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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드리면 터진다” 화약고 MMF

“건드리면 터진다” 화약고 MMF

금융위기 때마다 뇌관 역활을 하는 MMF를 하루빨리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지난 98년 대우채 환매 때의 LG증권 환매 창구.
MMF(머니마켓펀드)가 금융시장의 화약고가 됐다. IMF 위기 이후 대우채 파동 때와 최근 SK글로벌과 카드채 사태 때 MMF는 투신권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고객들의 환매 러시로 투신사들은 급기야 환매 중지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줄 돈을 주지 않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투자자들의 원성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이렇듯 대규모 환매→편입 채권의 대량 매물화→금리 급등→환매 대란의 악순환 고리의 중심에는 늘 MMF가 자리잡고 있었다. 수수료 없이 언제든지 인출할 수 있다는 MMF의 특성 탓도 있지만, 그 배후에는 상품 구조의 근본적 문제와 잘못된 영업 관행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은 손실 나도 회사가 원금 보존 MMF는 투자대기성 자금이나 단기로 돈을 굴릴 때 투자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상품이다. 투자기간이 단기이니 만큼 안정성과 환금성이 가장 중요한 과제로 등장한다. 언제든지 고객의 환매 요구에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MMF는 운용의 안정성과 환금성 면에서 몇 가지 치명적인 단점을 갖고 있다. MMF는 잔존만기 1년 미만의 채권과 단기물인 기업어음(CP)과 양도성예금증서(CD), 그리고 하루짜리 운용대상인 콜 등에 투자한다. 1개월 이상의 투자기간이 필요한 클린MMF와 수시입출금이 가능한 신종MMF가 편입한 채권의 구성비를 살펴보면, 클린MMF의 6개월 이상 채권의 비중은 28.6%, 신종MMF는 23.5%를 차지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와 비교할 때 장기물들의 편입 비중이 높은 편이다. 단기로 운용하는 상품에 기간이 긴 채권들을 편입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손발이 맞지 않게 운용하고 있는 격이다. 미국의 경우 대부분 3개월 미만의 CP·CD·정부채권 등에 투자한다. 정부채권에 투자하더라도 만기가 임박한 채권 위주다. 우리나라처럼 잔존만기가 6개월 이상인 채권은 발견하기 어렵다. 회사채에 투자할 때는 신용등급 AA 이상의 우량 채권이 아니면 아예 편입을 하지 않는다. 편입 비중도 적다. 총자산의 5∼10%정도만 회사채에 투자할 따름이다. 이런 자산 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고객들이 환매 요구에 대응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약관상 신용등급 BBB-급까지 투자할 수 있다. 편입채권이 부실화되면 곧 바로 투자자들의 손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편입된 채권들이 만기가 길면 금리 급등기에 펀드 손실로 이어지게 된다. 대우채 사태 때는 정부가 95%를 보장했지만, 이번 SK글로벌과 카드채 사태 때는 직접적인 투자 손실로 이어졌다. 펀드에 편입할 때의 가격인 장부가격과 채권의 실제 유통가격인 시세와의 차이가 0.5% 이상 벌어지면 시가평가하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우재룡 한국펀드평가 대표는 “미국에서도 80년대 국채금리가 20%가 치솟는 등 위기상황이 발생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MMF가 잔존만기를 40일 이하로 축소하고 매우 우량한 채권에만 투자해 큰 탈이 난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미국의 투신사들은 MMF 내의 채권의 파산이나 금리상승으로 인한 대규모 시가평가 손실이 발생했을 때도 투신사들의 자신들의 돈(자본금)으로 고객들을 보호했다. MMF의 안정성을 훼손시켜 고객들의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서 이뤄진 일이었다. 지난 90년 스탠다드&푸어스(S&P)가 모기지 앤 리얼티 트러스트(Mortgage & Realty Trust Co.MRT)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리자 MRT의 기업어음 발행과 유통이 전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MRT의 기업어음을 MMF에 다량으로 보유하고 있던 티 로우 프라이스 투자신탁(T.Rowe Price)은 자기 돈으로 MRT채권을 전액 매수해 투자자들을 보호했다. 89년에는 인터그레이티드 리소스(Inter)사가 파산하자 이 기업의 기업어음을 가지고 있던 유니파이드 매니지먼트(Unified Management)사는 투자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이 기업의 기업어음으로 직접 매입했다. 2001년 캘리포니아 전력회사가 파산했을 때도 심각한 평가 손실을 입은 5개 투신사도 손실을 자기들이 직접 떠 안았다. 우리나라와는 천양지차다. 한 투신사 임원은 “투신업은 신뢰가 중요하다. MMF는 안전한 투자대상이라는 인식을 깨뜨리지 않기 위한 미국 투신사들의 노력을 배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수익률 제시하며 무리한 영업 투신사들의 영업관행도 문제다. 투신사들은 은행의 수시입출금식예금(MMDA)처럼 언제든지 투자자금을 찾을 수 있으면서 높은 수익률을 낸다는 점을 앞세워 MMF 영업에 치중해 왔다. 특히 올해 들어 주식시장 침체와 저금리로 주식형 펀드와 채권형 펀드의 판매가 어려워지자 MMF 영업에 매달렸던 것. SK글로벌 사태가 일어나기 직전인 지난 3월10일 현재 MMF수탁고 비중은 전체 수탁고의 32.16%였다. 지난해 연말 28.41%에서 지속적으로 늘어난 셈이다. 수탁고 규모도 올해 들어 MMF에만 12조5천2백53억원이 증가해 전체 수탁고 증가액 18조5천8백57억원의 67.39%를 차지했다. 3월17일 현재 MMF수탁고는 46조4천억원에 이른다. 심지어 일부 투신운용사들은 MMF수탁고가 전체 수탁고의 절반을 차지하는 기형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한 투신사 법인영업 담당자는 “MMF발 투신위기는 수탁고 증가 추세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며 “앞뒤 재지 않고 양(量)만 늘리겠다는 투신사 경영진의 잘못된 사고의 결과”라고 비판한다. MMF는 투자자가 환매를 요구하면 당일 돈을 내줘야 하기 때문에 MMF로의 수탁고 증가는 투신사의 유동성 위기로 번질 수밖에 없는 시한폭탄이었던 것이다. 한 투신사 관계자는 “투신사들이 손 쉽게 영업할 수 있는 MMF에만 집중하다가 환매 대란에 빠진 것”이라며 “투신사들의 자업자득인 셈”이라고 지적한다. 투신운용사들간의 치열한 수탁고 경쟁도 MMF 사태의 원인 중 하나다. 최근까지도 투신운용사들은 자금을 끌어오기 위해 무리하게 높은 수익률을 제시하면서 MMF 자금 유치에 혈안이 돼 온 것으로 알려졌다. 과도한 수익률을 제시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금리가 높은 채권을 편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카드채다. 운용은 고려하지 않고 고금리를 제시했기 때문에 금리가 높은 카드채를 무차별적으로 편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 한 펀드평가사 관계자는 “투신사들이 MMF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회사채와 장기채권을 과도하게 편입함으로써 유동성 위기에 노출돼 왔다”고 지적했다. 순서가 완전히 뒤바뀌었던 것이다. 한 증권사 법인영업 담당자는 “국고채 3년물이 4.8%까지 떨어진 최근에도 일부 투신운용사들은 5% 초반까지 제시하며 MMF를 팔아왔다”고 말했다. 하루만 맡겨놨다 돈을 찾을 수 있는 초단기 상품이 3년짜리 상품보다 금리가 높은 ‘이상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투신사들이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판 격이다.

