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노사갈등의 해법…미국 ]'비노조 경영'에 노동계 갈수록 위축

[노사갈등의 해법…미국 ]'비노조 경영'에 노동계 갈수록 위축

1929년 10월29일 검은화요일 뉴욕증권거래소 맞은편 재무성 건물에 몰려든 군중들이 주식거래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다.
미국의 노사관계는 흔히 ‘경영계 중심의 신자유주의적’이라는 말로 통한다. 고용과 해고가 쉽고 치열한 경쟁을 통해 노동자들에게는 성공의 기회가 주어진다. 물론 패자는 참담한 지경에 놓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많은 노동 전문가들은 미국이 이같은 ‘미국식 노사관계’의 원칙을 ‘세계화’라는 말로 ‘표준화’시킨다고 지적한다. 이같은 논리라면 이른바 ‘세계 표준’이라는 말은 바로 ‘미국식’을 지칭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미국 노동 전문가들은 현대 미국의 노사관계를 전혀 다르게 부른다. ‘뉴딜형’이라는 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35년 도입됐던 일명 ‘와그너법’(전국 노사관계법:NLRA)은 최초로 노조의 법인 자격을 인정했고, 노동자의 기본권을 보장했다. 뉴딜 시기 이전의 미국 노사관계는 ‘자유방임주의’에 기초한 ‘노사간 자발적 협상’이 원칙이었다. 이같은 자유방임주의적 시장경제 아래서 노동자들은 매우 불안정한 고용·노동 조건에 시달렸다. 노조 가입도 어려웠을 뿐 아니라 적절한 국가의 보호막도 없었다. 물론 이 때도 노조는 있었지만 지금의 노조와는 성격이 크게 달랐다. 19세기 말에 형성됐던 미국노조연맹(AFL)은 숙련 노동자의 경제적 이익을 대변하는 직능노조였고 배타적 성격이 강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노동자의 다수를 차지했던 반숙련·비숙련 이민노동자들은 가입이 어려웠던 것이다. 와그너법이 등장했던 표면적 이유는 경기회복이었다. 당시 루즈벨트 정부는 케인즈의 ‘유효수요론’을 받아들였고, 빈곤한 노동자들의 구매력 감소를 대공황의 원인으로 여기고 있었다. 새로운 노사관계를 도입해 노동자들에게 어느 정도의 소비력을 보장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루즈벨트 정부는 노조를 적극 지원했고, 노조원들은 일반 노동자들의 가입을 권유했다.

와그너법 제정 후 기업경쟁력 떨어져 새로운 노사관계법이 경제적 이유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었다. 대공황이 한창 진행되던 30년대 중반 노조는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했다. 루즈벨트 역시 그들을 정치적 파트너로 인정하고 있었다. 미국 노동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여겨지는 멜빈 두밥스키 뉴욕주립대 교수 역시 “뉴딜 행정부가 노조의 단체협상권을 인정했던 이유 중 하나는 노조가 자신들의 주요 정치적 기반임을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와그너법은 노동자들이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선택할 권리와 노조에 가입할 권리, 그리고 파업의 권리를 명시했다. 또 노조는 와그너법을 통해 처음 법인 자격을 인정받게 됐다. 게다가 이전까지 관행으로 여겨졌던 황견계약, 즉 노조에 가입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고용하는 관행을 불법화했다. 나아가 고용주의 다양한 부당노동행위를 명문화했으며, 전국노사관계위원회(NLRB) 설치를 명시했다. 37년 대법원은 이 법에 합헌판결을 내려 와그너법은 미국의 노사관계를 결정하는 주요 잣대가 됐다. 실제로 와그너법 제정 후 결성됐던 산업노조연합(CIO)은 미국노동연맹과 달리 반숙련·미숙련 이민노동자들과 흑인들, 그리고 여성노동자들을 노조원으로 받아들였다. 당시 무명의 한 이민노동자는 “와그너법으로 노조 가입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공황 극복이라는 큰 짐을 짊어지고 있던 루즈벨트는 노동계 편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노동자들은 대통령이 자신들의 권리를 보장해 준다고 믿었고, 루즈벨트 역시 36년 재선에서 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와그너법은 문제를 일으켰다. 미국 노동계의 양대 산맥이었던 산업노조연합과 미국노동연맹의 갈등을 부추겼고 많은 기업가들이 저항했다. 특히 와그너법이 기업의 부당행위만 규정했을 뿐 노동자의 부당행위를 규정하지 않았다거나 법제정으로 인해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점, 또 전국노사관계위원회라는 국가 기구의 개입 자체가 미국 정신인 개인주의에 위배된다는 점 등은 약점이었다. 급기야 38년에는 반(反)뉴딜연합까지 결성되면서 와그너법은 더욱 강력한 반발에 부닥치게 됐다. 결국 냉전기였던 47년 태프트-하틀리법(Taft-Hartley Act)이 와그너법을 대체하게 됐다. 노조의 활동을 견제하는 조항을 포함시켰다는 것이 이 법의 핵심이다. 노조의 부당행위를 규정했고, 고용주의 경영권 보장 조항을 명시했다. 또한 노조 가입이 개인의 선택임을 명시했고, 개별 노동자와 고용주가 노조의 부당성을 고발할 수 있게 했다. 비상시 대통령의 파업금지권이 포함됐고, 노조의 정치자금 사용이 제한됐다. 클로즈드 샵이 불법화된 것도 이때였다. ‘일 할 권리’(Right to Work) 조항이 첨부됐다. 개별 노동자들은 노조가 파업을 결정했을 때 개별적 의사에 따라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했다. 태프트-하틀리법 제정 후 6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미국의 노동법은 여러 차례의 수정을 거쳤지만, 와그너법과 태프트-하틀리법은 늘 그 근간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노동법의 토대 위에 구축된 미국 노사관계는 어떤 특징을 갖는 것일까. 우선 어느 한쪽 힘의 우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노조와 자본이 동등한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노사간 당사자의 자율적 관계가 중시된다. 자율적 관계가 유지되지 않을 경우에만 정부 등 제삼자가 개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적잖은 전문가들은 이를 반박한다. 노동계와 경영계가 결코 힘의 균형을 이루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현행 법은 노조의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 노조는 파업권을 포함한 기본권을 인정받지만, 이같은 기본권은 사용자의 경영권을 존중하고 시장경제의 활성화를 제한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발휘되도록 한다. 따라서 2차 보이코트나 정치적 파업은 합법적 파업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따라서 미국의 노사관계 안에서 결정되는 사항이나 파업의 요구는 공통적으로 임금인상, 노동시간과 같은 노동 조건에 주로 국한된다. 미국 노동계의 힘은 50년대 중반을 피크로 하락세다.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태프트-하틀리법 이후 미국 노동법이 노동권을 크게 제한한 것이 주요인으로 작용했다. 미국의 노조 조직률은 라이벌 노조였던 미국노동연맹과 산업노조연합이 통합돼 오늘날의 미국 노총(AFL-CIO)를 결성했던 55년에 최고조에 이르렀다. 당시의 노조 조직률은 35%. 그러나 이후 노조 조직률은 하락세를 거듭해 현재는 10%를 조금 넘을 뿐이다

