이 중에서 김회장이 낙점됐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로부터의 사전 내락 여부가 있었는지의 여부는 확인할 길은 없지만, 당시 정황으로 미루어 김우중 회장은 청와대 내정상태에서 재계의 형식절차를 거쳐 결정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재계 관측이다. 한마디로 金心을 읽은 결정인 셈이다. 이렇게 김대중 대통령이 사실상 낙점한 전경련자리가 김우중 회장에게 거꾸로 ‘동티’로 작용할 줄은 김우중 회장 자신도 그땐 꿈에도 몰랐다. 정치 9단인 김대중 대통령 정도면 이를 내다봤을까.

“ 이것이 어느 그룹 얘기요.” 김우중 회장이 머리를 짜내 만든 각종 재계 건의안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정작 실무관료들의 책상 앞에선 번번히 제동이 걸렸다. 특히 천하의 김우중도 야무지기로 소문난 강봉균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의 벽을 쉽게 넘진 못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전경련에서 만든 수출관련 대정부건의안을 만들어 청와대로 가져가면 이게 어느 그룹 얘기요.” 강봉균 수석은 매번 이런 식이었다. 급하면 격해지는 법인가-. 시간과의 싸움에 들어간 김우중 회장의 ‘관리 비난’도 어느새 도를 넘어섰다. 98년 4월. 서울역 뒤 힐튼호텔의 김우중 회장 집무실에서의 일이다. 김우중 회장을 만나러 힐튼호텔을 찾은 강봉균 당시 경제수석은 김회장으로부터 정부의 수출금융 지원 요청을 받자 “세상이 바뀌어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겠느냐”며 김회장의 제안을 일축했다. 이미 무역흑자 예측과정에서 감정이 상해있던 터. 그러자 대뜸 김회장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어이- 강수석. 당신이 뭐하러 그 자리에 앉아 있나. 당신이 비키면 다른 사람이라도 와서 일이나 하지.”

“어이-강수석 뭐하러 그 자리있나.” 강봉균 수석은 김우중 전경련 회장직 수행방식에 대해 내심 못마땅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도대체 대우그룹을 위해 일하는 것인지 재계 전체를 위해서 일하는 것인지 구분이 애매하다며 공개적으로 불만을 터뜨린 적이 적지 않았습니다.” 재계 관계자의 술회다. 강수석은 당시에 김회장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에 대해 의구심을 보였다. 김회장이 수출을 핑계삼아 회사채 발행한도를 늘려고 구조조정을 안 하고 미적댄다고 판단한 것 같다. 무역흑자 5백억 달러를 둘러싸고 촉발된 김우중 회장과 경제각료들과의 마찰은 멈추지 않았다. 이미 각료 불신의 골이 깊을 대로 깊던 김우중 회장의 비난 목소리엔 브레이크가 사라졌다. 심지어 대통령과의 회동자리에서 주무장관이나 정책 고위실무관리가 보고하면 김회장은 대뜸 “거짓말하지 말라”고 소리치는 일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김회장에게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고 칭찬을 하면 뭐하나. 해결될 줄 알고 좋아라 청와대를 나온 김우중 회장은 갈등을 빚는 경제 실무관료들의 ‘딴청’에 부딪혀 원점에서 맴돌기 일쑤였다. 대통령은 도와주라고 하고 정책관료나 실무고위관리들은 등을 돌리고…. 한국경제신문과 월간 「신동아」에서 일부 밝혀진 내용 중 한 장면은 극단적인 케이스다. 기사의 내용 중 김대통령과 김우중 회장이 나눈 대화내용을 요약하면-. 98년 12월16일. 베트남 하노이 대우호텔 스위트룸-. 김대중 대통령과 부인 이휘호 여사. 김우중 전경련 회장과 부인 정희자 대우개발 회장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 곳 호텔에 머문 대통령 부부를 김우중 회장 부부가 찾아가 대우 자금지원을 직접 호소하는 자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김우중 부부의 자금 지원요청에 김대통령은 구조조정에 좀더 힘써 달라며 강봉균 수석에게 이야기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강봉균 수석이 틀어 즉각적인 자금지원이 이루어지지 않다가 워크아웃 다 가서 자금지원이 이루어졌으나, 그땐 이미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인다면 어쨌든 대통령의 이때 약속은 타이밍만 다를 뿐 이루어진 셈이다. 그러나 돈도 제때에 공급되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음을 구멍가게 주인도 다 아는 상식 아닌가. 이처럼 김회장의 대통령 독대는 건의-실무각료팀의 검토-뒤늦은 실행 내지는 기술적인 보이코트의 과정을 거쳤을 공산이 크다. 여기에서 정치 9단인 대통령의 수사학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현실적으로 따지기 힘들다. 또 대통령이 강봉균 수석 등 경제각료들에게 어떻게 지시했는지 여부도 확인하기도 어렵다. 여기엔 일체의 문서도 기록도 거의 없다. 다만 모든 것이 구두지시에 의해 이루어졌을 뿐이다. 강봉균 당시 경제수석(현 한국개발원 원장)은 “대통령이 김회장의 건의를 검토하라고 해서 김회장으로부터 자료를 받아 비서진을 시켜 검토했다. 그 중 가능한 것은 별로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검토하는 데 몇 달 걸렸다”고 말했다. 강봉균 당시수석은 “김우중 회장에 대해선 어떤 선입견이나 편견은 없었다. 대우 문제나 김우중 회장 문제에 대해선 그때그때 현안에 맞춰 처리했을 뿐이다”고 말했다.

