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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노사는 자동차의 두 바퀴”

[일본]“노사는 자동차의 두 바퀴”

1996년 9월30일 도요타 사장과 노동조합장이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노사관계 전담 부서가 없는 나라. 나라가 떠나갈 정도로 격렬한 노사갈등을 겪다가 정부에서 노사관계 전담 부서를 없앨 정도로 더 이상 갈등을 찾기 어려운 나라. 바로 우리와 이웃한 ‘일본’이다. 일본은 2001년 1월 초 1부(府) 22성청(省廳)이었던 정부 조직을 1부 12성청으로 대폭 축소하면서 후생성과 노동성을 통합해 후생노동성을 설치했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 전담 부서나 성청이 없어졌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집단적 노사관계를 담당하는 부서 폐지를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일본은 이때부터 전담 부서인 노정국(勞政局)을 폐지하고 대신 정책총괄관(참사관 4명, 정책평가관 1명)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노사관계 조정업무를 다른 업무와 함께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왜 집단적 노사관계를 담당하는 전담 부서를 없앤 것일까. 어떻게 그럴 수 있었던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노사분규가 현격하게 줄어 더 이상 담당 부서를 둘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일본이 처음부터 ‘노사관계가 좋은 나라’였던 것은 아니다. 한때 일본도 ‘파업하기 좋은 나라’였다. 1940년대 후반 임금인상과 인원정리를 둘러싼 노사분규가 많아지기 시작해 48년에는 분규건수 7백44건, 쟁의 참가인원 2백30만4천명, 노동손실일이 6백99만5천일에 이를 정도로 격화됐다. 일본 노동운동에서 전후 최대의 분규건수와 노동손실일을 기록한 해는 52년과 74년이다. 52년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둘러싼 정치파업, 74년은 공공부문에서 파업권 회복을 위한 파업으로 모두 사측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닌 정치투쟁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76년까지만 해도 거의 매년 분규건수 1천건을 기록할 정도로 노사갈등이 심했다.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77년부터였다. 분규건수는 이때부터 지속적으로 감소해 2001년에는 불과 90건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2백35건에 비해 38%에 불과하다. 노사분규로 인한 노동손실일도 현격히 줄어 2001년 겨우 2만9천일로 우리나라의 1백8만3천일에 2.3%에 불과하다. 노사분규 건당 노동손실일 역시 비교가 되지 않는다. 2000년 우리나라는 7천5백74일로 일본의 2백97일에 비해 무려 25.5배에 이른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일본의 노사는 끝없는 갈등과 투쟁에서 많은 교훈을 얻고 그것을 막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지금도 ‘세계 최고’라고 말하는 도요타자동차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40년대 말과 50년대 초 도요타자동차 노조는 인원정리를 둘러싸고 격렬한 투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당연한 얘기겠지만 노사는 많은 손해를 봤다. 도요타의 노사는 여기서 큰 교훈을 얻었다. 노동자의 생활안정과 기업의 발전은 ‘자동차 바퀴와 같이 한꺼번에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도요타 노조는 결국 ‘자동차의 두 바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파업을 자제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일본 전체 노사문화의 근간을 이루게 됐다. 사측도 근로자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종신고용제’라는 일본식 고용제도는 지속적으로 이뤄졌고 카를로스 곤 사장 취임 후 닛산 역시 강제적인 정리해고는 하지 않았다. 파업과 노조 운용에서 노조가 법을 지켰다는 점도 중요하다. 일본 49년 개정된 노동조합법에서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무노동·무임금 원칙을 규정했다. 이후 어떤 경우에도 노사는 이를 철저히 준수해 왔던 것이다. 일본의 노동운동은 70년대 중반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았다. 노동운동이 노조만의 집단이기주의가 강조되는 ‘경제주의적 노동운동’에서 노동운동과 국민경제의 조화와 균형이 강조되는 ‘국민주의적 노동운동’으로 바뀐 것이다. 제1차 오일쇼크로 인해 물가가 급격히 오르자 74년 춘투에서 32.9%라는 역대 최고의 임금인상을 달성했던 노동계가 다음해 춘투에서는 사측에 대폭 양보를 한 것이다. 75년 춘투에서 노동계는 국가경제의 위기를 인식해 이른바 ‘경제정합성론’을 내세웠고 결국 임금인상률을 13.1% 선에서 끝냈다. 당시 노동계는 “임금인상을 요구할 때 노조는 임금뿐 아니라 경제성장·물가·고용 등 다른 요인들과의 상호관계를 고려해 일본 경제 전체가 균형있게 발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이같은 ‘경제정합성론’은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거시적 시각에서의 노동운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로 인해 일본 경제는 세계 경제의 침체기에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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