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 (2)] “머리로 생각하지 말고 발로 뛰어라”
[제2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 (2)] “머리로 생각하지 말고 발로 뛰어라”
돈 벌기 위해 기자 그만 두다 동아일보로 자리를 옮긴 그는 2001년 9월 안부차 정부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우연히 소규모 맥주 제조장 허가 계획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백사장은 ‘이거다’ 싶었다. 그가 맨 처음 한 일은 ‘팀워크 구성’이었다. 우선 핵심 관건인 ‘맥주 양조 기술자’ 확보는 이뤄진 셈이다. 당장 독일로 다이얼을 돌렸다. 뮌헨공대에서 맥주 양조공학 과정 마지막 학기에 매달려 있던 방이사는 2002년 4월이 졸업이었지만 학기가 끝나는 연말 께부터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다음은 기획 실무를 함께 할 총괄 매니저. 백사장은 CBS시절부터 친했던 후배 이원식 당시 CBS기자(현재 상무)에게 연락했고 둘은 의기투합했다. 팀워크의 줄기는 잡혔지만 최종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확인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었다. ‘경쟁구도’였다. OB나 하이트 같은 맥주회사에서 자금과 기술을 앞세워 하우스 맥주 시장을 ‘선점’한다면 승산이 거의 없었다. CJ푸드처럼 잠재 경쟁자도 문제였다. 그는 최종 결심을 하기에 앞서 ‘기자’ 특유의 인맥을 동원해 하우스 맥주 시장 잠재 진출 대기업들의 계획을 하나 하나 체크했다. 당분간 ‘계획 없음’을 확인한 백사장은 창업을 결심하고 12월 말 사표를 냈다. 뭐든 처음 시작할 때는 ‘샘플’을 보는 것이 최고다. 한국보다 앞서 지난 94년 4월부터 하우스맥주 사업이 시작된 일본은 모델로 제격이었다. 일본에는 현재 3백50여곳의 하우스 맥주집이 성업 중이다. 허가 직후 3년 만에 무려 1백개가 생겨났다. 최대 4백50곳까지 이르렀지만 이중 1백여곳은 망한 셈이다. 백사장과 이상무는 일본 소규모 맥주제조업체의 모임인 마이크로 브루어리 협회를 찾았다. 3시간에 걸쳐 인터뷰를 하고 자료를 협조 받았다. 도쿄 시내 2곳과 센다이 1곳을 면밀히 답사했다. 그 결과 성공 요인은 두 가지라고 결론 지었다. 첫째 입지조건, 둘째 맛. 다시 말하면 맥주 맛을 끊임없이 리노베이션 할 수 있는가 하는 기술력에 달려 있었다. 그래서 일본에서 성공한 업체들 중에는 지방 정종회사가 많았다. 기술과 자본이 있었기에 좋은 자리에 맥주집을 차리고, 오랜 양조기술을 바탕으로 맥주로 전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서울로 돌아온 백사장은 친구 사무실에 책상 2개, 전화기 1대를 빌려 놓고 사업계획서 작성에 들어갔다. 하지만 외부 투자자에 앞서 집안 어른들 설득부터가 문제였다. 그때까지 백사장은 부모님께 사업계획을 함구한 채 사표 낸 얘기조차 꺼내지 못한 상태였다. 집에서는 의료보험증이 직장에서 지역의료 보험으로 바뀐 것을 보고 사직을 눈치챘다. 3일간 말 없이 술만 드시던 부친이 백사장을 부른 건 그 즈음이었다. 포목점을 하셨던 부친은 두 가지를 당부했다. 사업은 직장생활 보다 3배 힘들다 “첫째, 사업은 직장 생활보다 3배 힘들다. 1백% 자기 자본이 아니면 번창해도, 잘 안 돼도 욕 먹게 돼 있다. 둘째 입지가 가장 중요하다. 무조건 좋은 자리를 확보해라.” 백사장의 불안은 세 가지였다. 첫째 ‘최초’라는 리스크였다.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만큼 전혀 검증이 안 된 사업이었다. 둘째 지금까지 기자로 펜대만 놀렸지 실무 경영 경험이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셋째 국내 시장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판단이 안 섰다. 