신흥관료와의 갈등 후회 김우중 회장은 뒤늦게 경제각료들과의 갈등을 못내 후회했다는 후문이다. “왜 그땐 그랬는지 몰라, 강수석에게 호통치지 말고 밥이나 한번 먹고 보낼 것을…”이라며 “결국 내가 전경련 회장을 맡은 게 후회스럽다”며 때늦은 후회를 한다는 것이 김회장 측근의 전언이다. 자의든 타의든 전경련 회장을 맡았던 김우중 회장이 재계 수장자리에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일까. “글쎄요. 김우중 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맡아 대통령 독대를 자주 가진 것은 득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우그룹 몰락의 전체과정에서 보면 김우중 회장의 전경련 회장직 수행은 그 비중이 10%쯤 차지하지 않을까 봅니다.” 재계의 관전평이다. 굳이 전경련 회장자리만 놓고 보면 김우중 회장이 얻은 것은 대통령 독대요. 잃은 것은 자신과 평소 철학이 달랐던 신흥경제각료들 아닐까. 특효약인 줄 알았던 대통령과의 독대가 결국 독약이 된 셈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결혼·출산율 하락 막자”…지자체·종교계도 청춘남녀 주선 자처

2“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진정성 있는 소통에 나설 것”

350조 회사 몰락 ‘마진콜’ 사태 한국계 투자가 빌 황, 징역 21년 구형

4노르웨이 어선 그물에 낚인 '대어'가…‘7800t 美 핵잠수함’

5'트럼프의 입' 백악관 입성하는 20대 女 대변인

6주유소 기름값 5주 연속 상승…“다음주까지 오른다“

7트럼프에 뿔난 美 전기차·배터리업계…“전기차 보조금 폐지 반대”

8"백신 맞고 자폐증" 美 보건장관의 돌팔이 발언들?

9‘APEC CEO’ 서밋 의장된 최태원 회장…‘b·b·b’ 엄치척 의미는

실시간 뉴스

1“결혼·출산율 하락 막자”…지자체·종교계도 청춘남녀 주선 자처

2“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진정성 있는 소통에 나설 것”

350조 회사 몰락 ‘마진콜’ 사태 한국계 투자가 빌 황, 징역 21년 구형

4노르웨이 어선 그물에 낚인 '대어'가…‘7800t 美 핵잠수함’

5'트럼프의 입' 백악관 입성하는 20대 女 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