비노조 경영이 ‘문화’로 정착 여기에 미국 기업들의 ‘비노조 경영’ 전통도 한 몫을 했다. IBM·모토로라·델타항공 등 미국을 대표하는 많은 기업들이 지금도 ‘비노조 경영’을 고수하고 있다. 이들은 기업복지를 확대하고 인적자원을 중시하는 경영전략을 취하는 동시에 노조 결성을 막아 온 것이다. 70년대 경기 침체를 거치며 미국에서는 비노조 경영이 아예 ‘문화’로 정착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조가 조직됐던 기업들 중 상당수가 노조를 약화시킨 뒤 사업장을 매각했고, 새로 공장을 세울 때는 처음부터 노조 설립을 억제했다. 경기침체기의 극심한 경쟁 압력에 있었던 기업들은 단체교섭을 통한 노조의 양보를 얻어내는 대신 노조가 없는 신개척지에 대규모 투자를 추진하고, 노조 사업장에 대해서는 소극적 투자만 했다. 노조의 조직률 하락과 함께 탈산업화 현상이 나타난 것은 이같은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한 것일까? 많은 학자들은 미국 정부가 특히 80년대 이후 반노조적 전략에 동참했다고 지적한다. 80년대 미국 노조의 급격한 하락과 레이건 행정부의 신자유주의적 행보는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81년 항공관제사 파업에 레이건 정부는 연방군을 파견해 강력하게 진압했다. 이 사건은 미국 노동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노조의 파업에 대해 신자유주의적 노선을 택한 국가의 대응책이 무엇이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표본이었다. 90년대 들어서도 파업 등 노동계의 움직임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97년 UPS만이 파업을 통해 얻을 것을 얻었을 뿐이다. 미국의 개혁 세력들은 미국 안에 비민주적이며 불평등한 제도들이 산재해 있다고 비판하며, 그 근본적인 원인으로 노동세력의 조직력과 정치력이 지나치게 미약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경제적 이슈나 정치 문제에서 약자인 노동자들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법과 제도가 노동자들을 배제한다는 지적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노동정책은 ‘세계화’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DGB대구은행, 연 20% 적금 윤곽 나왔다…가입 시 유의사항은

2제이비케이랩 신약후보물질, 난소암 전이 단백질 억제 효과 확인

3SC제일은행, 시중은행 중 사회책임금융 증가폭 ‘최고’

4KB금융, 인니·미얀마 현지 직원 초청…글로벌 네트워크 워크숍

5서울시, 3년간 신혼부부에 공공주택 4400호 공급

6삼성전자 노조, 창사 이래 첫 파업 선언

7저축은행 1분기 1543억원 순손실…‘적자 늪’ 탈출한다

8미래 준비하는 컬리...AI 역량 키운다

9한-UAE,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체결…아랍 국가와 최초

실시간 뉴스

1DGB대구은행, 연 20% 적금 윤곽 나왔다…가입 시 유의사항은

2제이비케이랩 신약후보물질, 난소암 전이 단백질 억제 효과 확인

3SC제일은행, 시중은행 중 사회책임금융 증가폭 ‘최고’

4KB금융, 인니·미얀마 현지 직원 초청…글로벌 네트워크 워크숍

5서울시, 3년간 신혼부부에 공공주택 4400호 공급