하지만 최초이기에 더욱더 ‘위기는 기회’로 전환될 가능성도 높았다. 그 리스크를 기회로 전환하는 데 핵심은 ‘선점’ 이었다. 그래서 백사장은 ‘한국 최초의 하우스 맥주집’ 오픈을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1월 독일에 맥주 제조장비 발주를 냈다. 아직 정부의 공식 허가도 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던진 승부수였다. “맥주 제조장비는 대개 발주한 지 6∼7개월 정도는 돼야 설치까지 끝낼 수 있습니다. 제조하는 데 3개월, 운송해서 설치하는 데 3개월 정도가 걸리기 때문이죠. 당시 정부는 연초냐, 7월이냐를 놓고 허가시기를 저울질 하고 있었습니다. 허가방침이 철회될 가능성은 희박했죠. 그 상황에서 ‘최초’ 타이틀을 쥐려면 어느 정도 모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둘째 문제인 ‘무 경험’은 팀워크로 보완했다. 우선 맥주에 관한한 맥주양조공학 석사학위 보유자인 브라우 마이스터 방이사가 있었다. 기획과 실무는 경영학과 출신에 경제부 기자 경험을 갖고 있는 이원식 상무 담당이었다. 모두가 대학 선후배 사이인데다 오랫동안 봐 왔기에 팀워크는 증명된 사이였다. 안주와 요리는 맥주 못지않게 중요한 요인. 백사장은 ‘소시지’ 제조기술을 갖고 있는 사람을 주방장으로 영입해야 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모셔온’ 주방장이 베를린 국제요리 올림픽 등 각종 요리대회에서 수상 경력이 있는 신라호텔 12년 경력의 이종근씨. 이밖에 신라호텔에서 5명, 조선호텔에서 1명, 베니건스 캡틴 이상 2명을 영입했다. 맛과 서비스를 책임질 고급 인력을 엄선한 것이다. 그리고 백사장은 주주를 영입하고 사람 만나는 대외활동을 맡았다. 사업계획서를 부지런히 작성하고 자금조달에 나섰다. 이렇게 해서 끌어들인 주주는 총 57명, 자본금 20억원이었다. 주주들은 주로 고교·대학·직장 선후배들이었다. 평소 그를 보면서 신뢰를 갖고 있었던 지인들이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공통점은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란 점이었다. 셋째 문제점, 시장규모의 불확실성은 모든 신규사업의 숙명이었다. 없는 시장이 앞으로 얼마나 될 지 가늠하는 일은 아무리 잘 해봐야 ‘전망’일 뿐이다. 백사장은 색다른 맥주맛을 찾는 수입맥주 애호가들을 1차적인 하우스맥주 타깃으로 삼았다. 현재 국내 맥주시장에서 수입 맥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3%. 2001년 현재 수입 시장규모는 1백30∼1백40억원이며 매년 1백30∼1백60%씩 급성장 중이다. 하지만 현실은 논리가 아니다. 문제점을 짚고 하나하나 치밀하게 대응도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황야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어디서나 대접 받는 안정된 유력 언론사 기자라는 신분을 박차고 맥주집을 차렸으니 그가 피부로 느끼는 사회적 온도는 ‘급랭’이었다. 그 한파는 ‘경영 경험’이니 ‘시장 불확실성’이니 하는 고차원적인 게 아니었다. 당장 인허가 서류 창구에서부터 불어 닥쳤다. “허가를 받는데 필요한 서류가 몇 가지나 되는 줄 아십니까? 무려 60종 입니다. 재경부·국세청·세무서·건교부·환경부·담당 구청. 관련 부서는 또 얼마나 많은지….” 법인 설립은 어떻게 하는지부터 막막했다. 그는 번번히 서류를 ‘퇴짜’ 당했다. 무슨 고난도 실수라도 저지를 여지 조차 없었다. 서류 접수 창구 여직원의 손을 통과하기도 힘들었다. 기자 시절, 국장급 이상 간부가 아니면 잘 만나지도 않았던 그였다. 하지만 이제 가장 잘 보이고 싶은 상대는 창구 여직원이었다. 그는 큰 보호막이 걷힌 기분을 절감했다고 한다. 소방점검과 위생점검을 나온 공무원들 역시 굽실거리며 비위를 맞춰야 할 대상이다. 