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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事大主義'에 메스 댄 ‘포청천’

'금융事大主義'에 메스 댄 ‘포청천’

김재찬 국장
지난 5월10일 국내 주식시장에선 이른바 ‘삼성전자 보고서 파문’이 크게 일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삼성전자 주식을 대거 내다 판 뒤 하루만에 UBS워버그증권 서울 지점이 삼성전자의 투자 의견을 강등한 보고서를 낸 것. 시장에선 당연히 ‘짜고 친 고스톱’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고, 파장이 커지자 금융감독원은 자기 매매와 내부정보 관리 절차를 지켰는지 등을 밝혀내기 위해 검사에 들어갔다. 금융감독원은 당시 불공정 거래가 적발될 경우 국내 증권사와 똑같이 ‘철퇴’를 가한다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국내 증권업계에선 ‘과연 그럴까’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분위기였다. 그동안 외국계 증권사는 감독당국의 규제에서 한발 벗어난 사각지대에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잡듯 조사를 해야 진상을 밝혀낼텐데 정부가 외국계 증권사를 대상으로 그런 모험(?)을 감행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사뭇 달랐다. 금융감독원의 검사가 시작된 지 3달여만인 지난 8월13일 UBS워버그증권과 메릴린치증권은 특정 종목의 보고서를 사전에 유출한 혐의 등으로 중징계를 받았다. UBS워버그증권은 문책 기관경고와 더불어 임직원 15명이 정직 등의 징계를, 메릴린치증권은 주의적 기관경고와 함께 직원 6명이 제재를 받았다. 외국계 증권사에 첫 기관 조치가 내려지자 국내외에선 모두 놀라면서도 반응은 엇갈렸다. 국내 증권업계에서는 대체로 ‘성역 없는 검사’라며 반기는 모습이었다. 반면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AWSJ) 등의 외신은 “이번 조치로 기업 조사·분석업무 전반이 위축될 것”이라며 반발했다. 심지어 외국 증권사를 겨냥한 표적 검사며, 지나친 규제라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외국계 증권사와 3달여의 ‘숨박꼭질’을 어렵사리 끝내고 뒤늦은 여름 휴가를 다녀온 김재찬(51) 금융감독원 증권검사국장을 만나 검사 배경과 어려웠던 점 등을 들어봤다. -삼성전자의 요구에 떠밀려 검사를 시작했다든가 외국 증권사를 겨냥한 표적검사였다 등의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검사를) 의뢰한 것은 사실이지만 금융감독원 먼저 나섰다. 5월13일부터 20일까지 사전 검사를 했는데 삼성전자는 5월14일 검사를 요청했었다. 5월21일부터 본 검사에 들어갔다. 표적 검사라는 주장도 억측일 뿐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5월 증권사가 기관을 비롯 특정 고객에게 자료를 미리 제공했을 경우 일반에 공표할 때 그런 사실을 반드시 알리도록 명시하는 등의 내용으로 증권업 감독 규정을 개정했다. 새 제도가 뿌리를 내리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난해에는 내부통제기구 점검 등에 그쳤지만 올해부턴 본격적인 검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또 두 외국계 증권사의 위법 사실은 일상적인 ‘부문 검사’에서 적발한 것이다. 올해 국내 증권사도 이유는 조금 다르지만 영업점 폐쇄 등의 조치를 받았다.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가의 비중은 38%에 이르고, 이들의 영향력은 비중보다 훨씬 크다. 그런데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대부분 외국계 증권사 창구로 주식을 사고 판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계 증권사들이 국내법을 어기고 장사를 한다면 곤란하지 않겠나.” -국내 증권사와 외국계 증권사 검사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뭔가? “외국계 증권사 서울 지점은 홍콩 현지 법인의 서울 사무소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료를 받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뭘 하나 내놓으라고 하면 홍콩이나 본사에서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 이메일이나 전화 녹취 등의 자료를 변환하는 작업도 필요했다. 국내 기관 검사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숨기는 자료를 뒤지는 ‘숨박꼭질’을 꽤 했다." -지난 6월 리온 브리튼 UBS워버그 부회장이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원 등을 들러 삼성전자 보고서 파문에 대해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계 증권사측에서 사과뿐만 아니라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로비를 벌였다는 루머도 돌곤 했는데…. “로비나 압력이라기보단 그 쪽에서도 표현하고 싶은 게 있지 않았겠나. 나름대로 해명도 해야 하고. 다만 금감위원장 등은 사건이 마무리되기 전까진 별다른 말은 없었다. 실무진에서 소신껏 견해를 밝혔다. 검사 결과를 보면 잘 알 수 있지 않은가.” -UBS워버그·메릴린치증권에 대한 조치의 의미는 뭔가? “무엇보다 외국계 증권사에 기관 조치를 내리고 임직원에게 감봉 이상의 제재를 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외국계 증권사 가운데 시장점유율 1, 2위를 다투는 두 회사를 대상으로 증권사의 기업정보 사전 유출 관행에 손을 댄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UBS워버그·메릴린치증권 제재에 이어 23개 증권사에 대해서도 검사를 시작하면서 이른바 ‘워버그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혐의가 있건 없건 전체 애널리스트에게 전화(또는 통신) 감청과 이메일 검색 등에 대한 동의서를 받고 있어, 사생활과 통신의 비밀을 침해하고 있다는 논란을 빚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9월까지 모건스탠리·CSFB를 비롯 국내에서 영업중인 9개 외국계 증권사외 국내 증권사 등 모두 23개 증권사를 검사할 계획이다. 급여 계좌까지 뒤진다는 불만도 있지만 검사의 기본 자료다. 불공정 거래를 가리려는 검사 목적으로 애널리스트의 전화 감청과 이메일 검색을 하는 것은 사생활 침해가 아니라는 법무부 유권 해석을 받아 동의서를 받고 있다. 지나치다는 불만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UBS워버그·메릴린치증권 검사 때도 똑같이 진행했다." -주식시장에서는 금융감독원이 투신운용사 등의 펀드매니저에 대해서도 전면 기획 조사를 벌이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시장에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긴 하지만 사실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긴 한데…. “펀드매니저 문제는 검찰 등이 개인 비리 수사 차원에서 조사할 일이지 검사로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 문제가 섞여 있을 수는 있지만 펀드매니저만 따로 떼내 기획 조사를 하진 않을 걸로 알고 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 등과 연계된 펀드매니저의 불법 행위 여부도 조사한 사실이 없다. 증권검사국이 아닌 조사국 관할이기도 하고.” -국내 주식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외국계 증권사에 강도 높은 징계를 내려 국내 증권사에도 경계가 됐다는 평가다. 감독당국의 말이 제대로 먹히려면 일관성도 제고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국내 증시는 외국과 반대로 개인 70%, 기관 30%로 개인 투자자 비중이 무척 높다. 23개 증권사에 대한 현장 검사까지 끝나면 증시에 만연한 정보제공 불평등을 줄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시장의 오르내림에 관계 없이 규칙을 일관성 있게 적용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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