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 5년째 '구조조정중'… 군살 빼면서 덩치도 키우고
금호 5년째 '구조조정중'… 군살 빼면서 덩치도 키우고
현대 다음으로 위험한 그룹? 사실 지난해 하반기 금호그룹은 유동성 부족에 허덕였고 시장에서는 ‘위기설’까지 나돌았다. 당시 현대그룹 문제가 크게 불거진 상황이어서 금호그룹 사정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금감원과 청와대 경제수석실 등에서는 10대 그룹 가운데 현대 다음으로 금호가 위태롭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이기호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정건용 산업은행 총재를 만나 금호그룹에 신경을 써달라는 주문을 했다는 루머도 그럴싸하게 퍼졌다. 심지어 호남 기업은 호남 정권이 끝나기 전에 구조조정을 제대로 마쳐야 다음 정권에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란 악담까지 떠돌았다. 특히 경기 침체와 9·11 테러 탓에 아시아나항공은 심상치 않은 상태였다. 그 무렵 4천억원 규모의 CP 때문에 허덕이고 있었다. CP는 만기가 짦은 건 며칠짜리도 있었다. 또 길어봤자 한두달짜리여서 거래 은행들이 마땅한 대책도 못세우고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자산담보부증권(ABS) 덕을 봤다. 금호측은 그룹의 주포인 금호산업·아시아나 등이 나서 6천억원 규모의 ABS를 발행, 미리 손을 써서 급한 불을 껐다. 또 불행 중 다행인지 테러 사태 뒤 항공업체를 지원할 분위기도 조성돼 정부로부터 1천1백50억원의 지원금도 받았다. 다만 이런 속사정을 반영하듯 지난해 금호그룹 전체 성적표는 좋지 않았다. 금호산업(1천40억원)·금호석유화학(21억원) 등이 이익을 냈는데도 주력인 아시아나항공이 1천1백80억원의 적자를 내는 바람에 그룹 전체로는 11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사정이 이렇게 급하게 돌아가자 금호측은 구조조정을 더욱 서둘렀다. 금호측은 이미 금호석유화학 카본블랙 사업 부문, 금호산업의 중국 천진 공장, 서울 회현동 아시아나빌딩 등을 내다판 상태였다. 또 올 들어서는 지난 4월 아시아나항공서비스 매각 MOU를 맺었고, 5월에는 인천공항 외항사 터미널을 팔았다.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금호그룹 구조조정의 가장 큰 현안은 타이어 사업부 매각건이다. 지난 2월 칼라일·JP모건 컨소시엄과 매각 양해각서(MOU)를 맺은 금호는 타이어 사업부 매각으로 구조조정의 피날레를 기록하면서 지금껏 시달려온 유동성 위기에서도 벗어난다는 계획이다. 매각 대금은 10억∼15억 달러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삼구 체제로 구조조정 빨라질 전망 특히 박정구 회장 타계로 공석이 된 그룹 회장에 박삼구 부회장이 오르면 구조조정 작업이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박삼구 부회장은 지난해 2월 고(故) 박회장이 폐암 치료를 받으러 미국으로 떠난 뒤 17개월여 동안 그룹의 경영을 맡아왔기 때문이다. 박부회장은 올 초 그룹 인사에서도 신훈 금호산업 건설사업부 사장·박찬법 아시아나항공 사장·이원태 금호산업 고속사업부 사장 등을 계열사 경영진에 대거 발탁해 후계작업도 마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박부회장은 지난 6월 “오는 9월까지 타이어·아시아나공항서비스·공항터미널·케이터링서비스 등을 팔아 구조조정을 마무리 짓겠다고 밝혔다. 박부회장이 밝힌 대로 구조조정이 이뤄지면 그룹의 부채비율은 2백% 밑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97년 말 부채 비율이 1천19%에 이르렀던 점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인 셈이다. 게다가 구조조정을 잘 하는지를 지켜보고 있는 시장에 긍정적인 사인을 줄 전망이다. 다만 지난해 가을 고비를 넘긴 뒤 구조조정 작업이 더뎌졌다는 관측도 있다. 금호의 주채권 은행인 외환은행보다 많은 채권을 갖고 있는 산업은행의 금호 담당자는 “단기 유동성 위기가 재현될 가능성은 작지만 구조조정을 확실히 하지 않으면 시장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고 밝혔다. 양시형 대신경제연구소 애널리스트도 “금호측의 구조조정 의지는 분명해 보이고, 가격이 문제지 팔리긴 할 것”이라면서도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경우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금호측은 펄쩍 뛰는 분위기다. 금호그룹 관계자는 “일정에 쫓겨 헐값에 넘길 수는 없는 일 아니냐”며 “협상 파트너가 외국계가 대부분인 만큼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올 3·4분기까지는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금호측이 그룹의 알짜 가운데 알짜인 타이어 사업부까지 팔려는 것은 당장 시장의 신뢰를 얻는 동시에 미래 성장 기반을 닦기 위해서다. 타이어 사업부 매각건의 경우 경영권을 갖고 나중에 되사는 조건도 거론되고 있지만, 일단 주포 하나를 포기하는 셈이 된다. 금호측은 대신 아시아나항공을 주력으로 삼을 계획이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단거리 노선이 많아 대한항공보다 수익 구조가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그룹 대권을 이어 받을 박삼구 부회장이 비행기 2대로 시작한 사업이기도 하다. 금호측이 이런 결정을 내린 또 다른 배경은 금호가 새 사업을 활발히 펼칠 만큼 힘을 비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젠 ‘중환자실’에서 나온 것만은 분명하지만 구조조정을 매듭짓기 못한 상황에서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 언제든 위기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새 수종 마땅찮아 고민도 금호로선 미래 새 수종이 마땅찮은 것도 고민거리다. 금호측은 그 동안 유통·생명공학·신소재 등의 분야를 꾸준히 지켜봐 왔다. 또 박삼구 부회장이 금호고속과 렌탈 등을 통해 레저업 강화 계획을 밝혀온 만큼 종합 레저업 진출도 점쳐지고 있다. 다만 이 가운데 어느 것도 아직 결정되진 않은 상태다. 다만 금호그룹은 구조조정 뒤 한단계 도약한 경험이 갖고 있다. 1960∼70년대 공격적인 경영을 펼쳤던 금호그룹은 80년대 들어 계열사들이 심한 후유증을 앓았다. 계열사가 하나둘 ‘부실병’에 걸린 것. 그러자 금호측은 누적 적자에 허덕이던 금호산업을 금호실업에 합병시키고, 전자 부문을 매각하는 수술을 감행했다. 또 83년에는 금호실업의 종합상사 타이틀을 자진 반납하기도 했다. 특히 박성용 명예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한 뒤 17개 계열사를 4개사로 줄이기도 했다. 금호그룹은 이런 구조조정 덕에 88년 2월 제2 민항 사업면허를 따내 아시아나항공을 출범시킴으로써 국제적인 기업으로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금호그룹은 그러나 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유동성 문제에 봉착했고, 지금껏 다시 ‘구조조정 중’이다. 다만 80년대 말과 다른 점은 다음 타깃을 명확하게 정하지 못했다는 것. 그러나 역사는 되풀이될 수 있다. 금호그룹의 또 다른 ‘아시아나 신화’가 이뤄질지 지켜볼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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