책상머리에서 이뤄지는 일은 없었다 회사 로고 동판을 하나 뜨는데도 청계천을 헤매고 다녔다. 시간과 노력, 발품을 팔지 않고 책상머리에서 이뤄지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세금의 종류가 그렇게 많은지도 처음 알았다. 환경세·교통유발부담금 등 상상도 못한 세금이 많기도 했다. 직원 관리도 쉽지 않았다. 퇴직금 정산·휴일 근무수당·시간외 수당·생리휴가 등 이 중에서도 노사 협상은 최대의 난제였다. 그래도 최대 관건은 ‘입지’였다. 백사장은 “입지가 70%”라고 강조한다. 부친의 조언에서도, 일본 견학에서도 공통적으로 내린 결론이기도 했다. 백사장은 매장 후보지를 부동산에 나온 임대물건 중 입지조건이 좋은 부도심 2곳으로 압축했다. 그리고 이상무와 함께 2곳의 유동인구 분석에 들어갔다. 후보매장 맞은편 카페에 하루종일 앉아 일일히 유동인구를 체크했다. 평일·토요일·일요일 등 각 시간대 별로 꺽쇠를 하나 하나 그려가며 오가는 사람들의 숫자를 헤아렸다. 이 가운데 몇 %나 올 수 있을까 시뮬레이션까지 했다. 그 결과 강남역 주변인 지금의 옥토훼스트 자리로 정한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접근이 쉽다. 둘째 인근에 주택가와 회사가 밀집해 있다. 셋째 수원·용인 등 수도권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의 하교길이다. 넷째 객단가 유지를 고려하면 구매력이 있는 강남이어야 했다. 2002년 7월12일. 옥토훼스트가 오픈했다. ‘최초’ 라는 목표달성에 일단 성공했다. 그리고 불과 한달 반만인 8월 말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벌써 매니어 층도 생겨났다. 저녁시간이면 언제나 대기자 좌석에는 길게 줄을 늘어선 모습이 연출된다. 비공개 기업이라 정확한 매출과 수익을 밝힐 수는 없지만 올 8월 주주들에게 첫 배당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3년 후에는 초기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현행법상 소규모 맥주제조회사에서 만든 맥주는 전량 매장 내에서 팔아야 한다. 하지만 2년쯤 후면 병입 생산해 외부 판매하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판단한다. 그 때쯤이면 권역별 생산체제를 갖추겠다는 야심도 갖고 있다. 백사장의 1단계 계획은 벤처기업 등록. 2단계는 기술특허를 받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5년 안에 코스닥 등록도 계획하고 있다. 올해는 직영과 체인점을 한 곳씩 추가로 오픈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체인점 희망자를 물색 중이다. 옥토훼스트의 성업이 알려지면서 요즘도 하루 평균 2∼3명씩은 견학을 온다. 백사장은 코스닥 등록에 성공하고 회사가 기반을 잡으면 회사 경영을 전문인에게 맡기고 노후를 꿈에 그리던 의료사업 실천으로 보낼 작정이다. 현재 진행 중인 아내의 피해보상이 마무리되면 그 돈에 회사 경영으로 번 돈을 얹어 의료사업을 시작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세워뒀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환자들이 재활의 기쁨을 맛 볼 수 있는 자연 속의 병원을 짓기 위해 벽돌을 한장 한장을 나르고 화단을 가꾸고 있겠죠” 그가 말하는 자신의 노후 모습이다. 백경학 사장 약력 1963년 生 82년 서울 영동고 졸 87년 연세대 사학과 졸 90년 CBS보도국 입사 2000년 동아일보 입사 2001년 이슬람 취재로 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수상 2001년∼現 마이크로 브루어리 코리아 대표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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