16번이나 수술해 누더기 상품돼 MMF에 대한 리스크 관리의 헛점이 노출됨에 따라 전반적인 수술이 불가피 할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 MMF에 대해 금융감독 당국이 여러 가지 방안을 제시하며 손을 대려고 했으나, 투신업계가 상품 경쟁력 저하로 영업이 어려워진다며 반대해 난관에 부딪쳤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투신권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됐다. 그렇다고 감독 당국이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난 96년 MMF의 상품 내용은 무려 16번이나 수정됐다. 금융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근본적 처방없이 대증 요법만 내 놓았다. 때문에 MMF는 여기 저기 꿰맨 누더기 상품이 된 것이다. IMF 위기 직후인 지난 98년 2월 부도난 거평그룹이 대주주였던 신세기 투신이 유동성 위기에 휘말리자 정부는 MMF상품에 증권금융어음을 의무적으로 10% 이상 편입시켰다. 99년 9월 대우사태가 발발하자 MMF 제도를 개선했다. 늘 이런 식으로 MMF는 투신사의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손을 봤다. 그러나 이번에도 또 문제가 발생했다. 한 투신사 상품 개발 담당자는 “근본적인 처방을 내 놓아야 한다. 미국처럼 엄격한 기준을 마련해야 하고 투신사들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자기 반성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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